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김군(15세·가명)은 위탁아동 보호시설인 그룹 홈에 살고 있다. 몇 년째 마약과 도박에 빠져 있던 아버지가 지난해 집을 나가버리자 엄마는 남매를 데리고 동반자살을 기도하다 실패, 경찰에 체포돼 수감됐다. 그와 동생은 각기 다른 포스터홈에 보내져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으며 크리스는 포스터홈을 도망나와 마약을 하기 시작,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가 결국 24시간 감시받는 그룹 홈에 보내졌다.
5월 ‘가정의 달’이 아무 상관없는 아이들이 있다.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감사해야할 부모는커녕 가족이 함께 살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포스터홈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 올 들어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가정불화로 인한 강력사건의 뒤에는 반드시 깊은 상처에 신음하는 아이들이 숨어있다. 최근에는 아동학대 가해자의 절반이 부모라는 카운티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고, 재혼 가정에서 자녀 폭행과 성적 학대 문제가 많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높아간다. 이 아이들을 우리가 끌어안을 수는 없을까? 한인 포스터홈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한인 위탁아동과 위탁가정의 실태를 알아보았다.
LA카운티내 7개 지역 아동보호국(Department of Children & Family Services)에서 보호중인 한인 위탁아동 케이스는 현재 180여건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을 맡아줘야할 한인 포스터홈은 불과 5 가정. 그나마 모두 최근 1~2년새 등록된 가정들이라 부모와 격리된 대부분의 한인 아이들이 흑인이나 히스패닉 가정으로 보내지곤 한다.
소셜워커 알렉스 김씨에 따르면 타인종 포스터홈에 보내졌다가 도망다니는 한인 10대 청소년들이 한둘이 아니다. 가정에서 받은 상처도 너무 큰데 처음 가는 낯선 집의 환경이 너무 다르면 충격이 겹쳐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다는 것.
상습적으로 포스터홈을 도망 나오는 문제아이들은 그룹홈에 수용되는데 감시체계가 1~14단계까지 나뉘어지는 그룹홈은 규율이 훨씬 엄격하고 실제로 13~14단계는 24시간 갇혀 지내는 소년원의 수준이라는 것이 소셜워커들의 설명이다.
지난 해 위탁부모가 된 김재경씨는 흑인가정에 보내졌다가 적응 못해 도망 나온 틴에이저 남자아이를 한동안 맡았었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이가 착하고 문제를 별로 일으키지 않아 얼마전 아버지를 따라 떠날 때까지 정이 옴팍 들었다는 김씨는 "한인 가정에 수용되면 문제가 없을 아이들이 언어와 음식, 문화가 전혀 다른 가정으로 보내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또 "위탁아동들은 이 사회가 나의 가정을 파괴했다는 적개심과 좌절감, 우울증을 갖고 남의 집에 오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서로 적응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과 규율을 갖고 대하면 나중에 위탁부모를 신뢰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게 된다는 김씨는 "가정폭력과 불화는 이민초기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이런 가정은 주변에 아이를 맡아줄 친척도, 돈도 없고 영어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돈을 벌 생각으로라도 한인 포스터홈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작년 11월말부터 한인 남매를 돌보고 있는 조이스 김씨는 결혼생활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어 입양을 알아보다가 위탁부모가 됐다. 지난 1년동안 몇몇 아이들을 맡아보았다는 김씨는 "문제 있는 가정에서 자란 문제 있는 아이들은 함께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먹이고, 재우고, 학교 픽업하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가정교육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말로 타이르거나 야단쳐도 시정되지 않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따스함을 주려 노력하고 기도해주면서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심어주면 서서히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김씨는 "속상한 일도 많지만 건강한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서서 상처있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환경을 나눠주는 일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주 잘 된 경우도 드물게 있다. 마약문제를 가진 한인여성의 아기가 한인 부모에게 보내져 입양된 케이스. 한인 아기를 입양하고 싶어하던 이 부부는 아기를 키우기 위해 포스터홈 등록절차를 끝내고 친부모처럼 정성껏 키우고 있다.
소셜워커 김청자씨에 따르면 이런 경우가 가장 바람직한 ‘위탁에서 입양으로’(foster to adoption) 케이스로 아동보호국에서도 장려하고 있으며 위탁부모가 입양해도 양육비는 계속 지급된다.
간혹 경제적 이유로 포스터홈 운영을 문의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적절치 않다고 소셜 워커 샘 윤씨는 말한다. "한 가정에 여러명씩 보내지 않기 때문에 수입이 많지 않고, 여러명을 맡는다해도 위탁아동들은 대개 문제가 많고 학교와 법원, 카운슬러에게 불려다니는 일이 잦아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
윤씨는 또 좋은 일 좀 해보겠다는 ‘환상’으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본다고 전한다. 자기 아이 키우기도 힘든데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문제있는 아이들을 다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감옥에 들어오는 범죄자중 상당수가 포스터홈 출신이라든가, 홈리스중 많은 사람이 포스터홈에서 성장하다가 성인이 되어 나왔으나 갈 곳 없어 노숙하게된 사람들이란 지적이 있다. 범죄없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초는 따뜻한 포스터홈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한 소셜 워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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