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의 한 동료는 요즘 퇴근하기가 겁이 난다고 했다. 회사를 떠나 집에 도착해 우편함을 열때까지가 초긴장의 시간이다. “오늘은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까”- 가슴 조이며 우편물을 꺼내는 순간 두툼한 봉투가 손에 잡히면 전신이 흥분과 안도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대어를 낚는 순간 낚시꾼의 손맛 같은 두툼한 봉투의 전율은 좀처럼 되풀이되지 않고 번번이 얄팍한 봉투들만 손에 들어온다. 3월초부터 “살얼음을 밟듯 하루하루가 불안하다”는 그는 12학년 짜리 아들을 둔 엄마이다.
봉투의 두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대학합격 통지 시즌이 되었다. “합격을 알리게 되어 기쁩니다”로 시작되는 편지는 입학서류들이 들어 있어 두툼하고, “미안합니다”로 시작되는 불합격 통지는 편지 한 장 달랑 들어있어 얄팍하다보니 대학진학생이 있는 집 식구들의 관심은 온통 봉투 두께에 쏠릴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버클리를 제외하고는 이제 UC계열 대학들이 거의 입학사정을 끝낸 상태인데 “올해는 유난히 낙방생이 더 많은 것 같다”는 것이 대학 진학생 학부모들의 느낌이다.
“학교성적이나 SAT점수로 보면 무난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던 대학에서도 불합격 통지가 왔어요. 그런가 하면 우리 아이보다 성적이 낮은 아이는 합격을 했더군요”
한국처럼 숫자로 분명하게 표시되는 커트라인에 따라 합격·불합격을 가른다면 불평이 있을 수 없겠지만, 미국의 입학사정은 특기, 과외활동, 리더쉽, 자원봉사…학생의 전반적 활동과 능력을 평가대상으로 한다니 부모들은 종종 혼란스럽다.
무엇을 기준으로 입학생을 선발했는지 알수 없을 때가 많고, “저 아이는 됐는데 우리 아이는 왜 안됐는가” 하는 억울함을 느끼는 부모들도 많다. 미국 부모들도 다르지 않아서 합격통지가 끝나는 4월쯤 되면 “우리 아이가 떨어진 이유를 대라”는 부모들의 항의 전화로 각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미국에서 대학입학이 이렇게 치열한 경쟁의 관문이 된 것은 최근의 현상이다. 대학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을 그 근본 이유로 들수 있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미국의 고교 졸업생중 대학 진학자는 절반 정도였다. 학교 성적이 좋고 고등학문에 뜻이 있는 학생들은 대학에 가고, 나머지는 적당한 직장을 잡아서 그에 맞는 생활방식에 안주하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교 졸업생의 2/3가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 졸업장을 가져야 제대로 된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때문이다. 진학 희망자에 비례해 입학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SAT 평균 점수는 그 어느때 보다 높아졌고 AP 과목 이수는 10년전의 두배가 되었다.
입학 경쟁이 얼마나 치열해졌는지는 남가주 한인사회의 경우, UCLA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만 보아도 알수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웬만하면 들어가는’ 대학쯤으로 여겨졌던 UCLA가 지금은 ‘들어가 주기만 하면 (아이를) 업고 다닐’ 대학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올해부터 UC 계열대학은 학교성적과 SAT점수 위주의 종전 입학사정 방식 대신 ‘포괄적 평가제’를 도입, “낙방생이 유난히 많은 것 같다”는 부모들의 ‘느낌’은 근거가 있다.
UC는 지난해까지 입학생의 75% 정도를 성적 기준으로 선정, 실력만 되면 대개 합격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학업 성적과 아울러 학생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노력해서 어떤 남다른 특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포괄적으로 평가, 지난해 기준으로는 합격 가능하던 성적의 학생이 올해는 불합격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4,000명 정원에 4만1,000명이 지원한 UC샌디에고의 경우 입학사정시 특별히 어려운 환경이나 남다른 특기·리더쉽을 점수로 가산했다. 예를 들면 “편부모 가정 자녀에게는 250점, 몸이 약해 고생하며 공부한 경우는 500점, 부모중 대학 졸업자가 한명도 없는 경우는 300점, 12학년때 학생회장을 한 경우 300점…”하는 식이다.
UC의 이같은 입학사정 방식은 이제까지 명문 사립대학들에 국한되었지만 앞으로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도입할 것으로 전망되어지고 있다. SAT학원에 너무 의존적인 한인 가정들이 자녀의 대학입학 전략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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