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신문에 난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 일이 소문으로 번진다. 그러면 사람들은 믿는다." 공산사회의 언론 상황이다. "어떤 소문이 번진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 일이 신문에 난다. 사람들은 그때 가서야 믿는다." 서방 세계의 상황이다.
"모종의 설(說)이 나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신문에는 그러나 일언반구도 없다. 그 ‘설’은 한참 후, 그러니까 권력이 바뀌는 숨가쁜 시점에서 기사화 된다. 그리고 그 ‘한 때의 설’은 대부분이 사실로 판명된다." 이건 한국의 상황이다.
문민시대 ‘현철비리’가 이런 패턴을 보였다. IMF사태가 발생했을 때 나돈 ‘특수층의 달러 사재기 설’도 그렇다. 당시 일부 특수층이 사재기로 외환보유액의 30%를 소진시켜 환란이 가중됐다는 공식 발표가 뒤늦게 나온 것이다.
’햇볕정책’의 광휘(光輝)에 눈부셔 모든 게 잘 안보이던 무렵 권력주변에서 ‘은밀한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 말들은 하나 둘 게이트의 형태로 구체화되더니 ‘무소불위의 파워를 과시하던 대통령의 처조카’ 모습으로 클로즈업됐다. 영락없는 현철 비리의 재판이다.
’…설’(說)은 다른 말로 하면 유언비어다. 언로가 막힌 상황에서 나도는 게 유언비어다. 언론이 억압받는 상황에서 진실의 유일한 전파수단이기 때문이다. 유언비어를 통해 진실의 한 단면을 알 수밖에 없던 때가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그리고 십수년이 지났다. 거기다가 이제는 인터넷 시대다. 정보 공유의 시대란 얘기다. 그런데도 여전히 온갖 설(說)에, 논(論)에, 유언비어만이 판치고 있다.
"예고했던 개각이 이루어졌다. 곧 바로 의혹이 제기된다. DJ가 정치에서 손을 떼겠다는 건 말뿐이고 합당을 통해 정계를 개편하겠다는 게 아닐까. 지탄 대상인 박모씨를 재기용한 것으로 보아 의혹은 더 짙어진다. 온갖 설이 난무한다. ‘당내 개혁파에 대한 DJ 반격론’ ‘DJP 플러스 민국당 합당설’ 등등…."
왜 유독 한국의 정치권에서만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고 있을까. 민주화니, 개혁이니 하는 건 그냥 하는 이야기고 오직 권력만을 추구하는 게 한국적 정치의 본령이고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그 본령에 너무나 충실하다 보니까 일어나는 현상 같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정리될 것 같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은 가장 편하면서도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직업이다. 권력 때문이다. 그 권력을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온갖 설을 유포하면서라도 권력은 지키고 볼일이다."
국민에 대한 봉사는 딴전이고 오직 권력만을 추구하는 정치의 뒤로는 검은 돈이 모이게 돼 있다. 그리고 유언비어를 확대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여불위들이 판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여불위(呂不韋)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 상인이다. 그는 조(趙)의 수도 한단에 들렀다가 인질로 와있던 진(秦)의 공자 자초(子楚)를 만나게 된다. 거기서 유명한 고사성어(古事成語)가 탄생한다. ‘기화가거’(奇貨可居·진기한 물건이니 투자할 만하다는 뜻)다.
여불위는 엄청난 금전공세를 편다. 자초에게 임신중인 애첩까지 상납한다. 투자는 적중해 자초는 진의 장양왕(莊襄王)이 되고 애첩은 왕후가 된다. 자초가 죽고 아들이 즉위하니 그가 진시황(秦始皇)이다. 여불위가 부귀영화를 누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스토리의 주 포인트는 정치를 보는 시각이다. 즉 정치란 이익 나누기에 다름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여불위는 천자(天子), 다시 말해 ‘권력도 투자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돈과 권력의 야합’-. 이게 여불위 스토리의 메시지다.
대선 길목이다. 권력을 향해 온갖 합종과 연형의 술책이 강구되는 길목에서 수많은 여불위들은 돈을 싸들고 기웃거리고 있다. 이 환경에서는 수많은 ‘설’이 잉태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렇게 잉태된 ‘설’은 언젠가는 게이트로 비화되는 게 한국적 현실이다. 그 시기가 5년 후 이맘때가 될 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여불위는 그런데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회창 후원회 만들기’가 미주 한인사회에서 유행을 타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또 그의 워싱턴 방문을 맞아 눈도장이라도 찍으려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뤘다는 후문이다. 여불위는 그래도 천금을 뿌렸는데 눈도장만으로 될는지…. 어쨌거나 바야흐로 ‘여불위 전성시대’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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