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후반의 한 기업인과 나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젊게 사는 비결을 화제로 올리던 중 그분이 몇 달전 한국방문 때의 ‘기분 좋은 경험’을 들려주었다. 친구들과 룸살롱에 갔다가 나이 맞추기 내기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마담에게 내 나이를 정확히 맞추면 10만원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도무지 맞추지를 못하는 겁니다. (나를) 50대 중반쯤으로 보는 거예요."
그 분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쎄, 그 마담이 정말 그 정도로 나이 보는 눈이 없었을까는 의심스러운 일이다. 정확히 맞춰서 내기에 이기는 것보다 고객의 기분이 그 마담에게는 더 중요한 관심사안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 여부를 조목조목 따지기보다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해 그냥 푸근히 감싸 안아주는 태도는 술집 마담들의 장사수완에 불과할 터이지만, 그것이 많은 남성들이 아내에게서 받고 싶은 대접이라는 사실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한 남자 대학 동창생은 말했다.
"아이들 어렸을 때만 해도 사근사근하던 아내가 이젠 완전히 호랑이야. 이렇게 해라, 그런 건 하지 마라… 자기가 내 엄마쯤 되는 줄 안다니까”
간혹 힘든 일이 생겨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으면 아내는 위로는커녕 대뜸 "그러게 내가 뭐랬느냐"며 훈계조의 잔소리를 늘어놓으니 점점 입을 다물게 된다고 했다.
그럴 때 단골 술집에라도 들르면 그곳 여자들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하든 다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고, 자신이 무슨 대단한 사람인 듯 대접해 주니, 장삿속인줄 알면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대접 못 받는다’는 불만이 있기는 아내들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아내들은 남편이 자신을 ‘여자’로 대접해 주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 한 40대 주부의 불평이다.
"커트하고 파마까지 했는데도 남편은 그걸 알아보지도 못해요. 거실의 오래된 가구처럼 거기 있으려니 할 뿐 내게 도무지 관심이 없어요"
아울러 무슨 말을 해도 ‘남편은 그저 건성으로 듣고 흘리는 것’도 아내들의 흔한 불만이다. "좀 자상하게 들어주고 공감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번번이 배반당하고 나면, 술집 마담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여성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인터넷이 일부 여성들에게는 ‘마담’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지난 연말 ‘한국 남성의 전화’는 전년도 상담사례를 토대로 가정불화 중 16.3%가 아내의 인터넷 채팅에서 비롯됐다고 발표했다. 채팅은 속마음을 부담 없이 털어놓을 수가 있고, 대개 채팅 상대들이 관심 있게 들어주고 위로해 주기 때문에 일부 주부들은 너무 깊이 빠져들어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배우자가 섭섭하게 한다고 모두 술집을 찾거나 채팅에 매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개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배우자로 인해 채워지지 않는 쓸쓸한 마음의 자락이 있는 것은 일반적인 경험이다. 자녀 양육하며 집안 생계 꾸려나가는 일이 워낙 빡빡해 정신적 정서적 여유가 없고, 같이 살다 보면 상대방의 장점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약점이나 단점은 점점 더 커 보이다 보니 생긴 결과인 것 같다.
남성은 ‘인정’을 먹고살고, 여성은 ‘애정’을 먹고산다고 한다. 남성은 가까운 사람이 자신을 인정해 주고 자랑스럽게 여겨 주면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살고, 여성은 남편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섬세하고 친밀한 애정을 느낄 때 더 행복한 법이다.
인정도 애정도 모두 따뜻한 관심인데 그런 개별적 관심은 건강과도 직결된다. 고아원의 아기들은 먹고 입는 것을 제대로 챙겨줘도 엄마가 돌본 아기들에 비해 발육이 떨어지고, 똑같은 인큐베이터의 미숙아들 중에서도 매일 손으로 쓰다듬으며 관심을 준 아기들은 더 빨리 자란다는 일련의 실험 보고들이 있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배우자를 찾되 결혼하고 나면 한 눈을 감고 살라는 말이 있다. 웬만한 것은 눈감고 덮어두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좋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할 필요가 있겠다. 두 귀는 크게 열어두라는 것이다. 아내/남편이 마음 밑바닥에 고인 말들을 다 퍼낼 수 있도록. 그래서 내 남편/아내가 고아원 아이 같이 꺼칠해지는 일이 없도록.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