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부 애니 김씨 가족의 주말나들이
▶ 화려한 과거와의 짜릿한 만남
서울서 친척들 오면 한 번쯤 갈까. LA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할리웃블러버드는 그다지 시간을 내서 찾아갈 만한 매력이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LA를 잠깐 다녀가는 이들은 할리웃 거리의 맨스 차이니스 극장이며 명성의 거리를 기를 쓰고 찾는다. 21세기도 영화의 메카 할리웃은 충분히 순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초창기에는 눈부시게 성장하던 할리웃 블러버드. 루즈벨트 호텔에서는 등이 훤하게 파진 드레스를 입은 마릴린 먼로와 엉거주춤한 멜빵 바지의 찰리 채플린을 옆집 순이와 철수만큼 자주 볼 수 있었던 곳. 하지만 어느 틈인가 할리웃의 화려함은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지난해 말 새로 문을 연 ‘할리웃 & 하일랜드(Hollywood & Highland)’는 잃어버린 할리웃의 옛 명성을 되찾아주는 구실을 톡톡히 한다. 항상 공사로 인해 이 일대의 교통이 혼잡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에 이처럼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이 우뚝 서게 되었는지. 하루 아침이면 건물이 뚝딱 지어지고 내려앉던 서울과 비교하면 이건 변화도 아니겠지만 천으로 가려있던 건물이 훤하게 드러나니 자연스레 세월 타령이 새어 나온다.
그다지 뾰족한 주말 보내기 거리가 떠오르지 않던 애니 김(42·중앙은행 근무)씨는 햇살 좋은 주말 오전 마이클과 제니퍼, 두 자녀와 함께 할리웃 & 하일랜드로 향한다. 신문과 방송으로 이 새로운 헐리웃의 명소가 연일 보도되었건만 아직 아이들에게 구경시켜줄 기회를 갖지 못했던 건 쫓기는 듯 바쁜 일상의 반복 때문이었다.
밖에서 볼 때는 그저 Gap, Tommy 등 부티크만 보였는데 빌딩 안으로 들어와 보니 별천지가 펼쳐진다. 이집트의 성문처럼 장대한 바빌론 코트 (Babylon Court)의 회색 벽에는 육중한 두 개의 기둥이 떡 버티고 서 있고 두 마리의 코끼리가 서커스에서 묘기를 부리듯 다리를 쳐들고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할리웃 사인은 주변 경관과 어쩜 그렇게도 잘 어울리는지. 날개 달린 남자상과 사자상 등 파라오의 무덤을 장식했던 이국적인 문양들은 건너편에 위치한 이집션 극장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빌론 코트는 1916년에 발표된 D.W. 그리피스 (Griffith)의 영화, ‘인톨러런스 (Intolerance)’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당시 영화 촬영이 끝났을 때 선셋과 헐리웃블러버드 코너로 옮겨졌던 실물 크기의 이 세트는 할리웃 & 하일랜드로 인해 다시 생명을 갖게 된 셈이다.
널찍한 열린 공간, 바빌론 코트는 만남의 광장이자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곳. 벌써부터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국제적 명소가 되어버렸다. 광장에는 반짝이는 보석을 파는 곳, 왁스로 손 모양을 뜨는 장소, 재미있는 모양의 모자를 파는 곳, 야구 모자에 이름을 새겨 주는 곳 등 개성 있는 점포들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꼼꼼하고 빈틈없는 성격의 그녀는 새로운 곳을 구경할 때 꼭대기에서부터 차례로 한 층씩 내려오면서 빠지지 않고 그 장소를 섭렵한다. 아직 채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인이 보였지만 오늘도 예외일 수는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리니 곧 오픈 할 예정이라는 할리웃 모션 픽쳐 컬렉션 (Debbie Reynolds’ Hollywood Motion Picture Collection)이 모습을 드러낸다. 데비 레이놀즈가 수집한 3108벌의 영화 의상이 전시될 박물관은 아직 오픈 하지는 않았지만 벽에 무성 영화 시대와 흑백 영화 시대를 풍미했던 미남미녀 배우들의 사진이 전시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절모를 쓴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카사블랑카’에서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 듯 서로를 타는 눈길로 바라보는 사진, 담배를 꼬나 문 반항적인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멋진 제임스 딘의 사진을 보는 애니 김 씨의 가슴은 추억의 명화들이 가져다주는 옛 기억들로 촉촉해져 온다. 마릴린 먼로, 캐서린 햅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레타 가르보, 클라크 게이블, 말론 브란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은막을 가득 채우던 스타들이 밤하늘의 별들보다 더욱 반짝인다. 줄리 앤드류스가 알프스의 푸른 초장에서 두 팔을 벌리고 생을 찬미하는 사진을 보며 오늘 저녁에는 아이들에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여줘야겠다는 계획을 해본다.
아직 채 문을 열지 않은 식당과 점포까지 다 보고 다니려니 다리가 슬슬 아파 왔는데 색색의 타일로 장식한 예쁘장한 테이블과 의자가 중간중간 놓여 있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어 가기 딱 좋았다.
중국 전통의 차양이 아름다운 맨스 차이니스극장을 바로 옆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의 본고장 헐리웃에서 쏟아져 나오는 영화를 소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는데 최신시설을 갖춘 차이니스 극장이 들어서 보다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돼, 영화팬들은 참 즐거울 것 같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게 될 코닥 극장 앞의 Awards Walk는 빨간 카페트가 깔려진 것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클라크 게이블이 비비안 리를 안고 올라가던 층계만큼 휘황찬란하다. 극장 입구로 향하는 기둥에는 역대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영화사를 한 눈에 읽어볼 수 있었다. 3월의 시상식 날이면 번쩍이는 목걸이에 은빛 여우 털 코트를 입은 여배우들, 길쭉한 리무진, 무엇보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로 온 세계의 시선이 이곳에 집중될 테지.
할리웃 & 하일랜드에는 최신 유행 스타일을 갖춘 부티크, 보석 전문점, 신발 가게, 화장품, 기프트 샵이 빼곡 들어서 있어 영화 관람, 외식과 함께 쇼핑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어 편리하다. 간단한 스낵을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캘리포니아 피자 키친, 더 그릴스 등 고급 식당도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할리웃 & 하이랜드는 할리웃대로 선상 Highland Ave.와 Orange Dr. 사이에 있다. 6층 짜리 주차장이 건물 바로 지하에 마련돼 있다. 주차장 입구는 Highland Ave.와 Orange Ave. Metro Rail을 타고 올 때는 Red Line을 타고 Hollywood & Highland 역에서 내리면 바로 위로 나온다. 운영 시간: 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10시, 일요일은 오전 10시-오후 7시까지이나 극장과 클럽, 레스토랑은 연장 운영된다. 웹사이트, www.hollywoodandhighland.com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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