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김명욱 <목회학 박사. 종교 전문기자>
오랫적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 다니던 친구의 목소리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반갑기만 하다.
‘국민학교’라고 불리웠던 40여년전의 영월초등학교. 영월초등학교는 우뚝선 봉래산을 바라보며 그 아랜 동강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약 10리정도 들어가면 단종애사가 얽힌 청량포 푸른물이 이조의 역사를 담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또 학교에서 약 20리 정도 들어가면 장능이라고 하는 단종대왕의 능이 모셔져 있다.
봄에는 봉래산으로 올라가 진달래 꽃을 뜯어 먹으며 전쟁놀이하던 기억이 아물아물 피어오른다. 또 땡볕쬐던 한 여름날 학교가 파한 후 친구들과 동강으로 몰려가 물장구를 치던 기억도 새롭다.
한국 떠난 지 22년. 영월 떠난 지 30여년.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40년. 이제는 고향의 풍경이 기억속에만 살아 그리움으로 살아있을 뿐이다.
몇 일전 친구처럼 지내는 한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스턴에 집회를 갔는데 한 교인이 전화번호를 주며 나에게 꼭 전해달라고 하더란다. 그 친구는 신문에 연재되는 나의 칼럼을 보고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전화번호를 받고 난 후 보스턴에 전화를 했다. 친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너, 명욱이냐?” 거의 40년 만에 듣는 목소리지만 존대말이 필요없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그 친구는 아들 둘이 이미 대학을 졸업해 직장에 다니며 막내 딸이 대학 1학년이란다. 그는 보스턴에 정착, 식당을 운영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또 다른 친구 두 명이 보스턴에 산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는 아들 하나에 딸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몇 년 전 바다에서 서핑을 하다 물에 빠져 익사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들은 친구의 목소리지만 슬픈 소식에 무어라 위로를 할 지 말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딸 하나가 열일곱살 생일이라며 이날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중이라고 했다.
보스턴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꼭 만날 것을 약속한 후 이틀이 지났다. 밤 11시쯤 애틀란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스턴 친구로부터 나의 집 전화를 알았다며 걸려온 또 다른 초등학교 친구였다. 이 친구는 동대문시장에서 양복기지 도매점을 하던 친구였다. 12개 백화점에 지점을 차릴 정도로 잘 나가던 사업체를 IMF 경제악화로 인해 몽땅 잃어버렸다고 한다.
1999년 가족을 한국에 놔두고 홀 몸으로 미국에 왔다는 이 친구. 가장 보고 싶은게 가족들이라고 말한다. 낮에는 뷰티 서플라이점에 나가고 밤에는 청소를 한다는 이 친구는 IMF 때 잃어버린 사업자금을 마련하려 밤낮없이 뛰는가 보다. 그리고 한다는 말. “친구야, 보고싶다!”
이제는 중년이 된 친구들. 그 옛날 국민학교 다닐 때의 여린 목소리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굵디 굵은 아저씨들의 쉰소리로 변해버린 친구들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엔 세월의 이끼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너무도 반갑고 그리운 목소리들이다. 세월이 너무 흘러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전화를 주고받는 목소리 속엔 동강에서 물장구치던 장난기 스런 동심이 그대로 피어나는 듯 하다.
초등학교 졸업후 40년이 지난 현재, 그들이나 나의 삶은 조금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듯 하다. 한 친구는 고향에 있는 동기들 중 15명이나 세상을 달리했다고 전해 준다. 참으로 빠르고 무심한 세월들이다. 그러나 어릴적 친구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음을 반가운 목소리를 통해 확인해 본다.
고향을 멀리 떠나와 수십년 만에 들어보는 초등학교 동기들의 목소리. 미국이라는 땅덩어리가 너무나 커서 소리만 듣고 아직 만나지는 못한다. 그래도 가슴 한 곳 뿌듯함이 서리는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들려온 듯한 오랫적 친구들의 목소리 때문이다.
<친구>란 영화가 보여 주듯이 어릴적 친구는 영원한 친구인 듯 싶다. 세월은 간다. 초등학교 친구들은 10년후만 되어도 모두가 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의 무상함속에 고향을 그리워 할 것이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향 친구들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서리는 것은 묵은 것의 아름다움이 배어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변해있을 친구들의 모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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