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종사커 유혹 뿌리치고 체질강화 실험 계속해야
"화끈한 골세례로 승리를…"
"져도 좋으니 제발 골맛이라도…"
"못 넣어도 좋으니 골문 안쪽으로라도…"
북중미 골드컵 대회에 출전한 한국축구가 게임을 거듭하는 동안 팬들의 눈높이는 이렇듯 낮아졌다.전문가들 의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끝내 한국대표팀은 가장 가느다란 소망마저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미국과의 예선B조 개막전부터 코스타리카와의 준결승전까지 4경기 390분(멕시코전 연장 30분 포함)동안 필드골 2개. 그나마 골넣기 전문(공격수)이 아닌 골막기 전문(수비수,미국전 송종국·코스타리카전 최진철)에 의해 만들어졌다.
눈여겨 봐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는 한국이 천신만고끝에 필드골을 우겨넣은 2경기 모두 패했다는 점이다. 이는 입이 닳도록 지적돼온 한국 선수들의 빈곤한 ‘골 결정력’ 자체도 문제지만 어렵사리 얻은 ‘골의 승리결정력’ 또한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님을 대변한다. 야구로 치면 동점타든 결승타든 중요한 한방이 필요할 땐 철저하게 침묵을 지킨 방망이가 패하는 게임에서만 타점을 올리는 꼴이다.
사방데서 골 결정력 부재를 질타하는 소리들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삼척동자도 줄줄 꿸 정도로 한국축구의 고질병이었음을 떠올린다면 골드컵 골가뭄에 새삼 놀랄 필요도 삿대질만 퍼부울 것도 없다. 옆에서 거들지 않아도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한 한국대표팀 코칭스탭과 선수 자신들이 아프게 절감하고 있으려니와 월드컵까지(나아가 그 너머 훗날까지도)의 최대과제로 골사냥술 향상을 꼽고 있다.
문제는 코스타리카전을 계기로 기다렸다는 듯 터져나오는 독한 소리들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축구전문가들이 언론인터뷰나 기고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누구는 빼고 누구를 기용해야 한다는 훈수에서부터 한국축구가 한국축구다움을 잃고 어설프게 유럽축구를 흉내내다 죽도 밥도 안되고 있다는 한탄에 이르기까지. 월드컵이 코앞인데 이대로 둘 수 없다며 히딩크 감독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주문도 끼워져 있다.
그러나 선진축구 도입을 위한 실험은 계속돼야 한다. 밉든 곱든 히딩크는 한국축구가 아시아에서조차 통하지 않는 아픈 체험-98아시안게임 8강탈락·2000아시아선수권 졸전 등-을 통해 토종축구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영입한 감독이다. 한국의 ‘밥’으로 여겨졌던 일본이 프랑스 출신 감독을 영입한 뒤 후진성을 벗어던지고 ‘때깔’이 확 달라진 경기력을 과시하고 있는 점 또한 축구선진국 지도자 영입에 가속도를 붙게 했다.
불과 1년밖에 안됐지만 한국축구가 ‘히딩크 효과’를 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코스타리카전 에서 2번째 골을 먹은 뒤 급격히 와해되긴 했지만 한국의 수비력은 이번 골드컵을 지켜본 축구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인정하는 부분이다. 패스가 2번 이상 연결되는 일이 드물었던 ‘옛날’에 비해 이제는 면피성 남용이란 지적을 들을 만큼 패스웍이 좋아졌다. 공을 중심으로 떼몰려다니던 낯익은 장면이 거의 사라지고 운동장을 폭넓게 사용하는 점은 분명 긍정적 변화다.
최후까지 남는 골 결정력 문제도 그렇다. 선결과제인 건 분명하지만 과거에는 괜찮았는데 이제와서 돌연 실종된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은 자기기만에 다름아니다. 그때는 골만 못넣은 게 아니라 게임을 풀어가는 과정도 내세울 게 별로 없었다. 더욱이 지금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약체들을 주로 상대했던 그때와 다르다.
비록 성에 차지는 않지만 이제 갓 ‘촌티’를 벗어가는 한국축구를 ‘토종축구’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부당하다. 축구의 종가 잉글랜드축구의 부침을 봐도 끊임없는 선진축구 도입은 필수적이다.
66년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차지한 뒤 앨프 램시 감독은 "브라질같은 다른 나라에서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큰소리쳤다. 기술축구의 대명사 브라질·아르헨티나가 유럽식 파워기르기에 여념이 없고 독일·네덜란드 등 유럽강호들은 남미식 테크닉을 겸비한 조직축구와 토탈사커를 들고나와 새틀을 짜는 동안 잉글랜드는 고집스럽게 킥&러시 전통을 지키다 툭하면 지역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잉글랜드는 결국 ‘축구 발명’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스웨덴의 에릭손)을 영입해 체질개선에 나서 독일을 대파하는 등 비로소 ‘요즘 최강’이란 소리를 듣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