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사람들
▶ 후러싱 제일교회 목회자부부
후러싱제일교회에 가면 한 젊은 목회자부부가 눈에 띤다. 하와이 이민4세로 영어권 청장년 사역을 맡고 있는 잔 파커 목사(37)와 집안의 3대째 목회자로 교육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부인 신혜경목사(39)가 그들이다.
신목사의 부친으로 김중언 담임목사와 같이 협동목사로 있는 신석윤목사(66)도 예외가 아니다. 출신 배경이나 목회자가 되기까지, 한 가족이 한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 사실 등 이들의 사연은 매우 이색적이다.
이중 파커목사 부부는 파커씨가 영어권이어서 처음에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목회자의 길을 걷기까지에는 각자 숨은 이야기가 많다. 파커목사의 가정 사를 들어보면 이민 온 선조들의 고생이 매우 심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00년도 초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 이민 온 증조할아버지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고 집안내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관해서 밖에 모른다고 말한다.
할아버지가 정착하지 못해 아버지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파커목사의 성장기는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하와이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미국인과 결혼해 보석상을 하며 두 아들을 낳았는데 지진이 일어나 보석상이 파산되고 부부관계도 그 당시 미국인과 결혼할 수 없는 법안이 통과돼 할아버지는 할 수 없이 할머니와 이혼하고 상하이로 가 한국인을 만나 재혼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아버지를 낳고 아버지는 파커목사를 포함해 삼남매를 낳았다. 이 당시 파커목사의 아버지는 상하이에서 카톨릭 영국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파커목사의 집안 4대는 모두 한국여성과 결혼했으나 한국말을 모르는 상태였고, 박씨를 파커로 쓰게 된 것은 사용이 불편해 한국이름을 법에서 인정을 안해 주는데다 인종차별도 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혼 전까지 사업을 했다고 한다.
파커목사의 부친은 18세 때 미국으로 워싱턴의 윗트워스 칼리지에 이어 캐나다에서 메디칼 스쿨을 다니다 한국으로 가게 된다. 해방 후 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망명생활을 끝낸 후 한국으로 돌아갈 때 함께 나가 그의 비서로 있다 사무실에서 파커목사의 어머니를 만나게 됐다고 한다.
그러자 6.25동란이 나 그의 아버지는 미국에 와 다시 캐나다의 메디칼 스쿨에서 1년 공부하다 전쟁이 끝나면서 한국에 파커목사의 어머니를 찾아 결혼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6년간 살면서 대구 동산병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의학 실험실에서 일했으나 너무나 힘이 들어 다시 미국에 와 메디칼 스쿨을 접고 NYU에서 병원관리학 석사과정을 마쳤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시 뉴욕에서 디쉬 워셔, 메디칼스쿨 재학 시 익혔던 기술로 면허를 따 메디칼 실험실 같은 곳에서 일을 했다.
파커목사는 이 때 플러싱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오하이오 재향군인병원에 랩 오피서로 새 직장을 얻은 아버지를 따라 그 곳에 이주한다. 그 곳에서 그는 중, 고교시절까지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또 승진해서 버지니아 군인병원으로 옮겨 1년 살다 다시 오하이오 병원으로 와서 줄곧 일하다 한국의 호서대학과 포항 간호대학의 영어교수로 활동했다. 그리고 4년 전 혈압으로 미국에 와 수술하다 깨어나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파커목사는 작고한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는 모국어인 영어로 항상 무언가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 나가 영어를 가르친 것도 바로 그런 차원이었습니다" 라고 전한다. 그의 아버지는 오하이오 한인교회에서도 영어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파커목사는 중 고교과정을 마치고 오하이오의 뉴컴 메디칼 프로그램 6년 과정 중 2년을 마친다. 그리고 1년 휴교 후 오하이오 트리니티 신학교에 입학, 1년간 하나님말씀에 심취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4년 남은 의학공부를 계속할 것을 종용한다.
형은 오하이오에서 현재 귀 닥터로, 누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상담심리학 박사로 대학교수가 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조금 달랐다. 중학교 시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부모를 따라 한인교회를 다녔지만 의사소통이 잘 안돼 신앙생활을 게을리 했다고 한다.
그는 다시 메디칼 프로그램을 공부했지만 2년만 마치고 하기 싫어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지 마라" "박사 해야 한다" "안 하면 당장 나가라 했다"는 것이다. 파커목사는 집에서 쫓겨나 차에 짐을 싣고 LA로 왔는데 막상 와보니 공부할 돈도 없어 사전장사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3년만에 성공해 그는 굴지의 회사에서 탑 매니저까지 올라가 돈도 많이 벌었다. 이처럼 잘 나가는 그에게 어느 날 시련이 다가왔다. 밤늦게 일하고 새벽 두 시 혼자 운전을 하고 가다졸아 트럭에 깔리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 바람에 혀도 잘리고 온 얼굴에 상처 투성이었는데 다행히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는 죽음 가운데 병상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된다. "너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 파커목사는 정신차려 다시 클레몬트 신학교에 들어갔다. 이 때 만난 여인이 현재 부인으로 서울 음대를 졸업하고 한 학기 먼저 유학 와 있던 신혜경씨였다. 이 당시 파커목사에게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차도 도둑맞고 빈 털털이에다 사고로 망가진 얼굴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는 91년도 학교 도서관에서 신씨를 만나 일년 후 결혼해서 같이 공부하고 파커목사는 94년도 목사안수를 받은 후 상담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CA에서 한 한인교회 영어담당부목사에 이어 언약교회에서 3년간 청소년부를 맡으면서 영어예배를 시작했고, 현재 뉴욕연회감독의 파송으로 지난해부터 플러싱 제일교회의 영어부 담당목사로 활동중이다.
길고도 먼 여정이었다. 오랜 고난 끝에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목회자의 길을 걷게된 것이다. 부인 신혜경목사도 뒤이어 신학교를 나와 진주(8), 예주(5) 두 딸을 낳고 98년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대물림을 하듯 목사가 된 신혜경목사의 가정내력도 뜻이 깊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시골 교장이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장님이 돼 하나님을 영접하면서 시작된다. 할아버지는 농장을 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목회활동을 하였다.
이어서 아버지 신석윤목사도 다니던 서울 법대를 그만두고 장님인 아버지를 도와 형제들을 부양하며 시골에서 영어선생을 하다 결혼한다. "왜 그 길로 가느냐"며 환상이 계속 나타나 그는 다시 감리교신학대학원에 들어가 웨슬레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미국으로 와 CA에서 신학 석.박사학위를 딴 후 한국총신신학교 교무처장에 이어 방배동에 신영교회를 세워 목회하다 천안대학 부총장으로 은퇴했다. 할머니는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전도사로 목회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신석윤목사는 지난해 8월 은퇴하고 딸을 방문 왔다 동 교회 김중언 목사의 요청으로 이 교회에서 딸, 사위와 함께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 됐다. 파커 목사는 어릴 때 동양인인 이유로 인종차별을 받는 코리언이 싫었다. 때문에 부진한 성적에다 급우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학교 가기를 아주 싫어했고 항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지금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힘든 미국생활을 하고 있는 청장년들을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활의 중심이 되면 자연히 필요한 건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마음의 평화가 없고는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보통 좋은 학교, 돈 버는 사업이나 직장만 중시 여기는데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파커목사는 하나님을 만나 진정한 평화를 맛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면서 인생의 커다란 비전과 목표를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제시한다. "인생은 내가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운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으면 꿈을 주고 인생의 올바른 방향도 제시하기 때문에 자연히 인생이 형통할 수밖에 없다."라고. 파커목사 가정의 세 목회자 활동이 그들을 찾는 한인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