노동절 연휴가 시작되는 주말에 설 때면 늘 가슴 한 구석, 쉼 없이 내달음질 쳐온 지난여름에 대한 아쉬움이 생긴다. 윤성근씨 (43·운송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딸 주원이와 익종이 방학도 이제 끝 무렵. 어디 변변한 데 한 번 데려가지도 못하고 또 한 계절이 저물려나 괜스레 미안하다. "여보, 어디 멀리 갈 것 없이 시원한 바닷바람이나 쏘이면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건 어때요? 라구나 비치 소더스트 페스티벌이 아직 안 끝났지, 아마." 아내, 윤안나씨가 아이디어를 낸다.
라구나 비치는 남가주의 프로방스. 예술가들이 모여 살아 마을이 이다지도 예쁜 걸까, 아니면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캔버스에 담고자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든 것일까. 라구나 비치의 하늘은 더 푸르고 꽃은 더 화사하다.
가까이 있어 귀한 줄 몰라 그렇지 소더스트 페스티벌(Sawdust Festival)은 아름다운 해변과 함께 여름철, 전세계 관광객들을 라구나 비치로 끌어 모으는 원동력이다. 올해로 벌써 36회를 맞는 이 축제는 6월말부터 9월초 사이에 열리는 남가주의 비엔날레. 제도권의 권위주의적 화풍을 거부하는 창조적인 예술가들이 스스로 예술 작품을 발표하고 판매하기 위해 마련한 축제라는 점에서 살롱에 반대해 탄생한 인상파와 맥을 같이 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지난 주말, 아내의 제의대로 윤성근씨는 한국에서 다니러 오신 어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소더스트 페스티벌을 찾았다. 라구나 캐년 로드를 따라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처럼 원색의 타일을 붙인 예쁜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소더스트 축제가 벌어지는 곳. 소더스트(Sawdust)라는 빨간색 사인과 함께 깃발까지 펄럭이며 축제 인파를 반겨준다.
라구나 비치를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은 그 찬란한 햇살과 푸른 태평양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주말이면 들어서는 장터, 바닷가를 산책하는 연인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부, 구리 빛 피부의 건강한 서퍼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 놓았다. 이 그림들을 보다가 마을로 눈길을 옮기면 그들로 하여금 붓을 들게 만들만큼 감동을 주었던 라구나 비치의 아름다운 풍경에 눈이 시리다.
축제 현장 입구에 들어서니 이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200여 예술가들의 그림, 도자기와 유리 제품, 옷과 보석, 조각, 악기, 사진, 가죽 공예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한 부스가 2.5에이커의 대지에 들어서 있는 것이 마치 페르시아의 시장처럼 이국적이다. 터질 듯 화려한 색깔과 독특한 모양의 예술 작품들은 갖고 싶을 만큼 예쁘다. 깃털 꽂힌 모자, 반짝이는 수정 목걸이, 고양이를 그려 넣은 머그 잔, 깨진 타일로 만든 탁자와 액자를 대하면서 그림과 조각만이 아니라 장신구와 생활 소품도 예술작품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신비한 빛깔, 독특한 디자인의 옷도 예술 작품. 로우터스(Lotus)라는 브랜드를 붙인 실크 드레스와 팬츠는 현대무용가 홍신자가 색색 천을 장식해 입었다던 어머니의 속 고쟁이처럼 마냥 편해 보인다. 주류 사회의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에나멜 아트에는 인(忍), (友), 평(平), 안(安) 등 좋은 뜻 가득한 한자가 문양으로 장식됐다. 한때 가수로도 활약한 적이 있다는 미시(Missy)는 머리에 화관을 얹고 천국의 작품(Made in Heaven)’이라는 부스에 앉아 있는 모습이 꼭 요정 같다. "당신, 한 때 제우스를 섬기던 뮤즈이지 않았어요?" 하는 인사말에 감동한 그녀는 영롱한 반짝이를 발과 머리에 뿌려주며 동화 같은 그녀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한가운데 마련된 공간에서는 유리로 작품을 만드는 제작 과정을 공개하고 있었다. 고온에 녹여 빨갛게 달구어진 유리를 집게로 길게 뽑아내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모습이 이태리 베니스 무라노섬의 한 공방에라도 선 기분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아트 앤 크래프트 교실도 알차다. 스테인드 글래스와 사진 액자, 요술 방망이와 화관을 만들고 있는 어린이들의 사랑스런 모습에서 미래의 피카소와 마티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페이스페인팅 등 자녀들이 참가할 수 있는 재미있고 신나는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주변에 떡갈나무가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한가하게 거닐다 보니 기분 좋은 나무 냄새가 향기롭다. 안쪽으로는 폭포도 흐르고 석등과 돌, 대나무로 꾸민 정원이 있어 작품 감상하느라 끌고 다닌 지친 다리를 쉬어갈 수 있다. 바로 앞의 야외극장에서는 재즈와 민속 음악 등 밴드의 라이브 음악 연주가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다. 그리스 음식과 햄버거 등 간단한 먹
거리도 맛깔스럽다.
예술 작품을 감상한 뒤, 깐느보다 아름다운 바닷가에 서니 유럽 여행이라도 떠나온 듯 가슴이 툭 트인다. 분위기 좋은 프랑스 레스토랑에 들러 근사한 식사와 함께 지난여름의 이야기를 나눈 저녁 무렵은 여행지에서의 여유와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축복된 시간이었다.
▲지난 6월 28일에 시작돼 2십만이 넘는 관람객들이 다녀간 소더스트 페스티벌은 일요일인 9월 1일이면 폐막된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밤 10시까지.
▲소더스트 축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행사 스케줄. 오전 11시-오후 3시에는 에이프릴 스트롱이 어린이들에게 풍선을 이용해 강아지 등 여러 모양을 만들어주며 소더스트 서커스가 공연된다. 8월 31일(토) 저녁 6시에는 JJ & 하비비스의 밸리 댄스 공연, 9월 1일(일) 오후 5-9시에는 히비앤지비(Heebie & Jeebie)의 뮤지컬 코미디가 피날레로 마련된다.
▲입장료는 성인이 6달러50, 연장자는 5달러50, 6-12세의 어린이는 2달러이며 5세 이하는 무료이다. 소더스트 축제와 라구나 아트 뮤지엄, 아트 페어 축제 등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시즌 패스는 15달러.
▲행사장 주변에 미터 주차 공간과 8-10달러 하는 주차장이 있지만 늘 붐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정오부터 오후 4시 15분 사이에는 라구나 비치 다운타운과 행사장을 연결하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영된다.
▲가는 길은 5번 S .→ 133 S. 를 타고 가다가 Laguna Canyon Rd./ El Toro Rd. Exit에서 내려 바다쪽으로 가면 된다. 주소, 935 Laguna Canyon Rd. 문의 전화, (949) 494-3030. 웹사이트 www.sawdustartfestval.org.
▲축제에 간 길에 라구나 비치를 들려보자. 라구나 비치 대부분의 볼거리는 Pacific Coast Highway와 Ocean이 교차하는 지점, 바닷가 바로 앞 광장에 집중해 있다. 라구나 비치 방문자 센터에 전화하면 관광 정보를 무료로 보내 준다. 문의 전화 (800)877-1115, 웹사이트, www.lagunabeachinf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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