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위로 올렸다가 다소곳이 쓸어내리는 손짓에 아련한 그리움이 있다. 흥이 실린 어깨춤엔 부풀린 희망을 실어본다. 모국 땅을 밟듯 사뿐하게 내딛는 발걸음. 양손에 채를 들고 어깨에 둘러멘 장고를 신명나게 두드리면서 그들은 알지 못할 한과 원망을 춤사위로 풀어버린다.
한인입양아들로만 구성된 고전무용단이 있다. 미니애폴리스의 ‘장미 무용단’(Changmi Korean Dancers). 미동부지역에서 오랫동안 한국 전통무용의 아름다움을 소개해온 소녀 무용단이다.
이 무용단의 교사 브룩 지인 뉴매스터씨(23·유지인)가 지난 주 LA를 찾았다. 미네소타주의 예술장려기금 ‘포크 아츠 그랜트’를 지원받아 이정임 무용원 연수차 방문한 것. 한국무용의 보급과 소개에 열심인 그녀는 2년전에도 같은 기금을 받아 한국을 방문, 김정학씨로부터 태평무를 배우고 오기도 했다.
60여명의 단원들에게 매주 토요일 한국무용을 가르치고 있는 브룩 지인은 2주간의 이번 연수를 통해 무용가 이정임씨와 함께 전통무용의 선과 동작을 기초부터 고난도 스텝에 이르기까지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신이 5세때 장미무용단에 입단, 18년 동안 한국무용을 춰왔지만 아이들에게 좀더 정확하게 가르치려는 의욕 때문.
"아이들은 춤을 출 때 아주 행복해합니다. 한국무용은 독특하고 특별한 춤이죠. 품위 있고 우아하고 또 감정이 많이 실린 춤입니다. 어떤 애들은 춤을 추면 친엄마 생각이 난다고 해요. 이런 우리 춤을 배우도록 기회를 만들어준 양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장미무용단은 1984년 한인입양자녀를 둔 미국인 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데려다 키우는 자녀들이지만 모국의 문화를 심어주고 뿌리를 찾아주자는 감동적인 배려였다.
백인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모인 한국인 소녀들이 매주 토요일 한지원씨에게 고전무용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장미무용단은 올해가 벌써 18주년, 그동안 무용단을 통해 한국 문화를 경험한 입양 한인들은 수백명에 이른다.
모국은 자신을 버렸지만 모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은 한달에 적어도 한두차례 학교, 교회, 커뮤니티, 민속 페스티벌에 이르는 다양한 무대에서 장고춤, 북춤, 칼춤, 부채춤을 공연하며 화려한 한국무용을 소개하는 문화사절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여러번 공연을 가진 장미무용단은 그동안 주로 미네소타와 위스컨신 등지에서만 활동해와 미동부지역에는 꽤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쪽 서부 한인사회에는 한번도 소개되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이곳에서도 공연을 하고 싶은 바램이 있지만 여행경비 등이 여의치 않아 엄두를 못내고 있다.
"이 무용단의 목적은 춤이나 공연, 경연대회가 아닙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입양 한인들이 함께 만나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부채를 잘 펴지 못하는 장애인도 있고 춤을 못 추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밝고 자랑스러워요. 실수를 해도 야단치지 않는 유일한 무용단일 겁니다"
무용단의 학생이던 브룩 지인이 교사가 된 건 5년전. 그동안 가르치던 한지원씨가 떠나면서 장미무용단의 창단때부터 무용을 계속해온 그녀가 자연스럽게 클래스를 도맡게 됐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 마거릿 뉴매스터씨는 무용단의 시작 때부터 자원봉사해온 터라 모녀가 함께 무용단의 운영에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다.
"대부분의 입양부모들은 자녀와 항상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한국을 무척 좋아합니다. 이번 월드컵 때도 모두 한국을 응원했는걸요. 자신이 입양한 아이들에게 모국의 문화를 심어주기 위해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열심히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요. 저희 부모님만 해도 공연 기획으로부터 연습장 픽업, 의상구입, 음식 제공등 시간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미네소타는 아시안이 많지 않은 곳이라 한국에서 온 입양자녀들은 늘 불편한 시선 속에 자라고 있다고 브룩 지인은 전한다. 백인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 끼인 동양 아이들은 의아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많고, 때문에 대부분의 이 지역 미국인들은 코리안 하면 모두 입양아인줄로만 알고 있다는 것.
"이렇게 보수적인 지역이라 미국인인 척 하고 살아가는 입양아들이 많지요. 그들에게 한국인의 긍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인이며 동시에 미국인으로서 얼마든지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습니다"
유치원생으로부터 고등학생까지의 5~18세 소녀들로 구성된 장미 무용단은 매주 토요일 4개 클래스(초등 저학년, 초등 고학년, 중등, 고등)로 나뉘어 연습하고 있으며 공연에서 모아지는 기금은 모두 한국의 고아원에 보내거나 운영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숙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