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뜻하지 않은 장례식이 있었다. 같은 학교에서 오랫동안 디자인 클래스를 가르치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바로 전 주에도 수업을 하셨고 평소 늘 활기 넘치고 건강했던 분이라 모두들 당황하고 실감나지 않아 했다. 동료들과 수업을 모두 취소하고 장례식에 참석하여 앉자있자니 모인 사람들의 얼굴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돌아가신 분의 연세가 이제 막 예순을 넘기셨고 무슨 특별한 지병이 없던 터라 그 분보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더욱 그 자리가 민망한 듯 하였다. 듣기로는 무슨 바이러스가 장으로 침입한 것이 발단이 되어 며칠간 조금 피곤하다고 하다 쓰러지셨고 의식을 잃으신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장출혈이 너무 심하여서 손 쓸 겨를도 없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동료 교수들이나 지난 수업시간에 웃으며 헤어졌던 학생들이나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가운데 몇 사람이 단위에 올라가 고인의 삶을 추억하는 시간이 있었다. 화가인 줄만 알았더니 못 다루는 악기가 없었고 특히 트럼핏 연주는 수준급이었다는 이야기며 고집스러우리만큼 자신이 선택한 결정을 지키고 옹호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이야기는 부인과의 삶에 대한 친구의 증언이었다. 친구는 자상한 고인이 얼마나 부인을 사랑했는지, 얼마나 부인이 해주는 음식을 즐겼는지를 이야기하였다. 또 두 사람이 어찌나 강한 성격인지 주변에서는 두 고집쟁이가 안 싸우고 사는 것을 불가사의로 여겼다는 말에 한차례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는 두 사람의 금실의 비밀을 결론지어 주었는데, 고인이 부인을 사랑한 것만이 아니라 좋아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사랑하면서도 참 좋아했다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 부부의 모습을 선명히 눈앞에 보여주던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장례식이 끝난 뒤에 그 말을 생각하는 눈치였고 그 두 감정의 미묘한 차이를 이야기하며 혼자 남은 부인을 걱정하였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대화에 합류한 다른 분의 말씀을 듣자니 부인이 슬픔에 젖어 있기는커녕 너무 화가 나서 슬퍼하는 것을 잊어버린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고인의 사망 직후 부음을 전하는 부인의 통화에서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목소리가 딱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만나서 관찰해보니 슬픔보다 더한 분노로 가득 차 있더라는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 며칠간 얼굴빛이 안 좋고 피곤해 하실 때 복부에 좀 통증이 있어 보였더란다. 그때 부인이 심상치 않으니 병원을 가자고 했더니 예의 그 굳은 신념으로 남자가 이만한 통증에 무슨 병원이냐며 우기셨고 또 부인은 남편의 성격을 아는지라 더 이상 권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덜컥 이삼일만에 쓰러져서는 유언도 한마디 없이 돌아가신 것이다. 의사들마다 이틀만 먼저 발견했어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니 그 말을 듣는 부인의 심정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짐작이 되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자니 나도 슬슬 화가 나는 것이었다. 우리 집의 한 남자도 아프기만 하면 병원 가기를 싫어해서 내가 병원에 예약을 하고 또 다녀오는 길에는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사먹자고 핑계를 대어서야 간신히 갔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그래서 도대체 남자들은 왜 그렇게 병원 가기를 싫어하고 또 갈 때는 왜 혼자 못 가느냐고 묻자 거기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점잖은 남자들이 머뭇머뭇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변명이 많아졌다. 시간이 아까워서라는 둥 믿을 만한 의사를 못 만났다는 둥 그러더니 급기야는 사회적 기대치가 남자는 웬만한 아픔쯤은 참아서 이기는 걸로 되어 있는 까닭이라며 거창하게 책임을 사회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솔직한 남자가 사실은 큰 병일까 봐 무서워서라고 실토하자 모두들 웃으며 어이없는 그 말에 동의를 하는 것이다.
알고야 그랬을까마는 간단히 치료할 수 있었던 병을 방치하여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 버린다면 나라도 배신감을 느낄 것 같다. 꼭 병원 가기가 아니더라도 아내가 남편을 위해 직감으로 권하는 말에 남편들이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인다면 이 세상에서 비극을 조금은 더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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