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우표업계에 일찍이 뛰어들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한인이 있다. 수필가이자 우표전문 딜러인 박철훈씨(59. 브루클린 선 셋 팍 거주).
박씨는 65년도 서울 약대 출신으로 미국에 와 약사면허증을 땄으나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우표비즈니스로 업종을 변경해 26년간 집요한 노력 끝에 현재 대형 외국업체들이 인정하는 한국인 우표수집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박씨의 우표에 관한 경지는 이미 15세 때부터 한국에서 취미로 곳곳의 우표 쇼를 찾아다니면서 인연을 맺게 된 것이 시초였다.
당시 그는 학교 우표클럽에 가입하면서 그 때 이미 대한 우표회에 일련 번호 303호를 갖게 까지 되었는데 그 것이 지금은 몇십만 번까지 갈 정도가 돼 박씨는 한국에서도 따지고 보면 우표계에서 대 원조격인 셈이다.
한국에서 양리학 강사직까지 팽개치고 그가 미국에 온 것은 약사이민으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민 온 지 3년만에 딴 약사면허증을 헌신짝처럼 팽개쳐 버리고 불과 2, 3센티 평방미터밖에 되지 않는 우표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어머니와 아내 이규옥씨(56)의 만류와 주변의 조소에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그는 오로지 자신이 선택한 길을 향해 꿋꿋이 걸어왔다.
그 결과 박씨는 이미 79년부터 일본 동경의 최대 우표경매회사와 나고야에서 두 번 째 가는 우표업체에서 인정받는 우표 납품업자가 되었고 90년대 들어서는 자신이 직접 우편경매회사를 차려 우편경매 잡지발간을 통해 전세계 우표 수집자를 대상으로 우편 경매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2년 전부터는 이 사업을 전산화시켜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우표를 매입하고 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우표를 파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확대시켰다. 박씨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난이 많았다. 더불어 애환도 많았다고 한다.
76년도 처음 미국에 와 1주만에 어머니가 운영하는 기프트 샵에서 아내와 함께 일하다 강도를 만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보따리를 싸려고 했던 적도 있었고, 이모 댁의 도움으로 다시 눌러 앉아 야채가게에 처음 나가 막노동을 한 적도 있었다.
그 것도 3개월, 어느 날 무거운 짐을 들다 박씨는 가게에서 쓰러져 더 이상 이 일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그는 77년부터 브루클린의 베이릿지 허스피탈에서 약사공부를 하기 시작, 한편으로는 부인이 할 수 있는 기프트 샵을 흑인동네에 차렸는데 어느 날 엄청나게 내린 폭설로 이 가게가 흑인들에게 송두리째 털리는 불상사까지 당했다. 이때부터 그의 아내는 야채가게 캐셔로 일하면서 집안의 생계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움 중에 딴 약사면허마저도 박씨는 평생 직업으로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같이 일했던 선배가 일이 너무 심해 하루종일 서서 일하다 보면 다리에 정맥 줄이 생길 까봐 항상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아놓고 있는 것을 본데다 주급도 너무 적어 그는 안되겠다 생각, 우표업계에 눈을 돌리기로 마음을 굳힌다.
이런 결심은 그가 이미 약사인턴 생활을 1년간 하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주말이면 지하철을 타고 우표 쇼를 다닌 것에서 비롯된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유태인들이 미국에 건너올 때 탈무드 경전 뚜껑을 뜯어내고 그 속에 1백년 정도 된 우표를 넣어와 많은 사람들이 자리잡은 것을 알게 되었다.
박씨에 따르면 지금도 미국과 전 세계 우표 계는 유태인이 75%를 장악하고 있을 만큼 유태인의 우표업계 진출은 놀라울 정도라고 한다. 그는 유태인들이 유가증권으로 제일 먼저 꼽는 것이 바로 현금, 다이아몬드, 그리고 우표라는 사실을 그 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것은 바로 1929년 경제 대공황 당시 주가는 휴지조각에 불과했어도 유일하게 우표만은 그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던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유태인들이 오늘날 세계 경제 거상이 된 이유를 알아차리고 이 때부터 병원 약사 일을 그만두고 아무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손을 대기도 어려운 미 우표협회 Swan Stamps에 등록, recell no. 허가를 받게 된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모두 "남들은 다 백만 불 짜리 약사면허 따 일하는데 돌았느냐" 면서 너무나 기가 막힌 탓에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했다고 한다.
"13센트(당시 가격) 짜리 우표 팔아서 어떻게 사느냐"하고 할만큼 한인들은 우표가 지닌 시장성에 무뢰한이었다. 그러나 박씨는 이미 의지가 확고했다. 식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1년 동안 곳곳을 누비며 값나가는 우표수집에 매달렸다. 그 결과 박씨는 뉴욕근교에서 소형 해방조선 기념우표를 발견, 일본 동경의 우표회사에 보냈더니 경매에 굴지의 우표수집가들이 다 몰려 수만 달러에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때부터 식구들은 그를 이해하기 시작, 어머니로부터도 지원 금을 받으면서 바야흐로 그는 일본 동경 긴자의 최대 우표경매회사에 우표를 납품하는 전문수집가가 되었다. 그는 우표수집을 위해 미주 전역을 매주 순회, 우표 쇼를 다녔으며 세계적인 미 우표경매회사에서 찾아내고 스스로 우표잡지에 광고를 내 물건을 입수하곤 했다.
도처에 숨어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그는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고 그의 서재가 온통 우표관련 책으로 꽉 찰 정도로 우표에 대한 상식과 정보를 알기 위해 수많은 서적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박씨는 우표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전문수집가가 되어 미스터 팍(Mr. Park)이라고 하면 다 통할 정도가 되었다.
그는 현재 맨하탄의 조니랭귀지 센터에서 어드바이저로 있는 부인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이런 결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 동안 숱한 고생 속에서도 말없이 자신을 도와준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그의 아내는 컴퓨터를 잘 모르는 그를 위해 2년 전 대학에서 전공한 컴퓨터를 통해 전산화 작업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한다. 당시 컴맹이었던 박씨도 아내로부터 기초를 배워 그 동안 피나는 연습 끝에 마침내 우표기업을 국제적으로 전산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씨는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에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너무나 행복하다"면서 건강만 허락한다면 이 일을 계속해서 하겠다"고 다짐한다. "다행히 두 딸들은 부모가 고생하는 것을 보아 선지 더욱 학업에 정진해 큰딸은 MIT, 뉴욕메디칼 칼리지 산부인과 레지던트로 의사를 만나 의사부부의 길을 걷고 있고, 작은딸은 NYU를 나와 목회자와 결혼해 샌프란시스코의 교회 초빙목사 부부로 가 있다고 한다.
박씨는 "인생이란 좌절 없이는 일어설 수 없습니다." 박씨는 "그 동안 어려움이 많았지만 딸들이 다 잘 자라주고 가게 빚도 다 갚아 이제는 좀 숨을 돌린다"고 말한다.
그는 언제나 아내가 불평할 때마다 항상 마음에 행복이 있어야 그게 진짜 행복이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가 그로서리를 하면서도 망할 때까지 끝끝내 맥주도 안 팔고 담배도 팔지 않았고 어려울 때 친구가 차용증도 없이 그에게 거액을 빌려주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는 신앙심과 신뢰가 돈독한 사람으로 짐작된다.
아마도 이 것이 그의 비즈니스에 보이지 않게 작용해 오늘날 그가 일본이나 미국, 유태인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업자가 되지 않았나 추측된다. 대형 유태인계 회사 2인의 보증으로 최상의 수준 급 딜러들만 가입된 미 협회 APS의 5년 째 정 회원이기도한 그는 이제 몇 백 명이 늘어선 우표 쇼에 가도 한 시간 전에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미 일본이나 유태인들은 의식이 깨어있어 우표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이유는 아주 조그마한 것이지만 그 속에는 각 나라의 문화, 경제, 정치 등이 다 포함돼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박씨는 설명한다.
그는 우표를 통해 그 동안 배운 것도 많다고 말한다. 일본인의 정직성과 조직성에 놀랐고 유태인에게서도 20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 가운데 최대 교훈은 유태인의 경우 독수리가 비장의 무기인 발톱을 잘 감추는 데 반해 한국인들은 내보이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우표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제 장사만으로는 무의미해 그는 그 동안 모은 자료로 틈틈이 한국우편 연혁과 역사, 소인 등에 관한 영문 책을 집필, 2, 3년 후에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도 쉴새없이 하루 6시간 잠자는 것 외에 우표수집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노력으로 불모지인 한인 우표업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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