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주말. 한 남자가 친구 집마다 돌아가며 전화를 한다. 그러나 아무도 응답이 없다. 갑자기 도심 속에 홀로 남은 것 같은 고립감에 빠진 남자는 텅빈 도시를 향해 외친다.
“모두 다 어디 간거야 ― !”(Where is everybody ― !)
한 항공사의 비행기요금 할인 광고에 나왔던 장면이다.
비슷한 외침이 그동안 미주 한인사회에도 있어 왔다.
“모두 다 어디 간거야? 왜 이렇게 남자가 없지?”- 미혼의 젊은 여성들이 여자친구들끼리 모여 노닥거리다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사랑을 갈구하고,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외모를 가꾸고 재치있는 말솜씨를 기르는 따위의 행위들이 알고보면 후손을 이 세상에 퍼트리려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의 발로라고 설명한다. 원초적일수록 강렬한 법이어서 결혼적령기 남녀에게 사랑하는 상대가 없으면 삶이 아무리 안락해도 뭔가 양념 빠진 듯한 느낌을 자타가 받는다.
그런 맥락에서 한인사회를 주의깊게 둘러보면 한가지 눈에 띄는 현상이 있다. 노처녀를 포함해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느낌’이었을 뿐인데, 그것이 통계가 뒷받침되는 실제현상이라는 사실이 이번주 확인되었다. 남가주의 한미연합회(KAC) 산하 센서스 정보센터는 연방이민국의 1996년-2000년 이민통계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이민패턴을 분석, 가장 특이한 현상으로 결혼적령기 남녀의 성비불균형을 지적했다.
20대와 30대의 경우 여성 이민자는 남성의 두배, 가장 결혼을 많이 할 나이인 25-29세의 경우 여성이 남성의 거의 3배에 달한다. 언어나 문화적 조건으로 볼 때 이들이 영어 문화권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낮고 보면 성비 불균형은 그대로 한인사회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은 이제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이 보도가 나가자 20대, 30대 남성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미혼 남성들은 “야, 우리에게 기회가 많구나”하며 즐거워했고, 갓 결혼한 남성들은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고르는 건데”하며 익살을 떨었다.
반면 여성들은 “여자가 많긴 많은가 보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 신문사에도 독신여성이 많아서 “기수련장에 나가는 데 나와 동갑인 남성에게는 아줌마들이 줄줄이 여자를 소개해주면서 내겐 도무지 남자 소개해주겠다는 말이 없어요”“남자들은 한국에서 온지 3-4개월만 지나면 여자를 만나 사귀더군요”“이혼하고 미국에 온 남성이 계약결혼으로 영주권을 얻으려는데 상대 여성이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해서 망설이고 있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교회 교인 중매로 진짜 재혼을 하더군요”“나이트 클럽에 가도 여자들이 훨씬 많아요. 남자 둘인 테이블에 여자 세명을 부킹하는 일도 흔하지요”라는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한국여성들이 미국으로 몰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 여성이 한국에서 신랑감을 데려오는 경우보다는 남자가 신부감을 골라오는 경우가 더 많고, 학생·방문비자로 왔다가 이곳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여성이 더 많은 것이 부분적으로 기여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남성중심적 한국사회가 여성들을 몰아내기 때문이다”고 이번 분석을 주도한 유의영박사는 말했다. 유학생으로 왔다가 결혼하면서 미국에 눌러앉은 30대의 한 후배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후 결혼, 취직, 유학중 하나라도 해야지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엄청나요” 결혼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남성에 비해 한참 불리한 상황에서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보니 도피책으로 유학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아울러 여성에게 기회 많은 미국의 환경이 한국사회 구조에 숨막혀 하던 여성들을 틈나는대로 불러들이고 있다.
바야흐로 1세 한인사회에 ‘여인천하’가 열릴 조짐이다. 남성보다 두배, 세배 수적으로 많은 ‘여인천하’라면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은 이제 무너질 수밖에 없다. 타민족과의 결혼, 독신생활 등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수용하는 자세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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