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6강 고사하고 골드컵 1승도 못거둘라" 자조섞인 우려 만발
"슈웃∼ 그러나∼" 20, 30여년 전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한국축구 공격의 마무리 장면들은 대개 그랬다. 그때마다 무모한 슈팅 남발을 꾸짖는 해설자의 울화통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미드필드 플레이에서도 금방 숨이 넘어갈 듯 "한사람 제쳤다 두사람" 하고 이어지던 중계아나운서의 속사포는 금세 "그러나∼"로 돌변해 가슴졸이며 응원하는 청취자들의 김을 빼곤 했다. "자기가 무슨 펠레라고 제치려 드느냐"며 패스 주문들이 꼬리를 물었고.
그러나 요즘 한국축구에서 이같은 구석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오히려 쓸데없는 패스를 너무 헤프게 하고 슈팅을 너무 아끼는 게 문제다. 미국전(19일) 쿠바전(23일)을 통해 새삼 확인된 취약점도 이것이다. 이를 시급히 해소하지 않으면 월드컵 16강은 고사하고 골드컵 1승으로 한국축구의 목표를 낮춰잡아야 할 지도 모른다는 자조섞인 우려들이 빗발치고 있다. 골드컵2000에 첫선을 보인 한국은 이번까지 3무1패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패스 자체는 장려해야 할 요소다. 개인기가 출중하지 않는 한 패스에 의한 침투가 훨씬 효과적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문제는 면피성 패스. ‘우리가 나아가기’ 위한 것인지 ‘그들을 끌어내기’ 위한 것인지 분간이 안되는, 받으면 일단 가까운 선수에게 밀어주고 마는 패스가 태반이다. 때문에 볼을 점유하는 시간은 꽤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 의미있는 전진도 못하고 상대수비의 혼선도 유도하지 못한 채 ‘그들은 가만 있는 가운데 우리만 공연히 다리품을 파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브루스 아레나 감독은 한국전 승리뒤 월드컵 승부를 염두에 둔 듯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한국팀의 조직력이 좋다" "미드필드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고 입에 발린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월드컵과 관계없는 LA 갤럭시의 수비수 애담 프라이는 지난 16일 한국과의 연습경기때 "한국선수들이 의도와 방향을 이해할 수 없는 패스를 자주 했다"고 지적했다. 한국대표팀 감독출신의 차범근 MBC 해설위원도 쿠바전뒤 "터무니없는 패스가 많았다"며 "(주변동료에게 주려고만 하지 말고) 수비수 뒤쪽으로 찔러주는 스루패스를 통해 기회를 만드는…창조적 공간활용"을 적극 주문했다.
잘했을 때의 찬사보다 못했을 때의 질책이 두려워 소신있는 액션을 주저하는 ‘신한국 축구병’은 패스뿐만 아니라 슈팅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한마디로 상대 골문이 빤히 보이는데도 한방을 쏘지 못한 채 옆으로 뒤로 볼을 빼돌리거나 수비수에 둘러싸여 줘봐야 처리에 곤란을 겪을 동료에게 밀어줘 무르익은 챈스를 거듭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골잡이들도 발끝이든 머리든 가슴팍이든 걸리기만 하면 휘갈기겠다는 결연함보다는 발사태세조차 갖추지 않은 듯 스탭이 엉켜 슈팅 자체를 못날리거나 기껏 발을 갖다대도 방향도 위력도 초점을 잃은 엉거주춤 슈팅을 때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특히 2경기 연속 원톱에 가까운 투톱 공격첨병으로 기용된 최용수는 미국전에서 후반 23분 차두리가 빚어올린 절묘한 노마크 슈팅기회에 제발이 꼬여 폭삭하는 등 여러차례 헛발질을 거듭하더니 쿠바전에서도 전반25분 패널티 에어리어 왼쪽 무인지경에서 어시스트를 받았으나 컨트롤 미스로 볼을 차보지도 못했고 후반 30분 패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또다시 단독챈스를 맞았음에도 위력없는 원바운드 굴려넣기로 상대 골키퍼의 세이브 기록만 높여줬다.
쿠바전뒤 "(취임 전에 비해) 한국의 수비조직이 비교적 안정돼 있고 다른 건 몰라도 지난해 9월 이후 유럽팀과 맞서더라도 주도권만은 한국이 쥐어왔다"고 항변하며 미드필더들의 적극성 결여에 대해서도 "(능력 자체보다는) 과감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딱부러지게 말했던 히딩크 감독도 골결정력 빈곤만큼은 치유방법이 막연한 듯 "늙은 내가 뛰면서 가르칠 수도 없고 또 그런다고 금방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며 "골잡이들의 킬러본능"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답을 가름했다.
그렇다고 마냥 한숨과 비난만 늘어놓을 계제는 아니다. 더욱 만만찮은 상대 멕시코와의 8강전(27일·패사디나 로즈보울)이 코앞에 닥친데다 이제와서 월드컵 16강 희망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줍잖은 승리감에 도취되느니 잘만 하면 골드컵 2연전의 쓰디쓴 실패가 달콤한 열매를 맺게 해줄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고개숙인 태극전사들이 다시금 축구화끈을 동여매고 야망의 땀을 곱절 흘려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