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저지 한인상권을 가다
▶ (9) 저지 시티
9.11 테러 이후 모건 스탠리를 비롯해 골드만 삭스, 메릴린치 등 굴지의 금융회사들이 잇따라 진출해 제2의 월가로 불리우는 뉴저지주 저지시티의 상업환경이 갈수록 개선되고 있고 한인을 주축으로 한 소매업종 진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뉴왁에 이어 뉴저지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인 저지시티는 총 인구가 24만 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는 4만2,000명 이상으로 주 전역에서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이 일대 전체 소매업소는 총 3,000개 가량으로 이중 한인업소는 인종별로는 최대인 350개를 상회하고 있으며 하이얏트 호텔과 각 금융기관 등 각종 상용건물을 중심으로 개발이 한창인 제2의 월가인 워터프론트 일대에도 세탁소와 델리 그로서리 등의 업종에 한인업소가 10여개 이상 진출하는 등 신흥상권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저지시티의 판매세는 3%로 타 지역의 6%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상권안전과 활성화를 위해 시 정부의 소상인 우대정책이 의욕적으로 이뤄지고 워터프론트 개발로 인해 도시전체가 고급화되고 있어 소매업이 갈수록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업종별로 진출해 있는 한인업소는 네일(70개 추산)과 세탁업(40개)을 주축으로 청과업이 30여개, 주얼리와 의류, 델리 그로서리, 보석, 식당, 뷰티 서플라이, 신발, 태권도장 등으로 다양한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지역 최대 상권인 저널 스퀘어와 센추럴 , 버겐, 웨스트 사이드 애비뉴에는 한인업소가 100개 이상 진출해 이 일대 상권을 장악했다.
시 정부는 소매상권 활성화와 이를 통한 세수익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각 소매업소의 간판교체를 포함한 업소 외부 인테리어 비용으로 2,000달러를 무상지원하고 있으며 최근 태권도장을 비롯한 상당수 한인 소상인들에게 이 같은 혜택을 부여했다.
한인업주들은 이 지역 주민의 인종성향이 무려 98개국 출신 이민자들로 구성돼 있어 주민 모두가 소수계로 인종차별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한인 등 소수계가 마음놓고 상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수많은 업소에서 취급하는 상품이 다양한 것은 물론 상권과 주택가가 함께 형성된 지역이 많고 밀집된 높은 주민들의 구매력이 각 업소의 매출증대로 이어져 이 지역 상권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은 이탈리아와 아이리쉬, 서독 등 유럽계 백인이며 흑인이 20%, 남미계가 20%를 한인 등 아시아계가 15%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20여 년 간 이 지역 중심상권인 센추럴 애비뉴에서 서점 및 잡화업을 운영하고 전체 3000여 소상인들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해온 윤여태 저지시티미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소매업이 발전해야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원칙에 따라 그동안 시 정부는 소상인 우대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며 "최근엔 워터프론트 개발로 인해 시 전체 상권이 활기를 띄고 있고 맨하탄 등 뉴욕과 타주의 한인들이 각종 업종을 오픈하는 등 이 지역 진출에 대한 타 지역 한인 상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윤 회장은 "시 정부는 상권안전을 위해 순찰활동은 물론 각종 안전대책에 만전을 기하고 있어 지역 상권의 발전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한인은 물론 각 인종들이 소매업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한인상권은 한인들의 취업이민이 본격 시작됐던 지난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940년대까지 미국 최대규모를 자랑했던 저지시티 메디컬센터에서 대규모 인원의 한국 간호사를 채용했던 지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부인을 따라 도미한 남편들이 하나둘씩 업소를 오픈하며 한인상권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 한인들의 이민붐이 일었던 1980년대 초반 한인 이민자들은 뉴욕과 뉴저지 등 타지역에 비해 생활비가 저렴하고 맨하탄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는 대중교통시설이 잘돼 있는 저지시티에 소매업소를 오픈하고 정착해 한인상권의 교두보가 마련됐다.
불과 20년만에 청과와 잡화가 주를 이뤘던 100개 미만의 한인업소는 거의 모든 소매업종으로 확산됐고 업소도 350개로 급증해 인종별 최대 상권을 이룩했다.
현재 뉴욕 일원에서 자리를 잡은 한인 초기 이민자 중 상당수는 당시 저지시티에서 흘린 땀의 댓가가 아메리칸 드림의 초석이 됐다고 회고하고 있다.
소수계를 차별하지 않고 소매업소를 통한 경제발전을 꾀했던 시정부의 소상인 우대정책과 초기 이민자인 한인 1세대들의 근면, 성실함이 저지시티를 주 전역의 경제에 핵심역할을 하는 도시로 일궈낸 것이다.
▲ 인터뷰 ‘저지시티 미국경제인협회’ 윤여태 회장
"과거 청과와 잡화업이 주 업종인 한인상권이 이젠 350개로 늘어나 인종별 최대집단으로 부상한 것은 소상인을 우대한 시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각종 세제혜택과 광범위한 투자촉진지역 선정, 상권과 주민안전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은 시 정부의 노고에 감사를 전합니다"
저지시티 전역의 3,000여 소매업소 업주들을 회원으로 둔 최대 경제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 윤 회장은 "최대 상권으로 자리 매김한 오늘의 한인상권은 초기 이민의 한인들의 피땀어린 노력 없이는 결코 이룩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 지역 소매업 경기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한인업종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으며 지역주민들과의 관계도 너무 좋아 문제될 게 없다"고 자신했다.
그는 상가안전을 위해 연 320만 달러의 예산이 들어가는 50명의 비번 경찰관을 상가순찰을 담당하는 업무를 성사시킨 뚝심의 사나이로 유명하다.
지역 경제개발을 주도하는 저지시티 경제개발공사(EDC) 이사와 허드슨 카운티 경제정책심의위원으로도 활동하는 윤 회장은 "상권이 신장돼야 시 정부는 물론 지역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시정부 예산으로 비번 경찰을 상가순찰에 투입하는 것은 주법에 위배된다는 주 정부의 결정에 맞서 2년여간 투쟁 끝에 주법 자체를 바꾸는 엄청난 일을 해냈다.
맨하탄으로 향하는 버스와 패리 등 대중교통 운행이 늘어나고 9.11 사태로 인해 뉴욕서 유입되는 인구가 급증해 향후 이 지역 경제가 매우 밝다는 전망을 내놓은 윤 회장은 "한인상권이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고 각종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며 "이 지역 상권에 진출하려는 한인들에게도 각종 정보제공 등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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