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첫 캐주얼티는 진실이다’-. 병불염사(兵不厭詐)라고 했던가. 비슷한 말로 들린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간사한 꾀를 결코 꺼리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전쟁은 군사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고도의 정치력에 심리전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전쟁 상황에서는 그러므로 온갖 소문이 나돌게 마련이다. 막연한 공포가 유언비어의 근원지가 될 수 있다. 정치적 목적이 숨겨진 역정보가 흘려지고 그에 따라 고의성 소문이 나돌 수도 있다.
이런 정황에서 활개를 치는 게 각종 음모론(conspiracy theory)이다. 음모론은 상황을 드러난 그대로 보지않고 배후에 반드시 뭔가가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9.11 뉴욕과 워싱턴 테러참사 배후는 이스라엘이다." 테러전쟁과 관련해 일부 아랍 세계에 나도는 음모론이다. 한마디로 미국과 아랍 세계의 전쟁으로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이스라엘이 꾸민 음모가 이번 테러사건이라는 것이다.
나치 히틀러의 600만 유대인 학살을 ‘이스라엘 자작의 날조극’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랍의 정서다. 이런 분위기에서 테러참사를 이스라엘 음모로 몰아붙이는 터무니 없는 이 같은 유언비어도 일부에서 진실인 양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탄저균 공포에 떨고 있다. 플로리다에서 처음 탄저병자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일종의 모방범죄자의 소행으로 보는 게 보통의 생각이었다. 네바다주 리노의 마이크로소프트사, 뉴욕의 ABC방송과 NBC방송, 또 워싱턴 DC의 톰 대슐 연방상원 민주당 원내총무 사무실에도 탄저균이 담긴 우편물이 배달되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이번에는 탄저균 테러인가’ 하는 섬뜩한 공포와 함께 이 전대미문의 세균테러 세력에 대한 미국민의 분노가 새삼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 새삼 이목이 쏠리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인가, 탈레반인가,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가디언지는 묘한 보도를 했다. "탄저병 공포는 참으로 편리한 시기에 확산되고 있다. 워싱턴 매파들의 확전론이 점차 설 자리가 없어져 가는 때 언론인들은 박테리아가 가득 담긴 봉투를 받기 시작했다. 마치 이라크로부터 선물이라도 받은 양 말이다."
가디언지는 언론사, 의회 등 여론 지도층 역할을 하는 기관에만 집중적으로 탄저균이 담긴 우편물이 보내졌는데 이상하게도(?) 치명적 환자는 별로 발생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면서 ‘탄저균 테러’가 ‘여론의 변화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력’이 저지를 수도 있을 가능성을 은연중 암시한 것이다.
물론 이는 일부 극소수의 시각이다. 적어도 미국의 주류 언론은 이 같은 음모론적 시각에 서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탄저균 테러의 배후에 대해 확정적 입장을 보이지도 않았다.
톰 대슐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 사무실에 배달된 탄저균이 공중에서 살포됐을 경우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무기급 탄저균’으로 밝혀지면서 그러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동시에 탄저균 테러에 대한 주류 언론의 보도 방향이 달라지고 있다. ‘정제과정에 고도의 노하우가 요구되는 탄저균’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뒤따르면서 그 배후로 이라크가 자연스레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도들이 속출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체제는 지난 7월 4명의 정보장교를 아프가니스탄에 보냈다…이들은 생화학 무기 같은 물질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이들은 9월11일 이후 모두 사라졌다." CNN 방송, 월 스트릿 저널 등 주류언론들의 보도다.
과연 사담 후세인이 탄저균 테러의 배후인가. 얼마전까지도 그 가능성은 배제돼 왔다. 적어도 동반자살을 꾀하는 광신자는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걸프전 때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게 그 증거로 그럴 경우 미국의 보복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절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반대의 논리도 성립된다. 용도를 모르고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에 탄저균을 팔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그 이유의 하나다. 그 보다는 미국에 ‘탄저균 테러’를 통해 생화학전의 공포를 맛보게 함으로써 미국의 이라크 공격 의도를 사전에 꺽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주장이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모른다. 탄저균 테러공포가 확산되고 그 배후가 사담 후세인이냐 아니냐 논란이 거듭되면서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한가지에 대한 컨센서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테러전쟁의 제 1타겟은 오사마 빈 라덴 제거와 탈레반 정권이고 그 다음 타겟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되어야 한다는 데 대한 합의다.
참으로 기묘한 방법으로 ‘확전의 기정사실화 작업’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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