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이름이 하나같이 ‘××일보’라고 되어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 신문들의 이름은 각양각색이다.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시카고 트리뷴, 마이애미 헤럴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보스턴 글로브, 벌티모어 선 등.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내용이다. 신문의 이름이 다 같아서 그런지 한국의 신문들은 내용도 비슷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거기에 비하면 미국신문들의 내용은 그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것 같다. 권리의 장전(Bill of Rights)이라고 불리는 미국 수정헌법이 그 제1조에서 언론, 출판의 자유를 천명한 이래 미국은 이를 철두철미하게 지켜오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미국 언론의 목소리를 여러 갈래로 만들고 있다.
"활자로 찍을 수 있는 소식이면 무엇이든지(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라는 뉴욕타임스의 사시가 말해 주듯이 미국의 신문들은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이든지 다 적고 있다. 미국 언론의 보도정신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함께 모든 국민에게 ‘알 권리’가 있다는 생각과 맞물려 있다. 미국의 언론은 대의정치제의 근간으로서 민의 수렴 기능과 아울러 정부의 비행(非行)과 비행(秘行)을 억지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명실공히 입법, 사법, 행정의 3부에 이은 제4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언론들이 대테러 전쟁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과연 표현의 자유나 국민의 알 권리를 계속 추구하면서 제한 없는 의사 표시와 가감 없는 보도를 해야 할 것이냐 아니면 국가안보와 국익보호라는 차원에서 보도를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논의가 불거지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는 역시 "찍을 수 있는 소식이면 무엇이든지" 찍겠다는 미국 언론의 철저한 보도정신 때문에 생기는 미국만의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간 전쟁을 다루는 미국 언론의 자세가 국익보호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일방적,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는 외부의 비난이 일기도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는 밖에서도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는 처사이다. 대다수의 나라에서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서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국민 개개인의 권익을 챙기기보다는 국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툭하면 ‘안보’라는 무기를 들고 나와 언론, 출판은 물론 집회, 시위 등 온갖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면서 국민들의 ‘알 권리’는 둘째치고 그 이전에 ‘몰라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윽박지르던 한국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 더욱 그렇다.
특기할 것은 발행부수 1위인 월스트릿 저널과 2위인 USA 투데이를 제외하고 미국의 신문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지방신문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신문의 대부분이 아직도 기본적으로 지방지로 남아 있는 이유는 광대한 미국에서 전국지가 자리잡기 어렵다는 지리적, 역사적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지 이 때문에 미국의 신문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결국 전체적으로도 다양성과 중구난방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중구난방의 미국 언론에 비해서 획일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한국에서는 신문이 갖는 심대한 사회적 영향력이 알게 모르게 남용, 오용되어 왔다. 한국에서는 어느 분야에서나 언론에 ‘잘 보여야지’ 눈밖에 나면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언론에 밉보이면 조그만 꼬투리만 잡혀도 정당한 사실판단이나 분석이 있기 전에 언론의 몰매와 사형(私刑, media lynch)을 받기 쉽다. 이런 불이익과 피해를 면키 위해서 정부관리나 기업인은 물론 개인들도 진실을 감추거나 부풀리거나 또는 ‘잘 써 달라고’ 언론에 사탕발림과 뇌물을 들이밀게 된다. 이쯤 되면 한국 신문에 왜 ‘본사내방’이라는 난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고, 또 왜 정부가 가끔씩 ‘세금 몽둥이’ 같은 것을 휘두르면서 신문사들을 괴롭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의 신문들은 또 기사를 머리로 쓰지 않고 가슴으로 쓴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한국의 신문들은 곧잘 감정에 치우쳐 작은 일을 큰 일로 만들고, 슬픈 일을 더 슬프게, 또는 억울한 일을 더 화나게 만들어 왔다. 한국이 그동안 올림픽, 엑스포, 월드컵 축구를 유치하게 된 것이나 OECD에 서둘러 가입하게 된 것, 또 장관들의 목숨을 그렇게 짧게 만든 것 등등이 다 한국 신문들의 감정적인 ‘여론몰이’ 때문이었다고 해도 논리의 비약이라고 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미국의 신문들은 중구난방으로 ‘찍을 수 있는 소식이면 무엇이든지’ 다 찍어내고 있지만 미국에서 평일 일간지를 읽는 사람은 성인 인구의 60%를 밑돌고 주말에 신문을 읽는 사람도 70%를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통계는 잘 모르지만 짐작컨대 오늘도 한국에서 ‘××일보’를 펴 드는 사람은 성인 인구의 80~90%에 이를 것 같다.
정치에 대한 만성적인 초과수요를 갖고 있는 한국에 비해서 미국은 정치수요도 훨씬 작고 또 신문의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이해와 관심이 공존하는 다원적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는 무식한 사람들이 많다지만, 사람들이 다 유식하기만 해서 좋은 사회가 된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중구난방의 자유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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