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남가주 한인사회에서 가슴 아픈 달이었다. 8일 리버사이드에서 50대 한인남성이 경찰의 추격을 받던 중 권총자살로 목숨을 끊더니, 24일에는 웨스트 LA에서 40대 남성이 경찰과 여러 시간 대치 끝에 사살되었다. 두 사건 모두 가정불화가 폭력으로 비화하면서 경찰이 출동한 케이스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평소 가족들에게 무책임하고 폭력만 일삼던 못된 가장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몸 아끼지 않고 소처럼 열심히 일하는 성실성, 그러나 화나면 감정조절이 안돼 욱하는 성격이 특징인 보통의 한인남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사람들로 짐작이 된다.
웨스트 LA에 살던 김용대씨(47)의 부인 김경애씨(45)는 “남편이 평생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남편은 묵묵히 일만 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가게에만 매달려왔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정말 불쌍하게 살았다”고 남편의 죽음을 비통해했다. 하지만 “화가 나면 앞뒤 안가리는 성격이어서 몇시간씩 폭언을 하는”격한 성질 때문에 부부간 갈등이 잦았고, 최근 아내가 별거를 요구한 것이 김용대씨를 감정적 벼랑끝으로 몰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우스 센트럴에서 리커 스토어를 운영했던 김씨는 매일 15시간의 노동을 17년간 계속했다고 한다. 구체적 가정사를 알수는 없지만 겉에서 보기에 그의 인생은 일은 일대로 하고, 제대로 삶을 즐겨 보지도 못하고, 가족의 사랑도 못받은 억울한 삶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것은 이런 불쌍한 삶이 한인사회에서 전혀 낯설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일밖에 모르는 착한 사람’이기는 한데 집에만 오면 불같이 화를 내곤 해서 가족들과 불화가 심한 가장들이 적지 않다.
김씨 사건이 보도된 후 역시 사우스 센트럴에서 14년째 리커스토어를 운영중인 50대의 자영업자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그는 “김씨가 욱해서 아들에게 아령을 던진 심정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 자신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았을 뿐 휘발유에 불 붙듯 화가 치솟는 경험을 많이 해보았고, 주변에서도 그런 경우들을 심심찮게 보기 때문이다.
그는 감정이 그렇게 걷잡을수 없이 격해지는 원인으로 과로를 꼽았다.
“너무 일을 많이 해서 피로가 쌓인 탓입니다. 일을 많이 하는 이유는 물론 욕심이지요. 종업원을 한명 떠 쓰면 해결될 걸 인건비 아끼다 보면 어깨가 쑤시고 피로가 누적되면서 사소한 일에도 화가 폭발하게 됩니다”
일만 하느라 스트레스 해소의 기회를 못 갖는 것도 원인이다. 동창모임이나 같은 업종 종사자들간 친목모임등을 통해 가슴 속에 응어리진 일들을 서로 이야기 하고 풀어내면 좋은데 “세상 짐 혼자 진 듯 독불장군으로 사는 사람들이 사고 위험이 높다”고 그는 지적했다.
아울러 한인남성들의 욱하는 성질에 불을 붙이는 것은 종종‘가장으로 대접 받고 싶은 마음’, 가장 컴플렉스이다.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갔는데 아내는 집안일 하느라 눈길도 안주고, 아이들은 TV 보며 저희들끼리 히히덕 거리고 하면 사실 섭섭합니다. 뭔가 꼬투리 잡아 한바탕 소리 지르고 나면 식구들은 모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집안은 얼음장 같이 냉랭해지지요”
‘대접 받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나니 가정이 화목해지고 가장으로서의 위상이 더 올라가더라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부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의한 각피 석회화증’이라는 이상한 병이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이 희귀 질병을 앓는 청년이 책을 내면서 알려진 이 병은 온몸이 돌처럼 굳어지는 참혹한 질병이다. 칼슘이 과다생성 되어 몸안에 축적되면서 석회가 발부터 머리 끝까지 잠식해 앉지도 서지도 못하다가 석회가 심장을 잠식하면 환자는 죽고 만다.
‘일만 하는 삶’은 ‘정신적 석회화증’에 비교될 수 있다. 칼슘이 우리 몸에 필요하듯 일도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삶 전체를 잠식해서 생동감 있어야 할 인생을 돌처럼 굳게 만든다.
나이 들수록 자기 삶에 대한 객관적 성찰이 필요하다. 가끔씩 내가 사는 모습을 제3자의 눈으로 돌아보는 습관이 있어야 하겠다. 내 삶은 초록의 잎을 피워내는 살아있는 나무인가, 석회화증으로 딱딱하게 굳어가는 나무토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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