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조폭’ 투성이다. 영화도, 잡지도 조폭을 주제로 다뤘다 하면 반드시 히트다. ‘조폭 마누라’까지 등장했고 ‘조폭 영화’ 감상법이란 것도 생겼다. 주식이다, 하이텍 산업이다, 권력이다, 정치다, 모든 게 조폭을 빼고는 도무지 얘기가 안된다. 바야흐로 ‘조폭 공화국’이란 말이 ‘진짜 진짜’ 실감되는 게 요즘의 한국인 모양이다.
"유자(儒者)는 문(文)으로써 법을 어지럽히고 협자(俠者)는 무(武)로써 금(禁)을 범한다." 한비자의 말이다. 사마천은 2,000년도 훨씬 전 협자의 무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기(史記) 유협열전(遊俠列傳)이 그 이야기다.
"그들의 말에는 신용이 있고, 행동은 과감하고 한 번 승낙한 일은 반드시 지키고 자신의 몸은 아끼지 않으며 남의 고난을 돌본다." 협자에 대한 사마천의 묘사다. 이 협자란 한국말로 하면 한량이 가장 가깝다. 비하하면 건달이요, 어깨이고, 왈짜패다.
이 유협의 무리들은 수천년 중국 역사에 면면히 나타난다. 그들은 획일과 순응만을 강요하는 숨막히는 봉건사회에서 상당히 특이한 존재들이었던 것 같다. 복장부터 달랐다고 한다. 저항을 상징하는 액세서리 등을 착용해 자유인으로서 스스로를 차별화 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유협의 역사도 만만치 않다. 고려시대부터 조직화 된 유협의 무리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기록이 확실한 건 이조시대 부터다. 활빈도, 활빈당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백범일지(白帆逸志)에도 비교적 소상히 기록돼 있다. 말하자면 쿠데타로 태어난 이성계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은 고려 무사들이 지하로 숨어들어 저항을 한 게 활빈행의 효시라는 것이다.
협의를 존중 한다는 무리들이 모두 저항정신으로 일관한 건 아니다. 한양의 유명한 건달이었던 홍윤성은 수양대군의 정권탈취에 가담해 공신(功臣)책봉까지 받는다.
홍윤성은 이런 점에서 유협의 무리로 볼 수 없다. 요즘 말로 하면 정치 깡패다. 조폭으로 분류해도 무방 할 것 같다. 신의 보다는 이권에 따라 움직이는 게 깡패이고, 조폭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왠 느닷없는 ‘조폭 증후군’인가. 그 단초는 아무래도 군사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퍽 오래전 도올 김용옥은 ‘굼발이와 칼재비’란 제목의 긴 칼럼을 썼다. 이 칼럼에 인용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란 일본학자는 무사, 다른 말로 야쿠자, 깡패와 군인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군인은 타율 무장집단이고 ‘칼재비’는 자율 무장집단이다. ‘칼재비’를 지배하는 건 주종(主從)관계다. 오야붕과 꼬붕의 관계다. 굼발이(군인)를 지배하는 건 군신(君臣)관계다."
마루야마에 따르면 명치유신의 가장 부정적 유산은 일본 군인정신의 타락이라는 것이다. ‘칼재비’정신을 군인정신으로 대체 시킨 결과로 그 다음 세대(소화시대)에 대두된 일본 군국주의가 그 열매라는 게 마루야마의 지론이다.
도올은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 군사독재정권의 뿌리는 바로 타락한 일본 군인정신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군사정권은 그러면 타락한 군인정신만 이식시켰을까. ‘칼재비’ 멘탈리티, 야쿠자 문화도 함께 묻어 들어왔다고 보아야 한다. 그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시절 폭력은 어찌보면 군의 전유물이었다. 정권 자체가 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다가 그 하부구조는 군이므로 당연한 귀결이다. ‘자율 무장집단화’ 한 군의 폭력에는 정치도, 언론도 속수무책이었다.
5공시절 발생한 군장성의 국회의원 폭행사태는 아마도 당시의 시대상을 가장 적라라하게 나타낸 사건일 수도 있겠다.
이후 시계추는 크게 움직였다. ‘굼발이’들의 일패도지(一敗塗地)와 함께 오른 쪽에서에서 왼쪽으로 사회의 흐름이 큰 스윙을 하면서 새판 짜기 정치 싸움이 한창이다. 이 와중에 괴사(怪事)가 발생했다. 조폭이 국회의원을 협박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굼발이’천하가 무너지자 ‘칼재비’가 장내에 진입, ‘폭력의 도구’로 부상한 것이다.
이 것이 의미하는 건 뭘까. 한국의 정치판이 말은 보수니, 개혁이니 그럴듯한 단어로 치장하고 있지만 끼리끼리의 폐쇄주의의 담만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통치의 하부구조에는 여전히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반영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왜 ‘조폭’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하는 것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돈과 힘을 거머쥐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일까. 이 역시 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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