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노란 리번을 매달지 않았다. 대신 성조기를 내걸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그런데 너도, 나도 아무 말 없이 성조기를 내건 것이다."
이란 미대사관 인질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인들은 일제히 노란 리번을 매달았다. 이후 고난의 일이 발생할 때마다 노란 리번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2001년 9월11일. 무차별 테러공격과 함께 수많은 고귀한 인명이 일시에 희생됐다. 전 미국은 성조기로 뒤덮였다. 노란 리번은 안 보인다.
’노란 리번에서 성조기로’-.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민의 내면의 언어가 바뀐 것을 알리고 있다. ‘당신의 아픔에 동참합니다’라는 연민의 속삭임에서, ‘분노와 함께 행동을 촉구하는 무언의 함성’으로 그 내면의 언어가 바뀐 것이다.
말은 사전적 의미만 전달하지 않는다. 언외의 뜻을 전달할 때가 많다. 말은 표기된 문자로만 전달되는 게 아니다. 무언의 행동으로, 무의식적 반응으로, 또 상징 조작을 통해서도 전달된다.
지난번 한국의 대통령 선거 때 한국의 신문을 가장 많이 장식한 한자는 ‘龍’(용)이었다. ‘여권 8용’ ‘용들의 승부처’ 등이 그 전형적 표현들이다. 신문을 폈다 하면 나온 단어가 ‘용’자로, 이 ‘용’이란 말은 물론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5년. 한국은 또 다시 대선 정국을 맞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용’자는 보기가 힘들다. ‘7色 大權 세일즈’-. 여당인 민주당의 일곱명 대선 경선 예비주자를 소개한 해설기사의 제목이다. 대개가 이런 식 표현이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단어는 그냥 ‘대선주자’다. 당내 각 정파 실력자들의 이합집산을 ‘용들의 쟁투’로 표현한 5년 전과는 너무 달라졌다. 마치 짜고 신문을 만든 것 같다. 왜? 아무래도 그 단서는 ‘용’이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용(龍)은 왕조시대 절대 권력자인 왕을 의미했다. 용은 권력 그 자체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군림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투명성’이라든지 ‘민의’라든지 ‘토론의 문화’라든지 하는, 요컨대 민주주의와 관련된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와는 어딘지 매치가 안 된다.
’용’이란 단어가 안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 단어가 지니고 있는 시대착오성 뉴앙스 때문인지 모른다. ‘문민시대’도 지나 ‘국민의 시대’인데 정치의식이 왕조시대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대각성에서 ‘용’자를 쓰지 않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당한 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정치라는 것, 또 그 물에서 논다는 사람들에 대한 환멸과 절망의 결과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용은 공중을 날며 구름과 비를 몰아 풍운조화를 부리는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인중지룡’(人中之龍)이라고 하면 자질이나 능력, 모든 면에서 아주 뛰어난 인물을 뜻한다. 과연 그런 인물이 있기는 한 건지. 모티브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사실 이번 대선은 ‘용이 못된 이무기’끼리의 경쟁으로도 볼 수 있다. ‘대권 재수’니, ‘3수생’이 어디 한둘인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옛말에 따르면 ‘용이 못된 이무기’는 의리나 인정은 도무지 없고 심술만 부리는 존재로 돼 있다. 그러니 문제다. 거기다가 범강장달이( 疆張達-)가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한국의 언론은 부지부식간에 한가지에 합의를 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리 ‘언어 인플레’를 능사로 삼고 있는 언론이지만 풍운조화를 부리는 ‘용’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자는 무언의 합의다. 고만 고만한 사람들을 놓고 도대체 ‘용’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무의식성 판단의 발로로 보인다.
지나친 독단이라고? 글쎄. 한 국내 언론의 촌철(寸鐵) 비평은 그런 판단이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여야 경선 본격 돌입. 지금부터 1년 내내 대선전(大選戰). 국민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시련을…."
요약하면 이렇게 되는 것 같다. "문민에서 국민의 시대로 접어든지 5년. 그동안 한국인의 내면에는 한 언어가 형성됐다.
숱한 상처와 배신, 철저한 절망 등이 뒤엉키고 삭아진 결과다. 그 내면의 언어는 무언의 외침이기도 하다. ‘그래, 어디 잘들 놀아보아’라는 냉소의 외침이다."
왜 용(龍)이란 말이 대선 정국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까. 단언컨대 ‘의식의 민주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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