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칼럼(세상사는이야기)
▶ 백재욱 <리맥스 100 부동산 대표>
친구의 오빠 딸이 어렸을 때 쓴 글이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갈 겁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 아빠를 비싼 양로원에 보내드릴 거예요"
하하하. 기막혀라. 친구 오빠는 "어쨌건 그래도 비싼 양로원 하나는 얻어놓은 셈이니 됐지 뭐"하며 웃었었다. 그 꼬마는 어려서의 결심대로 좋은 대학도 들어갔고, 여전히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 이제는 물론 돈 많이 벌어서 부모를 비싼 양로원에 보내리라 생각하지야 않겠지. 그래도 미국에서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노후는 우리가 보고자란 한국의 정서와는 다를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이다.
내 부엌에 노래하는 돼지 저금통이 있다. 동전 한 닢을 넣을 때마다 노래 한 곡을 부른다. 심심할 때는 연거푸 동전을 집어넣어 꽃돼지가 부르는 노래를 여러번 되풀이 듣는 날도 있다. 지난 어머니날엔 그 흔하게 굴러다니던 동전이 하나도 안 보여, 약은 꾀로 칼끝을 살짝 집어넣어 떨림판을 건드렸다가, 접촉이 잘못 되었는지 아니면 돼지가 심술이 났는지 온 저녁내 노래를 멈추지 않는 바람에 정말 애썼다.
아이가 유럽으로 공부하러 가고 나니 어머니날이랬자 평일과 다를게 없다. 혹시 애가 전화했을 때 내가 없으면 실망할까봐, 외식하자는 권유도 뿌리치고 하루 종일을 전화기 근처에서 맴돌다가 밤이 되었다. 무슨 신데렐라 동화처럼 밤 12시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전화가 왔다. 고꾸라질 듯 달려간 주제에 내색 않으려고 숨을 고른 뒤 무심한 척 전화에 대답하는 비굴한 꼴이라니.
"엄마, 자고 있었어? 미안해. 해피 마더스 데이!"
"음, 어, 아니, 안 잤어. 고마워, 거긴 월요일 아침이겠구나?"
"응, 여기는 어머니날이 5월26일이라서 내가 깜빡 잊고 카드도 못 부쳤어. 엄마, 미안."
"아냐 아냐, 괜찮어. 전화해줘서 너무 고마워"
"근데 엄마 내가 콜링카드 거진 다 써서 그러니까 나한테 전화해줄 수 있어?"
"그럼 그럼, 몇 번이니?" 어이구, 못나기도 해라. 감지덕지하며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대는데도 좋아서 입이 허물어진다.
"카드는 뭔 카드? 그런거 안 보내도 돼. 곧 만날텐데 뭘. 노래나 한번 불러줄래?"
"아휴 엄마는... 나 빨리 수업 들어가야 하는데..."
"재지 말고 한번만 불러라 뭐. 내 돼지 저금통은 쿼터 한 개, 아니 다임 한 개, 아니 칼 끝만 살짝 집어넣어도 노래를 몇 번씩이나 불러주는데, 넌 한달에 무려 돈을 얼마나 갖다 퍼붓는데도 그거 하나 안 불러줄꺼야?"
아이는 별 싱거운 농담도 다 듣겠다며 쫑알쫑알하더니, 그래도 강의실 앞 복도의 공중전화통에 대고 울랄라 쏼랄라 노래를 부른다.
"됐지? 나 인제 정말 교실에 가야돼. 어머니날 카드도 부칠게. see you soon, I love you, mom. bye!"
비싼 노래 한 구절, 구걸하다시피 듣고도 좋다고 헤에 벌어진 입을 파란색 돼지가 흉내내듯 따라하고 쳐다본다. ‘아, 이 짝사랑은 무슨 불공평인가? 사랑을 주는 자의 비굴함, 사랑받고 있는 줄 아는 자의 거만함. 사랑하면 할수록 외롭고, 사랑을 주면 줄수록 비어지는 가난한 손. 자식에게 하는 것 만분의 일만 부모에게 해도 효자비가 설테고, 천분의 일만 남편에게 해도 열녀문이 서겠다’ 혼자서 마음속으로 군시렁대 보지만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없다.
자식 낳아 길러보면 부모 마음 안다고 백날 천날 들어도 소용이 없다. 그 말 그대로 날이 갈수록 부모님의 사랑이 뼛속 마디마디를 아리게 파고들지만, 그 알음이 되퍼부어지는 곳은 여전히 자식에게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에게 해준게 또 뭐 그리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낸 것? 야단 치고 잔소리하고 속상해했던 것? 타이르고 격려하고 기도했던 것? 어떤 것을 떠올려 보아도, 아이를 기르면서 누렸던 기쁨엔 비할 데가 없다. 뱃속에 자리를 잡던 바로 그 날부터 세상에 태어나 오늘이 되기까지, 아이가 알게해준 인간사의 모든 것을 감사한다.
네가 설령 나를 비싼 양로원에 넣어준다 해도, 네가 심지어 나를 싸구려 양로원에조차 안 보내준다 해도. 내 아이가 돼줘서 고맙다. 너와 내가 딸과 엄마로 이 세상에서 만나, 내게 가져다준 모든 축복과 은혜를 신께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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