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4차 로스앤젤레스 국제 펜 전시회 성황
종이에 펜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펜이 완전 구식 유물이 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펜을 이용해 노트를 하고, 편지를 쓰고, 또 각종 서류에 서명을 한다.
물론 어떤 펜을 사용하는가는 사람과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부시 대통령이 79센트짜리 볼펜으로 국제조약에 서명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도널드 트럼프는 최소한 18금 펜촉이 달린 만년필로 사인하지 않을까?
화려한 펜 광고와 펜 관련 웹사이트들을 살펴보면 고급 및 골동품 펜에 대한 엄청난 시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열린 제14차 연례 로스앤젤레스 국제 펜 전시회에 참석한 2,000여명의 열광적인 펜 애호가들 틈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수퍼마켓에서 비닐봉지에 포장된 펜을 살 사람들이 절대 아니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고급 펜을 한번 가져본 이후 형편 닿는 대로 계속해서 모으게 된 수집가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잉크 묻히고 다니는 케케묵은 느낌의 괴짜들을 상상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전시회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테크노필들로 북적거렸다.
이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오랫동안, 그리고 진지하게 인류문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며, 인류의 지식이 후대에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손으로 직접 돌이나, 양피지, 나중에는 종이에 써서 전수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러한 전통이 사라지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으려고 한다.
158개 부스 중 일부는 최고급 펜 제작회사들을 위한 전시공간이었지만 15개국의 수집가들이 이곳에 몰려든 진짜 이유는 자신만큼이나 펜에 대해 열정을 지니고 있는 펜 애호가들을 만나 누가 더 좋은 펜을 가지고 있는지 잘난 체도 해보고, 서로 팔고 바꾸는 거래를 하기 위해서다. 이번 쇼를 공동 후원한 크리스 오저스는 워너 브라더스의 기술감독관. 그는 1890년대부터 1920년대에 걸쳐 만들어진 초기 파커 만년필들을 수집한다. 그는 자신의 수집품들을 팔거나 혹은 물물교환하기 위해 아내와 아들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시용 테이블에 진열하고 있었는데 진짜 보물들은 테이블 밑에 감추어 놓고 있었다. 그 중에는 세계 1차대전 때 군인들이 집에 편지를 쓸 때 사용했던 1917년산 파커 ‘총알펜’도 있었다. 총알처럼 생겼지만 뚜껑을 여니 펜촉이 드러난다.
펜 애호가들은 그냥 놔두고 보기 위해 펜을 모으는 사람과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수집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전시회를 찾은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겹친 사람들이다. 이들을 값비싼 전시용 골동품 펜들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매일매일 돌려가면서 사용하는 다른 펜들도 가지고 있다. "이 전시장에서 우린 모두 어린아이가 된다"고 말하는 버트 헐버트는 로스앤젤레스의 UCLA 메디칼센터 새 빌딩의 건축 매니저. 그는 자신이 가장 즐기는 게임을 하기 위해 오래된 펜들을 들고 나왔다. "상대방에게 다가가 테이블 위에 내 펜 하나를 털썩 놓는다. 그러면 그는 나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수하고 난 다시 더 좋은 것을 내놓는다. 상대방이 ‘내가 졌다’고 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라고 그 게임을 설명한다. 그의 겉옷 안쪽에는 각종 펜으로 가득 찬 두 개의 커다란 주머니가 양쪽에 꿰매져 있다. 하나하나 세무가죽에 개별 포장된 후 다시 작은 플래스틱 백에 넣어진 펜들 중에는 "1905년 파커 리번 펜과 1911년산 워터맨 금세공 펜도 있다"고 자랑한다.
펜 수집광들은 자신의 보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펜’이란 보통명사를 거의 쓰지 않는다. ‘파커 빅 레드’ ‘파커 51’ ‘펠리컨 그린’ ‘셰퍼 레가시’ 등 항상 구체적인 메이커와 스타일을 이야기한다.
파리에서 온 크리스토프 라베망은 자신이 직접 만든 혁신적인 펜을 팔러 나왔다. 금가루와 섞은 ‘진짜 운석’으로 20개 한정 생산한 만년필이다. 한 자루에 6,000달러를 호가하는 이 만년필을 누가 사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런 물건이라면 살 사람이 모자랄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6세된 아들을 데리고 온 캘리포니아의 스캇 서머필드는 만년필을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만년필을 알리기 위해 매년 새학기 때 아들과 딸의 반 친구들에게 만년필을 선사한다고 했다. LA의 데니스 로튼은 20개의 수집용 펜을 매일 사용한다. "나는 보험을 팔면서 매일 다른 펜을 씁니다. 내가 사용할 수 없는 펜은 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도 펜을 쓰게 했죠. 그 애들이 매일 컴퓨터를 사용하더라도 종이와 단절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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