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와 여자테니스의 1인자 마티나 힝기스가 그랜드슬램대회 무관에 그친 2001년은 지난해에 이어 가일층 가파르게 진행돼온 신·구 스타간의 세대교체가 사실상 매듭지어진 분수령으로 기록될 한해였다.
남자프로테니스(ATP)에서는 90년대의 양대 산맥이었던 피트 샘프라스는 확연히 노쇄한 모습으로 퇴임이 눈앞에 왔음을 보여줬고 노익장을 과시하던 앤드레 애거시(미국)도 후반에 가까워질수록 신예들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부쳤다. 반면 신세대 스타 레이튼 휴잇(20.호주)은 지난 주말 끝난 탑랭커들간의 대결인 시즌 결산 매스터스 컵에서 우승과 세계랭킹 1위를 동시 사냥, 차세대 테니스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여자프로테니스(WTA)도 3년간 정상을 지켜온 마티나 힝기스(스위스)의 몰락 속에 비록 신인은 아니지만 제니퍼 캐프리아티(미국)가 메이저대회 2관왕에 오르며 재기에 성공해 벨기에의 10대 돌풍 킴 클리스터스, 쥐스틴 에넹과 함께 판도 변화를 주도했다.
이에 따라 팬들을 식상케 할 만큼 같은 얼굴들이 나눠 먹기식으로 자리를 바꿔왔던 세계랭킹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 ATP 10대 때부터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은 휴잇이 결국 올시즌 마지막 대회 매스터스컵에서 구스타보 쿠에르텐(브라질)을 제치고 2001챔피언스랭킹 1위로 시즌을 마무리해 세대 교체의 선봉에 섰다.
휴잇은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타이틀까지 획득하는 경사까지 겹쳤다.
또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21.스페인)나 세바스티앙 그로장(23.프랑스), 타미 하스(23.독일) 등 20대 초반의 기교파들이 ‘톱10’에 당당히 자리하면서 쿠에르텐 정도를 제외하면 기존 강자들의 몰락이 두드러졌다.
가장 크게 퇴보한 선수는 ‘황제’ 샘프라스.
메이저대회 최다승(13승)의 기록을 세우며 90년대를 풍미했지만 31세의 나이는 속일 수 없는듯 올시즌 메이저대회는 커녕 단 한개의 타이틀도 없이 정상의 자리에서 한참 뒤로 물러섰다.
애거시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을 우승하는 등 그런대로 체면을 세웠지만 역시 시즌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체력 저하 등의 문제점을 노출했다.
패트릭 래프터(호주), 예브게니 카펠니코프(러시아), 팀 헨만(영국) 등은 메이저대회 우승 없이 ‘톱10’을 유지, 그럭저럭 체면치레를 했다.
휴잇의 라이벌로 평가됐던 지난해 US오픈 챔피언 마랏 사핀(러시아)이 부진한 것이 아쉬웠지만 10대 선수들인 앤디 로딕(미국)과 로저 페더러(스위스)의 두드러진 성장 역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었다.
한편 거듭된 부진으로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던 고란 이바니세비치(크로아티아)가 대포알같은 서비스를 앞세워 윔블던 정상에 오른 것은 올시즌 가장 큰 이변으로 기록됐다.
◇WTA 최근 3년 동안 랭킹 1위 자리를 거의 내주지 않았던 힝기스가 정상에서 내려와 4인자로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사건이었다.
힝기스는 2년 가깝게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고 올해는 남자테니스의 샘프라스와 마찬가지로 단 1승도 건지지 못하는 최악의 해를 보냈다.
그의 자리를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한 캐프리아티가 접수했지만 막판에 린지 대븐포트(미국)가 다시 빼앗는 등 랭킹 쟁탈전 또한 치열했다.
특히 캐프리아티가 오랜 부진과 방황을 딛고 화려한 재기에 성공한 것은 힝기스의 몰락 못지않은 화제였다.
클리스터스와 에넹은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결승에 진출하며 여유있게 랭킹 상위권을 차지했고 호주에서 유고로 다시 국적을 바꾼 옐레나 도키치도 ‘톱10’에 진입, 남자테니스 못잖은 세대 교체 바람을 예고했다.
힝기스와 함께 오랜 세월 여자테니스를 대표해온 모니카 셀레스(미국)가 10위까지 랭킹이 떨어진 것도 이러한 세대 교체 경향을 대변한다.
비너스 윌리엄스(미국)는 윔블던과 US오픈을 2연패하며 올해도 강세를 이어갔지만 랭킹 1위에 오르는 데는 실패해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한편 메이저대회에서 2번씩 우승을 나눠가진 캐프리아티와 비너스가 메이저 무관의 대븐포트에게 랭킹 1위를 내준 것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자 WTA는 내년 시즌부터 메이저대회 등 비중이 높은 대회에 랭킹 가산점을 부여할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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