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할줄 아는게 없어요. 바보가 되어 버렸어요”
한인 이민사회에서 소위 ‘팔자 좋은 여자들’을 만나면 가끔 듣는 말이다. 남편이 고소득자여서 힘들게 돈 벌 필요없고, 전업주부로 자녀들 뒷바라지 확실하게 해서 대학으로 직장으로 내보내고 나니 돈도 남고 시간도 남는 중년 여성들이다.
맛있는 것 먹고, 재미있게 노는 것이 특별한 일없는 보통 날의 관심사안인데, 그렇게 안락하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나의 효용성’에 대해서 회의가 들때가 있다고 한다. 50대 후반의 한 주부의 말이다.
“이 비즈니스 한다, 저 비즈니스 한다 하며 괜히 돈만 잔뜩 날려버리는 친구도 있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여기 저기 여행 다니는 그룹도 있고, ‘주름을 편다’‘지방을 뺀다’ 하며 성형외과를 들락거리는 부류도 있어요. 모두가 삶이 공허해서 그런 것이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쓸수 있는 시간이 꼬박꼬박 대령하는데, 그 시간을 좀 생산적으로 쓰고 싶지만 마음 뿐 “할 줄 아는 것도, 뭘 새롭게 시작할 용기도 없다”고 그 주부는 말했다.
한국에서 일류 고등학교·대학교 졸업하고, 남자도 유학오기 어려웠던 60년대에 유학온 그 똑똑했던 여학생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결혼하고 나니 당연히 남편 공부가 먼저이지요.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내 공부, 내 진로는 접었어요. 그러다 아이들 태어나니 아이들 돌보는 게 우선이 되고, 그 사이 남편이 자리 잡혀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니 새삼스럽게 ‘내 커리어’를 내세우게 되지가 않더군요”
결과적으로 남편도, 자녀들도 각기 전문분야에서 성공을 했거나 성공의 길을 걷고 있으니 보람은 있다. 하지만 눈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면 “결국 이렇게 늙고 마는 것일까” 허탈해진다는 것이다.
재능있고 야심있던 여성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아무 것도 할줄 모르는 ‘바보 아줌마’가 되는 것일까. 지난해 한국일보 본국지에는 가정의 달 기획으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시리즈가 실렸었다. 그때 탤런트 차인표씨가 쓴 ‘내 아내 신애라에게’ 보내는 편지에 재미있는 대목이 있었다.
차씨는 편지쓰기 며칠전 친구부부와 노래방에 갔었던 가 보다.
“당신은 ‘요즘 노래를 아는게 없다’면서 당황해 했었죠? 나는 속으로 더 당황했어요. 당신이 모르는 최신곡들,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 연애할 때, 두시간을 불러도 다 못 부를 정도로 많은 노래를 알던 당신이었는데, 왜 노래를 못 부르게 되었나요?”
그는 또 자신은 마라톤대회에 나갈 정도로 잘 뛰는 데 비해 “러닝 머신에서 5분도 뛰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당신”을 안쓰러워했다. “우리 생생한 젊음들끼리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그새 왜 나만 이리 잘 뛰고, 잘 놀게 되었나요?”
아기 낳고 키우느라 자기자신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는 아내, 그러면서도 “내 얼굴 피부 나빠졌다고 억지로 피부과 데려가 마사지 받게 하고, 젊게 보여야 한다고 백화점 데려가 청바지 사주고”하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의 맹세로 편지는 끝을 맺었다.
여성이 전업주부로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에만 전념하면서 얻는 것은 생활의 안정감, 그로 인한 푸근한 행복감일 것이다. 반면 일을 통한 성취감과 자신감을 유지하기는 쉽지가 않다. 대개는 도전 없고 안락한 일상에 주저앉고 마는데, 자녀들 성장해 떠나면서 그 빈자리에 공허감이 밀려오니 문제이다.
주부들이, 특히 엘리트 주부들이 ‘바보 아줌마’로 늙어 가는 것은 그 자신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낭비이다. “지금부터 10년후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자주 생각해본다면 자극이 되고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오늘 65세인 여성은 앞으로 평균 19년을 더 살고, 85세인 여성은 평균 6년의 여생이 남았다고 한다. 건강한 50대 여성이라면 30년쯤은 무난히 더 살 것이다. 새 일을 찾아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며 성취감 넘치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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