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전쟁중에 있다. 경제는 불황을 맞고 있다. 문명세계는 전례없는 위험에 봉착해 있다’-. 잇단 단문으로 시작된 부시 연설의 서두는 ‘디 디 디 다∼’로 시작되는 베토벤의 제 5교향곡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악의 축’ 발언이 나온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과 관련해 워싱턴 포스트지의 윌리엄 코언이 내린 평가다. 부시가 한 말은 사실에 있어 이 세 마디 말 뿐이고 나머지는 수사에 불과 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작 그가 지적하려는 건 부시의 멘탈리티다.
’악’(惡)에 대해 다섯 번이나 강조함으로써 부시는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 정의감과 목적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가를 새삼 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종교적 신념 비슷한 확신이 부시의 국정연설을 사로 잡고 있다는 것.
"조지 W 부시는 깜짝놀랄 국정연설을 했다. 마치 줄리어스 시저와 빌리 그레이엄을 혼합시킨듯한 연설이다. 부시는 먼저 호전적인 일방주의를 선포했다. 나중에는 복음 전도자로 바뀌어 가치관 변화를 위해 전 미국이 움직일 것을 촉구하는 설교를 했다." 부시의 국정 연설에 대한 또 다른 평이다.
선거철이 되면 미국의 정치인들은 갑자기 ‘본-어게인’ 크리스찬임을 공언하고 나선다. 기독교 유권자, 더 좁혀 말하면 기독교 원리주의자 표를 의식한 정치 발언이다.
한 기독교 원리주의 목사는 그래서 ‘4년마다 크리스찬임을 선언하고 나서는 정치인’에게 질문으로 함정에 빠뜨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떻게 천국을 가는가’-. 그 질문에 많은 자칭 ‘본-어게인’ 정치인들의 본색이 드러났다. 부시 시니어도 함정에 빠졌다. 선행을 하고 봉사를 함으로써 천국에 간다고 답했던 것. 불합격이다.
아들 조지 W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조지 W를 동류로 보고 있다. 조지 W는 아내 로라 부시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40세 이후 그의 인생궤적은 그러므로 과거와 확연히 구분된다. 이 때부터 아버지의 대선 캠페인에 뛰어들었고 훗날 자신의 정치적 우군이 되는 기독교 원리주의 세력, 즉 보수 우파와의 본격적 유대를 맺게 된다.
이야기가 장황해졌다.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부시는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부시의 세계관은 흑과 백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같은 베이비 붐 세대인 클린턴과는 판이하다. ‘선과 악의 대립’ ‘빛과 어두움의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세계를 조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9.11사태로 이런 세계관을 지니게 됐다는 판단은 잘못이다. 9.11사태는 한층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북한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발언이 나온 것은 따라서 그의 종교관이 부분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기독교 원리주의와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악은 실존한다. 악은 저지되어야만 한다…." 부시의 발언이다. 이런 부시를 두고 한 보수파 논객은 ‘미국은 마침내 소명의식에 충만한 대통령을 맞이하게 됐다’고 선언했다. 그 실존하는 악의 하나가, 부시에 따르면 북한이다.
"우리는 모든 한국인들이 빛 가운데 살기를 원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이 가장 위험한 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는 사태를 결코 허용할 수 없다. 어떤 국가도 주민들에게 감옥이 되어서는 안된다…." 부시가 휴전선에서 한 연설로 그 안에는 숨겨진 메타포가 있다.
’빛을 전파하는 광명의 사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짐한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DJ의 입장을 고려해 과격한 표현은 삼갔지만 부시는 여전히 북한, 다시 말해 김정일 체제를 ‘악의 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광명의 사자는 암흑의 세력을 무찌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분히 기독교 원리주의적 냄새가 배어 있다. 독단에 빠져들 위험성도 내포돼 있다. 패권주의적 발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김정일 체제를 악으로 규정한 것은 아무리 보아도 옳다는 생각이다. ‘인민을 굶어 죽게 방치하면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혈안이 돼 있는 정권’은 악일 뿐 따로 설명이 필요 없어서다.
진실을 말하는 게 때로는 외교에서 최상의 덕이 될 수 있다. 악을 악으로 알고 대처할 때 정책의 목표는 뚜렷해지고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악’(惡), 그 자체인 김정일 체제와 북한 주민은 확실히 구별해야 한다는 의미다.
북한주민의 참상에 대해, 탈북자의 고통에 비굴한 침묵만으로 일관하는 포용정책은 폐기처분할 때가 된지 이미 오래다는 생각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