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남가주에서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50대 중반의 한인남성이 이혼한 전처를 찾아가 총을 쏘며 위협하다가 경찰에 포위되자 권총 자살을 해버렸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들 부부는 20여년 결혼생활 동안 비즈니스를 착실하게 키우며 잘 살아왔으나 몇 년전부터 부부사이에 마찰이 생기다가 지난 1월말 이혼했다. 이혼은 아내 쪽에서 원했고, 자살한 남성은 이혼 후 극심한 좌절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반응은 엇갈렸다. 여성들이 우선 주목한 것은 한국 남성들의 불같은 성질이고, 남성들은 이혼 당해서 집 나와 사는 남자의 처지에 동정적이었다. “한국남자들 욱하는 성격이 문제예요. 비즈니스 하느라 다들 총을 가지고 있으니 사고위험은 항상 있다고 봐야지요. 남의 일이 아니에요”- 한 중년 주부의 말이다.
반면 이혼경험이 있는 한 남성은 말한다.
“저녁에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려면 정말 끔찍합니다. 그래서 자꾸 밖으로 나돌게 되고, 과음을 하게 되고, 생활이 엉망이 되지요”
아파트 얻어 혼자 나와 살면서 혼자 시장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할 때 남자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코미디 영화‘신부의 아버지 속편’을 보면 아버지 역의 스티브 마틴이 집을 팔았다가 하루만에 수만달러의 웃돈을 얹어주고 되사는 장면이 나온다. 부동산 개발업자가 집을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 집을 지으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가 손수 벽돌을 깔아 만든 현관 앞길, 직접 페인트칠한 창문 장식들,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안 곳곳에 남긴 추억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혼은 부부가 같이 벽돌 한장 한장 쌓아 올리며 이룩한 집을 한순간에 허물어 버리는 일과 같다. 충격이고 비극이어서 ‘웃돈’을 얹어서라도 집을 구할수만 있다면 구하려고 대부분의 부부들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결혼하는 부부 2쌍에 한쌍, 한국에서는 3쌍에 한쌍꼴로 이혼한다는 통계가 나온지 오래다.
문제는 우리의 의식이 이혼을 아직도 현실로 인정하지 못하고‘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로 부인만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을 위해 결혼전 상담을 하듯 이혼을 앞둔 부부를 위해서는 이혼전 상담이 사실은 더 필요하다. 같은 병이라도 증상을 알며 앓으면 고통이 덜한 법이기 때문이다.
수년, 혹은 수십년 공들인 집이 허물어지고 난 자리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분노와 배신감이 제일 크다”고 8년전 남편의 요구로 이혼한 40대 중반의 주부는 말한다. 자녀 양육비·배우자 부양료등 돈 문제, 자녀 방문 일정등이 이혼부부 사이의 중요한 갈등요인이지만, 이혼 직후 가장 넘어서기 힘든 것은 무엇보다도 감정문제이다.
산더미 같은 감정의 잔해들을 쓸어내야 그 터에 새 삶을 세우는 일이 가능한데, 방법은 “전 남편에 대한 용서뿐이다”고 그 주부는 말했다.
“내게 일어난 사태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심리분야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책을 읽다 보니 남편이 이해가 되고 그리고 나니 좀 용서가 되더군요. 용서를 해야지, 용서 안 하면 내가 괴로워서 살수가 없더군요”
이혼 후 삶에 이제 그런대로 안정을 찾았다는 그는 두가지에 가장 신경을 썼다고 한다. 아이들의 행복과 자기자신 돌보기였다. 아이들이 아빠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적극 배려했고, “내가 건강해야 모두가 행복하다”는 생각에 “남편이, 아이들이 뭘 원하나”에서 “내가 뭘 원하나”로 사고의 기준을 바꾸었다. “이혼은 생각도 못한 비극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얻는 것은 있더군요.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 애쓰다 보니 삶에 대한 용기를 얻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찾았어요”
전에는 무감각하던 일들 - 아이들이 잘 자라고, 세끼 밥 먹고사는 것등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 기쁨과 행복이 느껴질 만큼 감정이 풍부해진 것도 그에게는 이혼이 준 선물이다. 이혼은 실패이고 상실이지만 그것이 이후의 삶을 모두 실패와 상실로 몰아가는 구실은 될수가 없다. 과거를 잘라내고 앞만 보는 자세가 이혼 후에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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