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35주년 맞은 흑인 무장 정치단체 ‘블랙 팬더’당
한때 “미국내 치안 최대의 위협적 존재”로 위세 떨쳐
최근 워싱턴 DC에서 열린 블랙 팬더 35주년 기념식에는 모두 200여명이 모였다. 에드가 후버 전 CIA 국장이 “미국 국내 치안 최대의 위협”이라고 규정했던 30년 전 같으면 경찰과의 총격전이 벌어지고도 남을 만큼 많은 수였지만 경찰은 이번 모임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총이라고는 모임장소인 UCD대학의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 속에서나 겨우 볼 수 있었다. 이 사진에는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휴이 P. 뉴턴, 바비 실, 엘드리지 클리버가 검은 바지, 검은 부츠, 그리고 검은 베레모를 쓴 모습이 담겨있다.
‘바비 실, 블랙 팬더 당 당수’란 명찰을 목에 달고 나타난 실은 푸른 색 셔츠와 카키 바지에 빨간 멜빵을 매고 있었으며 ‘www.bobbyseal.com’ 사이트를 홍보하는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 사이트에서는 팬더 기념품을 비롯, ‘바비 실과 함께 바비큐하기’(Barbeque’n With Bobby Seal)란 자신의 저서를 판매한다. 65세인 그는 허리가 약간 굽었고 배도 적당히 나왔다. 하지만 눈매만큼은 옛날 엽총을 어깨에 걸치고 다니던 때와 똑같이 날카롭고 여자처럼 긴 속눈썹도 여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블랙 팬더당 정보부 차관과 블랙 팬더 신문의 초대 편집장을 지낸 앨버트 하워드, 블랙 팬더 필라델피아 지부장을 맡았던 술탄 마매드 등 핵심멤버들이 참가했다. 팬더의 일리노이주 지부장으로 1969년 새벽 4시 시카고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경찰의 총탄세례를 맞고 죽은 프레드 햄턴의 아들 프레드 햄턴 주니어도 참석했다. 햄턴의 부인은 침대에서 기어 나와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프레드는 3주 후 유복자로 태어나 이제 21살이 됐다.
이날 팬더들은 총 대신 디지틀 카메라와 비디오를 손에 들고 ‘슈팅’하기에 바빴다. 아들 딸과 손자손녀를 서로 소개하기도 했다. 생존자라는 점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진한 유대감을 준다. 하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옛 멤버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으며 농담도 하고 옛 시절을 추억하는 와중에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드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그때는 정말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땐 경찰에 쫓김을 당했지만 요즘 일부 멤버들은 유령에 사로잡힌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자신들은 살아남았지만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그들을 다시금 전율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시 학생이었던 실과 뉴턴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팬더의 10대 강령을 작성했다. 자유, 취업, 주택, 교육, 흑인수감자 석방, 흑인 배심원 채택, 미국 연방으로부터의 탈퇴여부 투표, 경찰의 잔혹행위와 자본가의 착취, 흑인의 병역의무 중단 등이었다. 무장을 한 이들은 경찰의 뒤를 따라다니며 흑인 용의자에게 가혹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당시 젊은 흑인들 사이에선 공격받으면 곧 응사한다는 방침이 호응을 얻었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평화적 방법은 배척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무장 투쟁에 관심을 가졌지만 뉴턴과 실은 엘드리지 클리버와 함께 주민의 조직화를 통한 역량 강화와 학생들을 위한 무료급식, 무료 건강 진단 등에 집중했다. 이들의 아이디어 중 일부는 시 정부에 의해 채택되기도 했다.
팬더는 다른 과격 흑인단체들과 달리 백인 급진주의자들과의 협력에 호의적이었고, 미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를 바랬다. 40개 지부와 5천명의 회원을 확보하는 등 호응을 얻어갔지만 1974년 내부 분열과 마약 때문에 스스로 무너졌다. 경찰이 30개 이상의 지부를 습격했고 FBI가 거짓정보를 흘려 조직원들이 서로 배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많은 팬더 회원들이 여러 가지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 있다. 팬더들은 이 죄목들이 상당부분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최근 두 명의 팬더 회원이 불법적으로 기소됐다는 이유로 석방되기도 했다.
생존한 팬더들의 친목회는 팬더 창립 20주년 때 새크라멘토에서 결성된 후 5년마다 열리고 있다. 이날 파티는 동부에서 열린 첫 친목회로 경찰의 가혹행위, 청년층의 조직화, 노예화에 대한 보상, 감옥에 있는 팬더 회원들의 처지 등을 주제로 한 워크샵이 함께 열렸다. 기념식에서 한 회원이 창립 이후 피살됐거나 죽은 회원들의 명단을 읽어 내렸다. 거의 50명에 이르렀다.
한 늙은 회원은 9.11 이후 경찰의 일제 단속에 대해 우려의 심정을 토로했다. 옛날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날 저녁 행사의 MC를 맡은 클러디아 그레이슨(49)은 “60년대 FBI의 국내 첩보 프로그램인 코인텔프로의 합법화에 대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뉴올리언스에서 큰 딸과 함께 온 앨시아 프랑수아(53)는 1970년 뉴올리언스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총격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녀는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이 기꺼이 죽겠다고 나설 만큼 소중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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