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전쟁(임진왜란 1852~1860)을 도자기전쟁이라고도 한다. 그만치 이 나라 도예문화의 수난기였고 그 중에서도 조선의 도공들의 처절한 비극의 시대였다. 평시에는 상민도 아닌 천민으로 천대받고, 왜구가 쳐들어올 때는 제일 먼저 인질로 끌려갔던 우리의 도공, 조선의 도공이다.
당시만 해도 일본의 도자기 기술은 토기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조선 침략 10년전쟁으로 파산 직전에까지 몰렸던 도요도미 히데요시 치하의 일본경제를 일거에 회생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력으로 세계에 뻗어나가게 한 결정적인 상품이 바로 인질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의 도공이 일본에 전수한 도자기 기술이다. 그 후예, 조선의 도공이 지금도 일본에 건재하다. 14대를 이어오는 동안 창씨 개명도 하지 않았으며 친일파가 되어 조국을 팔아먹는데 앞장 서지도 않았다. 여기 그 사람이 있다.
언제라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인 도공 심수관이 청와대에서 김대중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수여받는 TV화면을 지켜보았다. 나는 남다른 감회속에 화면을 지켜보았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벌써 십여년 전의 일이다. 탱자친구 K교수를 찾아 서울대학에 들어섰다. 시야에 들어오는 대자보 앞에 다가갔다.
<심수관 선생 초청 강연회> 임진왜란 당시 남원에서 왜군의 인질로 끌려간 도공 심씨 일가의 14대 손으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바로 그 심수관의 강연이다. K교수는 뒤에 미루고 강연장에 들어섰다. 초만원에다 강연은 금방 시작된 모양이다. 강연을 들으면서 나의 머리는 내가 아는 심수관을 회상하고 있었다. 도공 심수관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다.
소년 심수관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몇일 후 점심시간, 상급생 4,5명이 교실에 들어와 교단에 올라서더니 살모사 같은 시선으로 신입생 병아리들을 꼬나본다. 선배는 바로 염라대황으로 통하던 일본 제국시대이다.
“이 반에 ‘조센진’ 있지. 손들어” 아무도 손들지 않는다. 무서운 침묵도 잠시 “다 알고 왔다.
빨리 손 들고 나와” 한 선배의 몽둥이가 교탁을 내리치면서 그 시선이 심수관의 눈알을 비집고 깊숙히 박힌다. 그 선배 뿐만 아니다. 모든 선배의 시선이 심수관에 집중되어 있지 않는가.
소년 심수관은 당황하였다. 지금 자기가 ‘조센진’으로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그날 방과후 심수관은 운동장으로 끌려가 ‘조센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몰매를 당하였다.
코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집 모퉁이 개울가에서 씻고 돌아서는데 아버지가 거기에 서 계신다. 마치 오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는 인상이다. 아버지는 그 길로 아들 심수관을 데리고 뒷동산에 올라 저 멀리 석양의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털어 놓았다.
370년 전 바다 건너 조선땅에 쳐들어간 왜군의 인질로 끌려온 심수관 1대로부터 13대에 이르는 심씨 일가의 족보, 그리고 일본 제일의 도자기 ‘사쓰마야기’를 일으킨 분이 바로 조선인 심수관 1대이고 내 아들 너는 조선인 심수관 제 14대라는 것을 다짐해 주었다.
아버지는 수평선 너머 한 지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들아, 저기가 바로 우리의 고향 조선땅 청송이다”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고향 ‘가고시아’에 돌아와 도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연단의 조선의 도공 심수관은 연설을 계속하고 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일제 36년이라는 말을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일제 370년이라고”
목이 메이는지 말을 잊지 못한다. 장내가 일순에 착 가라앉는다. 연단의 침묵에 청중도 침묵으로 대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청중의 중간에서 들려오는 소리 -노오란 셔츠 입은 말없는 저 사나이 어쩐지 맘에 들어 어쩐지 나는 좋아 - 노래소리는 썰물에 밀리는 파도와도 같이 전 강당으로 퍼져 나간다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저 사나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 연단의 조선의 도공 심수관은 두 손을 흔들며 차라리 펑펑 울고 있다.
아! 이 멋이여! 이 멋쟁이들의 광경이여! 그리고 열광이여! 일제 36년을 일제 370년으로 한풀이하고 그 한풀이를 ‘노란셔츠 입은 사나이’로 위로하는 이 우정으로 넘치는 한 마당! 나도 차라리 울어버리리라. 강당을 나오면서 나는 생각한다. 입으로는 일제 36년 하면서 몸으로 창씨개명한 당사자는 누구인가. 나는 다시는 36년 말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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