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생각
▶ 김현덕<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마무리되는 기미가 보인다. 이슬람 극단주의파 탈레반 세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남자들은 수염을 깎기 위해 이발소로 향하고, 여자들은 조심스럽게 부르카를 벗는다. 5년 만에 처음으로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모습 속에서, 부르카를 벗고 뉴스를 읽고 있는 여자 앵커의 모습 속에서 한줄기의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 같다.
뉴스 속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얼굴은 터번을 쓴 수염 기른 남자들뿐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자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른다. 남자들의 동반이 없이 여자들은 거리를 걸어다닐 수 없고, 여자가 발목을 보였다고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회초리로 때린다. 그게 법이란다.
부르카 속에 가리어 있는 여자들. 마치 미라가 관속에서 걸어나와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 같은 그들의 모습을 사진 속에서 보면서 100년 전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의 눈에 비치어진 서울의 거리를 생각나게 한다. 1890년대에 한국을 방문한 테일러라는 여행자의 눈에 비치어진 이상한 나라, 이상한 사람들에 대하여 쓴 글 속에 그려진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다.
머리를 땋아 내린 남자아이들이 팽이를 치고 노는 모습, 서당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한 목소리로 글을 읽는 아이들, 머리꼭대기에 매듭을 지어 올린 헤어스타일의 남자 선생님이 팔 길이 보다 긴 파이프를 빨면서 공부를 가르치는 모습, 말꼬리로 만든 모자(갓)를 쓴 하얀 드레스(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들이 바삐 오가는 길거리, 여기저기 길가에 떼지어 쪼그리고 앉아서 하루종일 잡담하면서 할 일없이 놀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자는 어른도 아이도 거리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면서 참으로 이상한 나라라고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를 가리고 눈만 빼꼼히 내놓고 외출하는 여자의 모습이 가장 이색적인 모습이었던지 쓰개치마를 쓴 여자의 모습을 스케치까지 하여 한국 여자들의 의복을 설명하였다. 여자들은 집안에서만 살아야 하고, 교육도 받을 수 없으며 여자는 사람 축에 끼지 못하는 조선여자들의 운명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여자 독자들에게 서양에서 태어난 그녀들이 얼마나 행운아들인가를 상기시켜 주기도 하였다.
부르카를 쓴 아프가니스탄의 여자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조선 여인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남자들만 보이는 카불의 거리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서울의 거리였다. 불과 100여년 전에 있었던 우리의 이야기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생각하며 여성교육을 생각하여본다.
한 사회가 얼마나 진보되었는가를 알려면 여성교육에 대한 국민의 태도를 보면 안다. 전통적인 사회일수록 여자에게 교육을 금한다. 여자들의 교육을 제한하는 사회는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잘 안다.
이슬람 종교의 극단주의파인 탈레반이 정권을 잡기 전에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많은 교사들이 여자들이었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여자들의 손과 발을 묶어 집에 가두어 놓고, 교육을 금하였다. 탈레반 정권 전에 선생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여자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돈다. 사는 것이 감옥살이하는 것 같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탄한다고 하면서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말한다. 여자로 태어난 것은 저주라면서.
옛날 유대인 남성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서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여자로 태어나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빈 라덴을 생포하였을 때 그를 여자로 만들어 텔레반 정권 하에 살게 하는 것이 최고의 형이 될 것이라는 농담 속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의 삶이 짐작이 간다.
나의 할머니 세대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자들이 부르카를 쓰고 다니는 것처럼 쓰개치마를 머리에 쓰고 다니셨다. 여자는 학교 문전에도 가지 못하였다. 나의 어머니 세대에도 여학생은 소수였다. 내가 대학을 다녔을 때만 하여도 많은 부모들이 남자아이를 대학에 보내는 것을 우선 순서로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 부모들은 여자 남자 따지지 않고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의 진보를 여자들의 교육을 통하여 잘 보여 주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종전 뉴스와 함께 여자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문을 열고 있다는 소식 속에서 진보의 물결을 본다. 여자들의 교육이 자유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는 감격적인 장면이다. 교육은 인간이 인간답고 살 수 있는 사회의 기초이며 발판이 되기에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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