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대담
▶ 이필재 목사-옥세철 논설실장 대담
이필재 목사를 만났다. 새해에 무언가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첫 대면인데 어색하지가 않다.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배려 탓일 게다. 테러사태에서 세계 평화, 또 미주 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에 이르기까지 화제는 자유롭게 오갔다. "목사와 스님이 점심을 나눈다고 하나님이 싫어하실까요. 아닙니다." 때로 자문자답형으로 이끌어 가는 이 목사의 말에서는 차분함 가운데 열정이 느껴진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우리 모두는 각자 사연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므로 아픔과 상처가 많습니다." "종교지도자는 교회 밖에서도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퍽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많은 것을 들었다. 세밑의 비 오는 날에 이루어진 만남이다. 끝났을 때 비는 그치고 해가 나 있었다.
2001년 9월11일 발생한 테러 참사는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21세기 앞날에 대한 예고라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21세기 원년에 테러전쟁이 발생했다는 건 하여튼 뭔가를 상징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60년대 말로 기억됩니다. 폴 틸릭이 유명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네 가지가 해결이 안되면 미국은 과거 로마제국과 같은 몰락의 운명을 맞게 된다는 것이었지요.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의 매머니즘(mammonism), 지나친 휴머니즘 그리고 향락주의(hedonism)입니다. 이런 사조가 너무 생활 곳곳에 침투해 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보수파 미국 목사들이 테러참사를 타락한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로 지적하고 나섰지요. 그러자 미국 사회의 반발이 상당했습니다. 사실 한인교회 목사님들 중 상당수도 같은 견해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방법론이 선하지 않을 때는 악순환의 연속일 뿐입니다. 자살테러를 감행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방법이 나쁘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다면 그런 종교는 없는 것만 못합니다. 21세기는 그런 의미에서 특히 ‘종교간의 대화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종교지도자 모임에 초청된 적이 있습니다. 물리적 힘으로는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게 그 분 말씀이었습니다. 각 국가나 민족 집단에 종교가 너무 뿌리가 깊게 내려 종교간의 대화가 시급하다는 얘기입니다. 구원의 교리는 별도로 하고 사회 정의와 평화를 위해 모든 종교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동감입니다.
종교간의 대화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극단적 예지만 종파가 다르면 상대를 처음부터 ‘사탄’의 세력으로 간주해 대화가 안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동방정교, 이슬람교 등이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의 교리는 접어두고 함께 대화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대화를 위해 ‘목사와 스님이 점심을 나누었다’고 합시다. 하나님이 싫어하실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새해부터는 우리의 삶이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단순한 경제적 생존이나 성장 차원을 벗어나 미국이라는 다민족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매김을 해야겠지요. 이를 위해 한인 사회가 지닌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25년간 목회를 하면서 한인 사회를 보아 왔습니다. 우리의 장점은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체 한민족의 장점으로 비쳐집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인들은 생활력이 아주 강합니다. 러시아의 고려인들은 1930년대 스탈린이 연해주에서 강제로 중앙 아시아로 이동시키는 고난을 당했지요. 그러나 이겨냈어요.
엄청난 생명력을 민족의 장점이자 LA 한인 사회의 저력으로 보셨는데 이는 어찌 보면 이민 그룹 특유의 생명력일 수도 있겠습니다. 커뮤니티로서 한인 사회를 바라보면 그러나 적지 않은 문제점이 보입니다.
▲4.29폭동 때 흑인들이 한인 상가를 불지르는 피해를 입혔지요. 잘 사는 한인들을 시기해 저지른 행위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한인들이 공동체 정신이 빈약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공동체 정신의 빈약은 교회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고 봅니다. 교회들이 연합하는 모습이 보기 드물어 하는 말입니다. 너무 개교회 중심이고 교회 밖의 일에는 무관심하다고 할까요.
▲교회의 존재도 그렇습니다. 그 지역사회에 이바지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 교회를 얘기해서 조금 민망합니다만 철저히 ‘열린 교회’(open church)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나 열어놓습니다.
-다른 커뮤니티의 경우는 어떤가요. 공동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말입니다.
▲브라질의 일본인 농업 이민을 보고 느낀 게 많았습니다. 본국 정부가 강력히 지원을 해 일본인 이민사회는 튼튼한 공동체가 됐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본국을 지원하면서 커뮤니티를 성장시켰습니다. 그 결과 결속력이 큽니다. 한인 이민은 각자 개인 사정에 따른 이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각자 아픔이 너무 크고 항상 방황하는 모습입니다.
이 점에서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신앙 공동체가 교회지만 이제는 사회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가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민자를 위해 저희 장로교에서 가르치는 게 있습니다. 먼저 정착 방법을 단계적으로 가르칩니다. 이와 아울러 인간의 삶이 풍성해지는 네 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선 건강한 육체가 있어야지요. 아가페 사랑의 주체인 내가 있어야 사랑을 전도하지 않겠어요. 그 다음은 심리적 평화입니다. 세 번째는 정상적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영혼의 풍성이 되겠지요.
인간은 관계의 존재입니다. 관계를 떠나서 인간의 존재를 이야기한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 점에서 정상적 인간관계가 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차별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거기다가 개인의 사생활을 간섭해서는 안되지요. 이 원칙에 충실할 때 정상적 인간관계가 이뤄진다고 봅니다.
공동체 의식 부재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는데 그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슈가 없는 사회라고 할까, 거기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한인 사회를 결속시킬 뚜렷한 이슈가 있었지요. 해방 전에는 조국 광복이 그 이슈였습니다. 이슈 부재가 한인 사회가 공동체로서 발전할 모멘텀을 주지 못한다고 봅니다. 지도자 부재도 한 원인이라고 봅니다. 민주적 구심점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요즘 같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에는 문화적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되지 않을까요. 가령 가치관의 차이는 공동체 의식 부재의 한 요인이 되지 않을는지요.
▲문화 충격의 아픔이 문제입니다. 이민 그 자체가 문제 아닙니까. 나무를 뿌리째 옮겨놓았으니 말입니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픈 사회가 이민 사회입니다. 내 아픔 때문에 남을 찌릅니다. 한인 사회 전체의 모습입니다. 그 아픔, 그 상처 때문에 공동체 의식이 자라지 못하고 악순환을 계속 그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포용할 수 있어야 됩니다.
구심점 말씀을 하셨는데 교회가 그 역할을 맡아야 되지 않을까요. 또 아픔을 씻어주는 역할도 교회에 요구되는 게 아닐까요.
▲교회마저 빛을 잃었습니다. 교회가 걸핏하면 갈라져 싸우니 사회가 교회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저 자신 한 사람의 목회자로 자책을 느낍니다. 저 자신을 향한 강한 외침이 있습니다. 교회가 상업주의 원리의 문화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구원에 역점을 두어야지 세상의 경쟁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입니다. 기업의 원리를 따라가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본질, 참된 구원의 빛에 대한 갈망이 없는 교회입니다.
- 한국 교회에 대해 외국인들이 이런 말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한인 교인들은 신앙의 열은 있는 것 같은데 빛은 없다는 거지요.
▲상업주의 원리가 교회에 침투한 탓입니다. 신앙인은 당연히 훌륭한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는 교회 안에서만 필요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 말씀을 하셨는데, 교회가 심한 분열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 상처와 연관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신앙의 열성은 있지만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사람, 양육되지 않은 사람이 중책을 맡다 보니까 교회가 깨지고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영적 지도자, 정신적 지도자가 영적·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보통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가 속한 교단(PCUSA)에는 정기적으로 목사의 정신적 상태를 점검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초빙해 목사의 자질부터 먼저 체크합니다. 감리교단(UMC)도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한인 교회들이 목사님들의 은퇴와 관련해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교회도 세대교체 과정에 있어 이 문제는 앞으로 계속 불거질 것 같은데요.
▲지도자로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잘 물러나는 일입니다.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한가지 배운 게 있습니다. PCUSA에서는 목사가 65세가 되어도 교인들의 동의만 있으면 은퇴를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존경받는 목사라도 65세를 넘기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물러날 때는 물러나야 그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는 게 은퇴 목사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잘 배웠는데 실천에는 용기가 따라야겠지요.
여러 가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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