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의 방과후 시간이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초등학교 때는 나이도 어리고 학교생활의 첫걸음이라 부모와 자녀가 모두 학업과 생활에 정성을 쏟는다. 또 고등학교 때는 학생 본인 뿐 아니라 온 가족이 대학진학에 신경을 곤두세워 다른 데 눈 돌릴 틈이 없다. 그러나 그 중간시기인 중학교 시절, 미국 학교시스템에 익숙해져 부모들이 한숨 놓기 쉬운 이 때 자녀들은 자율적인 교육환경을 접하는 동시에 사춘기에 돌입하는 위태로운 시기를 맞게된다. 더구나 육체적으로는 훌쩍 컸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13세 이하 아동은 집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애프터스쿨에 가기도, 학원에 다니기도 어정쩡한 상태에서 길거리나 PC방을 배회하기 쉽다. 가정에도, 학교에도 특별한 대책없이 지나쳐버리는 방과후 중학생의 현황과 바람직한 대안에 대해 학생, 학부모 및 교육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중학생 현황
LA통합교육구에서는 6∼8학년을 중학교 과정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7∼8학년만을 중학교에 포함시키는 교육구들도 있다. 담임교사가 모든 수업을 도맡아 가르치던 초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는 각자 이수과목을 선택해서 자율적으로 교실을 찾아다니며 공부해야 한다. 전통수업제 중학교의 수업시간은 대체적으로 오전 8시∼오후 3시. 버싱통학이나 부모가 픽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집이 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도보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LA통합교육구의 대부분 학교에서는 방과후 1시간정도 도서관을 열어두고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남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는 만큼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담당 교직원들의 설명이다.
전교생의 25%가 한인인 잔 버로우즈 중학교의 경우, 전통수업제로 오전 7시56분에 수업을 시작해 오후 2시49분에 일제히 끝난다. 일주일에 4번은 방과후 4시30분까지 도서관을 개방, 원하는 학생에 한해 부족한 학과공부에 대한 개인지도(tutoring)를 교사들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하고있다. 또 6시까지 운동장을 개방해 농구 등을 할 수 있는 유스 서비스(youth service)도 시행하고 있지만 3시간 내내 학생 개인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다.
이번 달 첫 성적표가 나오면 독해와 수학성적이 저조한 학생에게 보충수업(intervention academic program)을 들으라는 권고문을 발송해 부모와 본인이 결정해서 원하는 학생에 한해 일주일에 3번씩 방과후 보충수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실태와 희망사항
타운의 중학교 8학년에 재학중인 헬렌 정양은 학교수업이 끝나면 약 30분 거리에 있는 집까지 친구들과 걸어간다. 방과후 한 친구와 함께 교대로 두 집을 번갈아 방문, 부모가 퇴근할 시간까지 함께 지낸다. 엄마들이 냉장고에 미리 준비해 둔 2인분 간식을 나눠 챙겨먹고 그 집에서 저녁까지 남아 숙제를 한 후 부모가 돌아 올 때까지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
7학년인 줄리 양양은 방과후 학원에 간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학교 파킹장으로 데리러 오는 학원차를 타고 가서 8시까지 숙제하고 학원차로 귀가한다. 양양은 이 때문에 초등학교부터 절친했던 친구와 함께 지낼 시간이 없어 서먹서먹해졌다며 "방과후 여러 친구들과 함께 자유롭게 모여서 숙제도 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램을 말했다.
8학년 필립 최 군은 "집 근처에 농구장이 있어서 숙제 빨리 끝내고 친구들과 농구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고 부모의 픽업을 기다리던 파킹랏에서 만난 대여섯명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7학년 남녀 학생들은 ‘방과후 가장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니 일제히 "PC방이요!"하고 소리쳤다. 이들은 모두 두 번 이상 친구와 PC방에 간 경험이 있으며 그중 부모가 알고 있는 경우는 한 명뿐이라고 답했다.
▲학부모의견
초등학교 5학년생의 학부모 정희숙씨(43)는 최근 들어 키가 훌쩍 커진 아들이 얼마전부터 "애프터스쿨은 어린아이들이나 다니는 데"라면서 다니기 싫어한다며 "직업을 가진 엄마로서 중학생이 되는 내년부터는 방과후 지도를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중학교 8학년 학부모 박영식(49)씨에 따르면 도보로 통학하는 아들은 친구들과 그룹으로 집에 돌아와 각 집에 돌아가며 모여서 숙제하고 TV도 보면서 방과후 시간을 보낸 후 7∼8시쯤 퇴근길에 데리러 온 부모들을 따라 귀가한다.
박씨는 "한참 에너지가 왕성한 나이의 아이들을 안전 때문에 집에 가둬 TV나 컴퓨터에 매달려 있게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며 "학과목 공부 보충 보다 좋아하는 컴퓨터나 기타 여러 놀이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시설이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6학년에 첫딸을 보내고 있는 차미영(41)씨는 "숙제가 없는 방과후 시간엔 인터넷에만 매달려 걱정"이라며 "초등학교 때는 한인학부모회 선후배 부모들과 많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중학교에도 곧 한인 학부모회가 생기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초등학교나 고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에는 한인밀집 학교들 중에서도 한인학부모회가 결성돼 있는 경우가 드물다. 포터중학교 학부모회 회원이며 LA한인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는 박교자씨에 따르면 LA한인학부모회는 지속적으로 시정부와 교육구를 대상으로 청소년을 위한 시설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예산문제로 난관에 봉착해 있는 실정이다.
박 회장은 "타운근교엔 방과후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은커녕 대형 나이트클럽이나 PC방, 게임방만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교회나 기관들도 안전문제 때문에 소속된 학생들에게만 개방하고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부모의 감독이 허술하고 시간이 많은 중학생 연령층 청소년들이 방과후 서너시간을 보낼 마땅한 장소가 없다"고 지적했다.
토랜스한인학부모회 김은실 부회장에 따르면 8∼9개 중학교가 모여 있는 토랜스 지역에도 한인학부모회가 결성돼 있는 중학교는 1∼2곳에 불과하다. 또 10개 소속학교중 중학교는 한군데 뿐인 밸리한인학부모회 유니스 최 회장은 "초·중·고교 학부모들중 중학교 학부모들의 열의가 제일 시들한 편"이라며 "가장 중요한 때인 만큼 각 중학교 학부모회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조언
전문가들은 중학교 학부모들에게 지금이 바로 자녀들을 예리한 눈으로 감시하고 매일의 생활을 점검하며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대하는 등 어느 때보다 각별히 신경써야 할 시기라고 강조한다.
’젊음의 집’ 김기웅 목사에 따르면 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많은 연령대가 7∼9학년. 눌렸던 욕구가 어떤 형태로든 분출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예방법으로 "놀아야 할 나이에 안전한 환경에서 충분히 놀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권한다. 특히 주말이나 방학 때는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미교육상담소’에서 초·중·고교생 카운슬링을 맡고 있는 LA고교 지경희 카운슬러는 "고등학교 때 표출되는 문제의 대부분은 중학교 때부터 장기적으로 누적돼 온 것들"이라며 "중학교 시절 방과후 서너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앞길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학생자신과 학부모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angk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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