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모-원삼 족두리에 산 닭도 등장한 ‘저녁 결혼식’
결혼은 흰 드레스에 면사포를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한국인이 서양식 결혼을 하고 있지만 불과 한 50년 전만 해도 우리의 결혼식은 그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흰 드레스가 아니라 갖가지 색도 화려한 원삼이나 활옷을 입었고, 머리에는 면사포 대신 족두리나 화관을 썼다. 예식 도중 반지와 키스를 주고받는게 아니라 맞절을 올리고 술잔을 주고받았으며, 식이 끝나면 피로연을 하고 신혼여행 떠나는게 아니라 신부집에서 첫날밤을 치르고 사흘뒤 신랑집으로 가서 폐백을 올렸다. 지난 달 26일 LA 한국문화원(원장 임병수)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혼인문화를 오랜만에 엿볼 수 있는 행사가 열렸다. 2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룬 ‘한국 전통혼례식 시연’. 실제 커플인 한인 2세 작가 이혜리씨와 피터 염씨가 신랑신부 모델로 나온 이 혼례식은 많은 순서와 절차가 생략된 약식 혼례였으나 외국인과 2세 한인들이 많이 참석해 화려하면서도 생소한 전통예식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우리의 부모와 조부모와 증조부들은 어떤 식으로 백년가약을 맺었을까?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따라 전해 내려온 우리만의 혼례절차를 지켜보았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남자와 여자가 짝을 지어 부부가 되는 일을 음과 양이 만나는 이치로 여겼기 때문에 예식도 낮(양)과 밤(음)이 만나는 저녁 무렵에 거행했다.
초례청 장소는 신부의 집. 앞마당이나 대청마루에는 십장생이 그려진 열폭 병풍이나 모란병풍이 쳐지고 가운데 놓인 대례상 양쪽에 한쌍의 촛불과 밤, 대추, 쌀이 놓인다.
그 옆에 솔가지와 대나무 가지들이 청실홍실을 감은 백자 화병에 꽂혀 있고 붉은 보에 쌓인 암탉과 푸른 보에 쌓인 장닭도 오른다. 문화원 시연에는 빅터빌에서 공수해온 산 닭 한마리가 상에 올랐다.
수탉은 활기찬 기상을, 암탉은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상징이고 소나무와 대나무는 부부 사이의 절개를 약속한다는 뜻, 밤과 대추, 쌀은 아들 딸 많이 낳고 잘 살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예식은 기러기를 드리는 ‘전안례’, 신랑 신부가 서로 절하는 ‘교배례’, 술을 나눠 마시는 ‘합근례‘의 세 부분으로 나눠 진행되며 신부의 종조부등 집안 어른이 혼례의식 순서를 적은 홀기를 두손으로 받들어 정중하게 펼쳐들고 천천히 또박또박 읽으며 예를 진행한다.
문화원의 시연에서는 서예가협회 최준옥 이사장이 순서를 읽고 진행했다. 전통혼례식은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다음은 가장 일반적인 절차를 참고한 것이다.
■전안례
신랑이 기럭아비와 함께 신부집에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드리는 의식. 기러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생명이 끝날 때까지 짝의 연분을 지킨다 하여, 신랑이 백년해로의 징표로서 신부의 어머니에게 드리는 것이다. 초례청이 아닌 신부집의 다른 장소에서 치러진다. 다음은 집안 어른이 실제로 읽어 내려가는 혼례순서와 그 뜻을 풀이한 것이다.
‘주인영서우문외’-주인(신부 아버지)은 나가 신랑을 맞이하시오.
‘서읍양이입’-신랑은 읍(인사)하고 들어오시오.
‘시자집안이종’-시중 드는 이는 신랑을 자리로 안내하시오.
‘서취석’-신랑은 자리에 서시오.
‘포안우좌기수’-신랑은 기러기의 머리가 왼쪽으로 가도록 앉으시오.
‘북향궤’-북쪽 정청쪽을 향하여 꿇어앉으시오.
‘전안’-기러기를 상위에 올려놓으시오.
‘면복흥’-신랑,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다가 일어나시오.
‘소퇴재배’-조금 뒤로 물러서서 두 번 절하시오.
■교배례
신랑과 신부가 정갈하게 손을 씻고 예를 갖춰 서로에게 절을 하는 의식. 신랑과 신부는 이때 처음으로 얼굴을 보게 된다.
대면이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서로 상대방에게 절을 한다. 이같은 의식으로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것이다.
‘서지석말’-신랑은 초례청 동편자리로 가서 서시오.
‘무도부출’-수모는 신부를 인도해 나오시오.
‘서동부서’-신랑은 동편에, 신부는 서편에 마주 서시오.
‘진관진세서관우남부관우북’-신랑 신부 손 씻을 물을 준비하시오.(신랑과 신부의 도우미가 손 씻을 물과 수건을 집어든다)
‘서북종자옥지’-신랑 신부 손을 씻으시오.
‘부선재배’-신부 두 번 절하시오.(신부 양쪽에 서있는 수모 두사람이 신부를 부축하면 화려한 활옷을 입은 신부는 팔을 높이 올려 한삼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홍치마를 동산처럼 부풀리며 재배를 하고 일어선다)
‘서답일배’-신랑 한번 절하시오.(사모를 쓰고 자색 단령을 입은 신랑이 일배를 한다. 왜 신부는 두 번 절하고 신랑은 한번 절하는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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