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AFI 영화제에서 상영된, 록 밴드에 관한 다큐멘터리 ‘트리뷰트’는 감독이 제작비를 대서 만든 자작영화다. 영화제에서의 상영이 곧 극장 개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 감독 크리스 커리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10여장이나 되는 크레딧 카드에 누적된 빚을 갚을 수 있는 계약이 성사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래도 ‘트리뷰트’는 자작 영화치고는 해피엔딩이다. 많은 자작영화 감독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파산법정에 서는 것으로 결말이 나곤 하기 때문이다. 첫 영화를 찍으려는 감독 후보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돈을 빌리고, 크레딧 카드 대출로 자금을 조달한다. 남편 리치 폭스와 공동으로 ‘트리뷰트’를 감독한 커리는 빚이 얼마나 되는지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만, ‘집 한채 장만할 만한 금액’이라면서 "계산해 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에의 꿈을 품고 있는 감독 지망생들은 자신의 시나리오를 팔 수 없거나 팔고 싶지 않은 경우 자작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클러크’나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 같은 성공담은 이런 꿈에 불을 붙이고, 신용카드 회사들은 영화제작을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러나 파산전문 변호사나 연예산업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자작영화들은 수년간에 걸친 부채상환에 시달리게 되거나 개인파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마이클 메레디스의 경우를 보자. 그 역시 한 다스나 되는 크레딧 카드의 결제를 컴퓨터로 관리하고 있다. ‘비의 사흘’이란 그의 데뷔작에는 45만달러가 소요된다. 배급사를 찾지 못하면 빚을 갚는데 10년 이상 걸릴 것이다. 메레디스는 "라스베가스에서 도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표현했다. "돈의 가치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나흘 뒤 4만달러를 써버린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메레디스와 아내 수잔은 돈 한푼 없이 시작했다. 남편의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수잔은 1964년형 영국제 ‘선빔’ 컨버터블을 팔아 낡아빠진 폭스바겐 ‘폭스’를 사고 남은 돈 5,000달러를 남편에게 주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작은 차도 없이 엄마의 차를 타고 다닌다.
옷은 구세군에서 산 것이고, 친구네 아파트의 빈방에 얹혀 살고 있다. 이 부부는 그동안 처남과 할머니를 끌어들이고, 일부 제작된 부분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지분을 팔았다. 그렇게 끌어들인 40명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친구 친척 등 주변사람들로, 심지어 단골 치과의사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빚이 10만달러나 된다.
케이프 카드를 무대로 한 화가와 살인자에 관한 영화인 ‘디스코드’라는 데뷔작에 50만달러를 쏟아 부었던 윌킨슨은 결과는 "파산보다 더하다"고 했다. 매일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도 3년이 지나야 빚을 청산할 것으로 계산이 나온다는 그는 자기 것은 물론 남의 크레딧 카드까지 끌어다 썼지만, 상도 몇 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배급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이 영화로 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크레딧 카드 여러 개를 사용해서 영화제작비를 조달하는 것은 잘 알려진 현상이라고 말하는 파산전문 변호사들은 그 유혹을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영화 제작과 관련한 파산 여러 건을 다룬 바 있는 변호사 린다 추는 "독립 영화제작자를 꿈꾸며 크레딧 카드 대출을 받기 시작하면 10만달러쯤은 우습게 쓰기 쉽다"고 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2년전 이런 추세에 가세, "영화를 만들라"라고 부추기는 빌보드까지 내세웠다. UCLA의 시나리오 작법 교수인 해럴드 애커먼은 야심 있는 영화 지망생들이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는 것을 여럿 봤다며 "이들은 꼭 하고야 말겠다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영화제작은 열정도 필요하지만, 재정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되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스파이크, 마이크, 슬래커스 & 다이크스: 미국 독립영화 10년간의 안내서’라는 책을 쓴 존 피어슨도 신용카드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흔하다고 말했다.
수천편에 달하는 독립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AFI 영화제의 올해 출품작은 1,750편으로, 지난해 1,300편이었던 것에 비해 25%가 증가한 것이다. 이중 영화제에서 선보일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10% 미만이다. 선댄스 영화제에선 1996년 1,950편이 출품되었던 것이 올해엔 4,000편으로 늘어났다. 지난 10년간 영화제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문호는 오히려 좁아졌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자작영화는 이력서에 한 줄 보태는 것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엄청나게 비싼 이력서죠. 하지만 그 이력서를 누군가에게 보이기가 더 힘듭니다" 윌킨슨의 말이다. ‘트리뷰트’가 돈이 되지 않는다 해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커리는 말했다. "우리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은 거니까요. 불평을 한다면 분에 넘치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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