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델타포스서 부상으로 제대, 고향마을에서 진료
왕진가방을 들고 다니는 시골 의사란 직업은 지난 50년간 진행된 병원의 도시집중 및 대형화, 의사들의 전문화 추세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인구 200명에 불과한 버지니아주 셔난도 밸리의 유일한 의사인 롭 마쉬는 시골 의사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살며 마을 주민들의 신뢰와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특수부대 델타포스 소속 군의관으로 수많은 전투에도 참가했던 그는 자신의 군대생활이나 소말리아에서 박격포 공격으로 거의 죽을 뻔했던 경험을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진 않는다. 예의 바른 그의 환자들 역시 그의 과거에 대해 굳이 캐물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병원 벽에는 전쟁터에 투입되는 군인들, 추락한 블랙호크 헬리콥터를 그린 수채화들이 걸려있고, 환자들은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이 그림들을 보면서 훈장까지 받은 전쟁 군의관이 어떻게 이 시골마을까지 와서 농부들과 공장 노동자들을 치료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게 된다.
픽업 트럭을 몰고 왕진을 다니는 마쉬는 "마을 주민들이야말로 내가 어디에서 왔고, 왜 이곳에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존재"라고 간단히 말한다. 6년 전 아내 바바라와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오기 전까지 이 마을에는 의사가 없었다. 그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이곳에 와서 이런 일을 하라는 신의 부르심이라고 느낀다"고 덧붙인다. 요즘 의사들에게서는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정성과 배려로 환자들을 대하는 그의 병원에는 집에서 만든 케익을 가져오거나, 자신들이 키운 가축의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들르는 마을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쉬의 현재 생활은 델타포스 시절의 삶과 비교하면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그의 병원 사무실은 그가 부상자를 치료하고, 친구들이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본 전쟁터의 유물로 가득 차 있다. 책장에는 델타포스의 상징인 단도가 액자에 전시되어 있고, 두 개의 진료실에는 델타포스 부대의 전쟁 그림들이 인체도와 나란히 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가 받은 공훈훈장과 두 개의 동메달, 육군 명예 부상장은 집과 그의 트럭에 간직되어 있다. 하지만 1993년 10월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서 델타포스와 레인저 부대에 일어난 일을 그린 할리웃 영화 같은 분위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마쉬는 아직 블럭버스터 영화 ‘블랙호크 다운’을 보지 않았다.
"동료 18명이 죽는 모습을 연기로 재현해 낸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그는 제작자들이 자문역을 의뢰했을 때도 거절했다. "환자들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46세인 마쉬는 3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포트 브래그를 방문한 이래 줄곧 그린베레가 되는 게 꿈이었다. 아버지 존 마쉬 주니어는 당시 셔난도 밸리 출신 연방의원이었고, 이후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엔 육군장관을 지냈다. 위생병이 되는 게 가장 빨리 그린베레가 되는 길임을 알게 된 마쉬는 육군에 입대한 후 이스턴 버지니아 메디칼 스쿨에서 학위를 받았다.
다른 정예부대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여러 차례 죽은 고비를 넘겼다. 1991년 걸프전 때는 자기 대신 이라크행 헬리콥터를 탔던 위생병이 헬리콥터가 추락하면서 사망했다. 2년 후 소말리아에서는 부상자들을 실어 나르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박격포가 떨어져 바로 옆에 서있던 사람이 즉사하고, 마쉬도 수많은 파편이 복부를 찢고 다리 동맥에 꽂히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부상자들을 분류하는 본연의 임무를 할 수 있도록 부상자들을 하나씩 자기 앞에 데려와 달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부상하기 전부터 마쉬는 고향인 셔난도 밸리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마침 버지니아 대학은 시골 사무실을 열어 의대생들에게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린 시골 의사의 삶을 보여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대학의 위성병원을 맡아 운영하게 된 그는 노인층과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서는 왕진도 다니지만 진료비나 약값을 청구하지 않는다. 뇌일혈 환자의 기억력을 측정하기 위해 딸네 집 병아리가 몇 마리였나를 물어보고, 약값에 쫓기는 암환자에게는 세일즈맨들이 샘플로 준 약을 건네준다.
"150달러의 청구서를 보내면 지불이야 하겠지만 지속적인 진료를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에게 마을사람들은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친구들"이다. 그는 각종 경조사를 챙기고, 공동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여기에선 사람들과 금방 가까워질 수 있다"는 그가 다음 세대 의사들에게 전수하고픈 철학은 "좋은 의사라면 사람들의 병을 잘 고치고 마을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델타포스 시절의 가장 좋았던 점을 이 작은 농촌 마을에서 재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모두가 서로 서로를 보살펴주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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