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칼럼(세상사는 이야기)
▶ 백재욱 <리맥스 100 부동산 대표>
"요즘 어떠세요?"
너무도 흔한 질문이지만, 그때마다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느라 허둥댄다. 요즘 나는 어떻지? 물론 묻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지를 궁금해 죽겠어서 묻는 것도 아닐뿐더러, 만약 요즘 나의 상태에 대해 시시콜콜 대답을 했다가는 ‘질문 한번 잘못했다가 된 통 걸렸네’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기가 십상일 것이다.
처음에 미국 와서 영어는 서툴지, 낯선 땅에서 일구어가는 삶은 매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마당에, 스쳐가는 사람마다 "How are you?" 하고 건듯 물어보는걸 심각하게 How I am 에 대해 설명하려 했던 때를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나도 그저 가볍게 "Fine, thanks! And you?" 해야지 하면서도 실제로 그렇게 할 때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 말로 묻는데도 이 질문에 "네, 덕분에... 그래 요즘 어떠세요?" 하는게 잘 안 된다.
매사에 거리낌없는 사람들이 부럽다. 뭘 하든 두 번 이상 생각지 않고 첫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 겁내는 것도 없고, 후회 따위에 시간을 뺏기지도 않는다. 내가 갖고 있는게 제일 좋은거라고 믿으며, 넓은 식당엘 가면 맨 중앙에, 무슨 식장에 가면 앞자리에 터억 자리잡고 앉는 사람들. 새 상품이 나오면 으레 먼저 사보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씨원씨원하게 이 얘기 저 얘기 잘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혹시라도 고민해야될 상황이 생기면 ‘아이구, 머리 아파서 머리나 하러 가야겠어’ 하곤 미장원으로 가버린다. 더 경탄할 일은, 미장원 가서 ‘머리하고’ 쇼핑하고 돌아오면 그 머리 아팠던 상황들이 대충은 다 해결이 돼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인생도 수월하게 흘러가주는 것 같다.
그런가하면 삶의 군데군데에 숨겨져 있는 진창 웅덩이에 대해서 전혀 무방비인 채로 사는 사람도 있다. 걸음마를 막 배운 아이가 식탁보든 신문지든 붙들고 일어나거나, 날카롭고 깨질 물건들 사이를 뒤뚱뒤뚱 걸어갈 때처럼, 보는 사람은 아슬아슬해서 앗, 앗, 소리를 지르지만 정작 본인은 엉덩방아를 찧거나 머리 부딪칠 위험을 전혀 모르는 채 눈앞에 펼쳐진 새 세상이 신기하고 즐거울 뿐. 손을 뻗쳐 닿게되는 모든 물체가 자신을 붙들고 끌어 올려주리라는 본능적인 믿음. 뾰족하고 날 선 것들에 대해 추호도 경계치 않는다. 그들 역시 복받은 사람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아이 마음을 그대로 가진 채 사는 이런 이들은 세상에 대해서 갑옷을 입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무심한 열려있음이 그들을 보호해주는 강한 방패가 된다.
신문의 해외토픽 같은데서 보면 어린 아기들은 수십층 빌딩에서 떨어졌는데도 말짱한 경우가 많다. 교통사고가 크게 났을 때, 정신 바짝 차리고 운전대 잡았던 사람보다는, 술 취해서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던 승객이 훨씬 덜 다치는게 같은 맥락일 것이다. 무장하지 않고 순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에게 순하게 다가오는 삶.
지난 한일 월드컵에서도 잠깐 구경을 했지만 카드섹션이 요즘 나의 숙제다. 응원석에서 줄 맞춰 들어올리는 카드색깔에 따라 다른 그림이 펼쳐지는 카드섹션. 무궁화가 피어나기도 하고 흰 비둘기가 날기도 하는, 커다란 응원석의 변화무쌍한 조화가 무슨 색깔 카드를 들어올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요즘 내가 가장 자주 생각하는 장면이다.
게으름날 때, 우울해질 때, 사는게 갑자기 무섭고 자신 없어질 때, 낯가림할 때, 밝고 당당하고 거침없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내 카드를 바꿔드는 연습. 인생을 구구하게 토달고 평론하려고 할 때, 끊임없이 조율만 하고 줄만 고르느라 정작 연주는 한번도 못한 채 끝날까지 불안할 때, 우와- 함성을 지르며 팔을 치켜들어 곧장 핵심으로 돌진하는 카드를 집어야지. 실수할까봐, 손가락질 받을까봐, 무엇엔가 발목 잡힐까봐 이것 따지고 저것 재보느라 한발짝도 진전 없을 때, 카드를 빨리 뒤집어 맑은 색깔, 웃는 색깔, 믿고 따라가는 색깔로 바꾸는 포부. 이 마음의 카드놀이를 하느라고 바쁜게 요즘 나의 ‘어떠함’인데, 그래도 누가 "요즘 어떠세요?" 물으면 "예, 늘 그렇죠. 별일 없으시죠?" 이래야겠지? 막연한 질문에 막연히 답하는게 어른스러운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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