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생들의 절반이 A학점을 받고 있다는 기사와 이에 대한 촌평을 읽으면서 교수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거론하고자 한다. 먼저 학점 인플레가 된 원인이라고 거론된 이유들부터 분석해 보자.
첫번째로 하버드에 다닐 정도면 머리가 좋기에 많은 학생이 A학점을 받는다는 것이다. 성적은 한 학생이 자기 학교 내에서의 학업 성취에 따라 평가를 받는 것이다. 즉 하버드 학생은 하버드 내에서 경쟁하는 것이지 다른 수준이 낮은 학교 학생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들은 A학점을 받을 자격도 없다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선착순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무리 달리기를 잘해도 일등, 이등을 구분 짓게 된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많은 대학교에서 상대 평가제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즉 A학점과 B학점을 위로부터 각각 20% 범위 내에서만 허용하는 것이다. 미국 대학교에서는 절대 평가제를 사용하므로 이론적으로는 전부 A 혹은 F를 받을 수도 있다. 즉 교수의 평가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성적의 분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유럽에 비해 교수의 권위가 없어 학생들을 엄하게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학점을 잘 준다고 권위가 생길 리 없다. 본인이 한번은 한국의 학부생들의 교실에 특강을 위해 들어갔는데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교수님께 경례!" 하여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스승의 날이라고 학생들이 가지고 온 여러 종류의 선물과 꽃장식 등을 한국 교수들의 방에서 볼 때면 부러운 마음도 생긴다. 유학 온 학생들이 제일 먼저 발견하는 것이 미국 학생들이 강의시간에 책상에 발을 올리는 등 교수들에게 버릇없이 군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수의 권위가 권위주의 사회에서처럼 강제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 교수들의 권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외적이고 타율적인 권위보다는 교수와 학생이 동등한 신분에서 실력에 의해 자연 발생하는 내적이고 자율적인 권위가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셋째로 좋은 것이 좋다는 나태한 사고방식에 펴져 있기에 학점 인플레가 난다는 것이다. 취업경쟁 때문이라면 명문대학이 아닐수록 학점을 더 잘 주어야 한다.
넷째로 학생들의 교수 평가제도가 한 요인이란다. 물론 교수들이 학생들의 평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학점을 잘 주면 학생들의 평가가 올라가리라는 것은 잘못된 가정임을 많은 연구 결과들이 증명하고 있다. 학생들의 평가가 교수들의 실력과 수업에 대한 태도에 많이 좌우된다.
학점 인플레에 대한 근본적 원인은 사회의 요구에 따라 대학 교육의 주된 목표가 바뀐 것에서 찾을 수 있겠다.
첫째로 예전에는 그래도 성적을 매길 때 상대평가의 개념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미국 대학에서 절대평가로 바뀌고 있다. 둘째로 평가의 기준이 교수의 입장에서 학생의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 소위 눈높이 교육처럼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예전 같으면 교수는 가르치면 책임이 끝나지만 학생이 이해를 못할 경우 이제는 교수가 이해 못시킨 책임을 지게 된다. 따라서 시험도 가르친 범위 내에서만 내게 된다. 그러니 성적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데모 때문에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질 못했다. 그 와중에 한 필수과목에서 F를 받은 적이 있다. 공부한 부분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시험문제가 출제된 것이 주원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일이다. 아직도 많은 한국 대학에서는 전통적인 공급자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로 예전에는 대학 학업 성적이 채용 때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대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4~5년 후에는 낙후될 정도이다. 이런 격변하는 사회에서 대학교에서 올A를 받았다는 것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그 사람의 학점보다는 어떤 과목을 이수했는지, 그 과목에서 무엇을 배웠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
대학교가 학생의 실력을 평가하여 A, B, C 등급을 매겨 사회에 내보내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사회가 각자의 다양한 필요에 따라 등급을 자체적으로 매겨 사용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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