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사회 낮과 밤
▶ 한국의 부모 묘지를 미국으로 이장하는 한인들.
사람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그가 일생동안 함께 살아 온 가족, 친척, 친구들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므로 참으로 슬프고 애절하다.
최근 한인사회 장례문화에 신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예전과 달리 한인 노인들이 고국의 선산보다는 자녀가 살고있는 현지 묘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는 것. 특히, 한국의 부모 묘지를 자신이 살고 있는 현지로 이장하는 한인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사후에도 부모님을 내 곁에서 모신다’는 한인사회 장례문화의 신 풍속도를 살펴본다.<편집자주>
▲ ‘사후에도 부모님을 내 곁에’
2남4녀 가운데 막내인 김기철(50)씨. 그는 13일 낮 1시30분 케네디 공항에서 누님들과 함께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마중 나온 부모님은 살아 계신 분들이 아니다. 장남 김기인(57)씨가 한국 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부모님의 시신을 화장해서 가져오는 부모님의 유골인 것이다. 이들은 한국의 부모님 묘지를 자신들이 살고 있는 뉴욕으로 이장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6남매 모두 뉴욕으로 이민 와서 한 동네에 모여 사는 김씨 형제자매들은 지난 설날, 미국 사회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감안, 한국의 부모 묘지를 뉴욕으로 이장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날 김씨 가족들은 우선 6남매가 살고 있는 각자의 가정으로 부모님의 유골을 잠시 모신 뒤, 롱아일랜드 파인론에 부모님의 유골을 안장, 이장 절차를 마무리했다.
김기철씨는 "충청북도에 선산이 있지만 부모님들이 살아 생전에 가족들과 가까운 곳에 묻히기를 원해 돌아가신 뒤에 서울과 가까운 성남에 묘지를 마련했었다"며 "이제는 6남매 모두가 뉴욕으로 이민 와서 뿌리를 내려 살고있는 만큼 자손들이 가까운 곳에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묘지 이장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최근 한인사회에서 고국의 고향에 묻혀있는 부모님의 묘지를 자신이 살고 있는 뉴욕 인근으로 이장하는 ‘사후에도 부모님을 내 곁에 모신다’는 새로운 장례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무궁화 동산을 민족의 선산으로 가꾸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무궁화 상조회에 의하면 최근 무궁화 동산으로 한국의 부모 묘지를 이장한 사례는 5건 정도. 하봉호 공인장례사가 운영하는 중앙장의사도 올해에만 이미 조국의 묘지에 묻었던 4명을 뉴욕에 안장하는 이장 절차를 마쳤다. 또한 장례업계에 묘지 이장에 관한 한인들의 전화문의가 급등하고 있다.
한국의 부모 묘지의 현지 이장을 추진하고 있는 한인들의 대표적인 유형은 이미 배우자가 한국의 묘지에 안장된 한인 노인 가운데 이미 고인이 된 배우자와 함께 미국에 안장되기를 원하는 경우. 가족 모두 이민으로 한국의 부모 묘지를 돌보기 어려운 경우 등이다.
엘머스트에 거주하는 양현숙(72, 가명) 할머니는 "예전에는 그래도 영감이 있는 한국에 가서 묻혀야지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살다보니까 자식과 손자들이 있는 미국이 나을 것같아 이미 묘지를 2기 구입하게 됐다"며 "자식들이 한국 아버지 묘를 이장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뜻에 따라 지금 절차를 준비중"이라고 말한다.
▲’보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몇 년 전만 해도 한인 노인들 대부분은 고향의 품에 묻히기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식들이 살고 있는 현지에 묘지를 구입하는 노인들이 부쩍 늘어나는 한인사회 장례풍속이 바뀌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에 있는 부모님 또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묘지를 현지로 이장하는 한인들도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
이처럼 ‘사후에도 부모님을 내 곁에 모신다’는 한인사회 장례문화 신 풍속도 확산은 서양과 달리 한인들의 ‘효(孝)’ 사상이 월등하기 때문. 또한 부모님의 묘지를 가까운 곳에 모시게되면 부모님이 생각나거나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것도 주요 요인이다. 이외에도 자주 갈 수 있고, 한국처럼 묘지 관리를 별도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유기락 장묘상담인은 "편부모를 모시고 사는 한인 젊은 부부들이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묘지 이장을 문의하는 사례가 최근 잦아지고 있다"며 "부모를 가까이 모시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을 수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르던 자녀들에게 가족문화와 뿌리교육을 시키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부모님의 유해를 미국에 안장한 뒤 6남매 모두가 ‘이제 마음이 편해 너무 좋다’는 공통적 생각을 했다는 김기철씨는 "언제든지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 갈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며 "부모님을 안장한 뒤 6남매가 너무 좋아 옛날 얘기를 하느라 밤새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제 명절이 되면 형제자매는 물론 손자, 손녀들이 다함께 할아버지와 할머니 성묘를 갈 수 있게됐으니, 너무 좋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또 "6남매가 모여 부모님의 묘지 이장을 결정하기 전에는 많은 것을 걱정했는데, 막상 실천에 옮기니 그리 힘들지 않았다"며 "오히려 가까이 모시고 나니 가족 모두의 마음이 편안해 졌다"고 말한다.
한국 묘지의 현지 이장 비용은 유해의 운송방법과 묘지와 관 선택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현재 고국에 있는 부모님의 묘지를 현지로 이장하는 한인들은 주로 부모님의 유해를 화장해 운송하는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이는 유해를 화장하면 한국과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도 운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지에서 이장할 때도 ‘화장증명’만 있으면 가능하다. 비용에 있어서는 무궁화 동산 경우 묘지 구입 비용(760달러 또는 1.110달러)과 다양한 가격의 관 구입비를 제외한 유골을 넣는 마블항아리와 땅 파는 작업 비용으로 주중 344달러, 주말 440달러 정도이다.
유기락 장묘상담인은 "유해를 이장하는 비용은 유해의 안장 방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묘지 사용료도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유해가 안장될 묘지 사용료의 3분의1 정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부모님의 유해 화장을 통해 현지 이장을 꾀하는 한인과는 달리 운송 서류가 복잡하고, 꼭 장의사를 통해야 하는 절차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시신을 그대로 운반하는 한인도 전체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한인 이민의 역사적 현장’
고향에 있는 부모님의 묘지를 현지로 이장하는 한인들은 가능한 가족묘지를 선호하고 있다. 최근 묘지를 구입하는 한인들도 역시 가족들이 한 곳에 묻힐 수 있는 가족묘지를 찾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서양식 묘지는 부모와 형제들의 묘지가 다른 것과 달리 한인들은 대가족제도의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사후에도 한 가족이 한 곳에 모여있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한인 가정의 가족묘지는 후세들에게 효 사상은 물론 코리안-아메리칸의 긍지도 심어줄 수 있다. 또한 이민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한인사회의 가족묘지는 이민 1세대들의 업적을 기릴 수 있는 한인 이민사의 작은 역사적 현장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무궁화상조회 김홍근 회장은 "한 가족이 모여있는 가족묘지의 필요성은 앞으로 태어날 후세들이 한인사회의 토대를 구축하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한인 이민 1세 가족들의 훌륭한 업적을 기리고,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역사적 현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연창흠 부국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