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로댐 클린턴, 엘리자베스 핸포드 도울, 다이앤 파인스타인, 크리스틴 토드 위트먼 - 2000년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한창 거론되던 지난 99년 ‘백악관 프로젝트’라는 여성 단체가 10만명 대상 모의투표를 토대로 발표한 여성 대통령감들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몇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한명 빼고는 모두가 개신교도이고, 대부분 연방상원의원이나 주지사 경력이 있으며, 대개 법조계 출신이고, 대머리는 거의 없으며, 본선에서 상대후보보다 대개 키가 컸다는 점등이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분명하고 예외없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너무 당연해서 공통점으로 인식도 안되는 특징, 한번도 무너져 본 적이 없는 높은 ‘성의 장벽’을 허물어트리고 이제는 미국에서도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조직된 것이 ‘백악관 프로젝트’이다. 90년대부터 활동한 이 단체는 서두르지 않는다. 2008년 선거를 기점으로 여성후보들이 여럿 출마할수 있도록 정치 토양을 조성한다는 것이 일차적 목표이다.
‘토양’이란 여성이 주지사, 대기업 사장, 혹은 대통령등 지도자로 활동하는 것이 전혀 특이하지 않은 일, 일상적인 일로 보이는 분위기를 말한다.
신문사에서 근무하다 보면 가끔 독자들의 ‘오해’를 받는 일이 생긴다. 내가 담당자라서 전화를 받았는 데도 독자는 “기자를 바꿔달라”고 재차 요구를 한다.
기자는 당연히 남자일 것으로 생각하다가 갑자기 여자 목소리가 들리면 필경 사무원이나 비서일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들이다. 일개 기자직에 대해서도 이런 고정관념이 있는데 대통령직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러니 그 완강한 성적 편견의 벽을 깨려면 “어서 여성 대통령이 나와서 국사를 주도하는 모습이 매일 TV에 방영돼 사람들의 눈을 바꿔 놓아야 한다”는 단순한 발상, 혹은 소망이 지금 한국 여성계에 ‘여성 대통령’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는 데 대해 여성계에서 이론이 있을 수 없지만 문제는 그 여성이 박근혜씨라는 사실이다.
발단은 시사월간지 ‘말’3월호에 실린 한 젊은 여성주의자의 ‘박근혜 지지’발언이었다. “이 땅에서는 왜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면 무조건 찍히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큰가”라고 문제를 제기한 그는 여성 정치인을 ‘멸종 위기의 동물’에 비유하면서 “멸종 위기의 동물은 그게 해충이라도 보호해야”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손해를 보는 그들에게 여성들만이라도 일정한 프리미엄을 줘야 한다”며 여성중에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박근혜씨를 여성들이 힘을 모아 밀자는 내용이다.
그의 주장은 ‘박근혜를 찍어야 진보다’는 센세이셔널한 제목으로 잡지에 실리면서 여성계에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찬성쪽의 입장은 간단하다. “여성의 권익 개선을 위해 여성표를 결집하자. 현재로서는 박근혜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대쪽 주장의 핵심은 “박근혜를 ‘여성’으로 볼것인가”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분명 여성이지만 그를 여성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박씨는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 막바지때 이회창 후보를 공식 지지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함으로써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되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승리하고, 그해 11월 한나라당 부총재 경선에서 2위로 당선되는 초고속의 상승세와 인기의 근원이 ‘박정희 향수’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신인다운 참신성등 그에게 평가할 만한 자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정치적 능력도 검증받지 않은 상태인데다 개발 독재와 보수 가부장적 권력의 상징인 부친의 후광으로 부상한 인물을 ‘여성’의 이름으로 지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박근혜라는 정치재목을 겉으로 드러난 나무줄기를 보느냐 뿌리를 보느냐에 따라 찬반이 갈리는 것같다. 여성이라고는 드문 정치무대에서 그중 눈을 끄는 나무라는 사실에 무게를 두면 지지파가 되고, 그의 정치적 영향력의 근원인 뿌리에 비중을 두는 측은 반대파이다.
한국에서‘여성 대통령’의 가능성은 현재로서 낮다. 그러나 이번 논쟁을 여성계가 ‘여성 대통령’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장기적 안목으로 걸맞은 재목을 길러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를 길러내는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