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간 여성들, ‘인간 대접’ 받기 희망하나 아직도 ‘부르카’는 쉽게 벗어 던지지 못해
북부동맹이 과거 탈레반 점령지를 장악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지난 5년간 견뎌야했던 고통도 끝났다. 아프간 서부의 부촌인 헤라트에 진주한 북부동맹군 사령관 이스마일 칸도 여성들도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 다녀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찾은 자유는 너무나 생소해서 전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고 남아 있는 상처 역시 너무 생경해 치유될 것 같지 않지만 몇 년만에 처음으로 이곳 여성들은 주인 멋대로 처분되는 가축이 아니라 인간으로 대우받을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제 마음대로 집 밖에 나가도 되고 일도 할 수 있으며 딸들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 헤라트에는 얼굴까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쓴 여자들이 더 많다. 사람이 아니라 기둥같아 보이게 하는 부르카를 쓰면 가까운 친구들끼리도 서로 못 알아 보지만 그래도 부르카를 쓰고 혼자, 또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나들이하는 여자들은 많다. 불과 1주일전만해도 여자가 혼자 길에 나오면 매질을 당했었다.
이제 여성들은 과거 혼자 집밖에 나오거나 관공서에서 감히 입을 열었다가 매맞은 상처도 내보이며 탈레반 정권의 불합리성을 비난한다. 남자 의사들은 여자를 치료하지 못하게 하면서 여자는 의사 공부를 불허했으며 혼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많은 과부들을 일하러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프간 여성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버티고 저항했다. 들키면 매를 맞을 줄 알면서도 혼자 나다니거나 집안에서 딸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비밀리에 학교도 열었다. 17년 경력의 교사 소헬리아 헬랄은 탄레반이 집권할 즈음 어린 자식 3명만 남기고 남편이 세상을 뜨자 너무 막막해 자살도 여러번 생각했다. 같이 집을 나설 남자 친척도 없는 처지라 식료품을 사러 나갔다가도 들키면 매질을 당할 처지였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학교를 계속했다. 담이 높은 자기집 마당에서 몰래 학교를 운영, 120명의 여자 아이들을 가르쳤던 것.
유엔 후생정착센터 사무실을 운영하는 코브라 제이티는 약사 출신으로 파키스탄으로 교재를 구하러 갔다 탈레반 군에 잡혀 잠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어찌어찌 탈레반 정권으로부터 여자들을 위한 바느질 프로그램 허가를 받았는데 80명 모집에 고학력 여성 1500명이 지원했다. 국제기구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느라 그녀는 탈레반 정권앞에 이슬람 가치관을 계속 지지한다는 서약도 했다.
이 사무실로 일자리를 구하러 온 여성들중 한명인 시마 레자이(22)는 훌륭한 교육을 받고 2년전 이란에서 귀국해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 할 처지인데 고작 구호물 배급센터에서 허드렛일만 했다고 말했다. 2년동안 집안에서 요리만 하다가 이날 처음 언니를 따라 집밖에 나온 그녀의 동생 자라(17)는 여전히 부르카를 쓰고 있었다.
또 다른 여성 델반드도 "감옥에 갇힌 것과 같았다"고 말했는데 이제 죄수들은 모두 풀려났지만 이곳 여성들은 외부 세계에 탈레반 정권의 가장 분명하고도 오싹한 상징물인 부르카를 일제히 벗어 던지지는 않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얼굴을 내놓는 차도르를 쓰고 싶지만 탈레반군이 다시 돌아올까봐 무서워 계속 부르카를 쓴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들은 탈레반 집권 이전부터 쓰던 것이니까 계속 쓰겠다는 입장이고 "아프간의 전통"임을 내세우며 여자들이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 다니더라도 부르카는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남자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옷차림이나 통치자 같은 것은 하나도 중요치가 않다. 배운 것도, 남편도 없이 여덟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파리골 압둘라소울(50)은 탈레반 치하에서는 집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전깃불도 없는 컴컴한 집안에서 열매 껍질을 까다가 시력을 다 상했다. 이제 구호식량이라도 얻어볼까 하고 헤라트의 큰 호텔로 관리를 만나러 나온 그녀는 이제 최소한 구걸할 자유는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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