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침체에 들어섰는가, 침체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것은 초미의 관심사다. 미국이 주도한 인터넷 혁명은 걸프 전쟁 이후 10년간 미국에 유례 없는 호황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의 자본이 미국에 몰려들었고 증시는 춤을 추었다.
어느덧 증시는 폭락하고 연준은 지난 9개월간 사상 최단기, 최대폭의 금리 인하를 단행했지만 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지난 9월11일의 테러사건은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가뜩이나 불안한 미국 경제에 찬 물을 끼얹었다. 미국 경기가 호황에서 침체로 돌아선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침체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생산을 보자. 1995~99년 기간 미국 경제의 90%에 해당하는 분야에서 실질 생산성 증가율이 떨어졌으나 미국의 호황을 지탱한 것은 정보기술 산업이었다. 예컨대 1999년 미국의 국내 총생산에서 정보기술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 정도였으나 실질 경제성장에서 차지하는 기여도는 32%를 기록했다.
이러한 정보기술이 가져온 생산성 향상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빛이 바래지고 있다. 인터넷이 가장 새로울 때 인터넷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도 가장 크다. 그러나 모든 신발명이 그러하듯 인터넷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때는 필연적으로 오는데 새로움을 잃어버리면 혁명의 역할은 끝이 난다. 증시의 거품은 언젠가 꺼질 운명이었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의 또 다른 원인은 기술 확산의 속도와 관련된 경기순환이다. 컴퓨터를 비롯한 산업 기술은 세계화의 조류에서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되고, 그 결과 한 지역이 독보적으로 호황이나 침체를 겪기보다는 세계 경제는 동반 호황, 혹은 동반 침체를 겪으며 점진적으로 평등화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
이것은 2차대전 이전의 제국주의 시절과는 다른 양상이다. 1500~1750년의 세계 부는 국가간에 평등하게 분배되어 이 기간의 세계 부의 최대 편차는 1~2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제국주의 시절에는 기술의 확산은 의도적으로 방해되고 부는 구미와 일본 등 소수 제국주의 열강에 집중되었다. 2차대전 후 공식적인 제국주의의 종말과 식민지 해방과 함께 제3세계의 상대적 부는 증가하고 세계의 부는 다시 평등화하는 추세에 있다.
21세기에는 이전의 제국주의 세력이었던 구미와 일본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축소하고 동아 신흥공업국과 중국을 위시한 제3세계는 상대적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21세기 초반의 미국 경제는 수퍼파워에서보다 평등한 경제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기 침체는 테러에 의해 악화되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테러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경제구조 자체가 튼튼해 금리인하의 약발과 함께 미국 경제가 머지않아 회생할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펀더멘털의 약화와 테러라는 정치적 악재가 겹쳐 미 경제는 상당기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 유력하다.
사상 최대로 불어난 미국의 무역적자는 호황의 기간에 이미 위험수위인 국내 총생산의 4%를 넘어서서 경제 전반에 암운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무역 적자와 대외 채무였고 신용등급의 하락과 함께 원화가치가 급락하여 한국의 달러가치 국내 총생산은 위기 전에 비해 30% 이상 떨어졌다.
현재의 미국의 무역적자와 대외 채무 상황은 금융위기 당시의 한국보다 나을 것이 없다. 미국이 한국처럼 금융위기로 가지 않는 것은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역할과 미국의 정치력 덕택이지만 그 대가는 향후의 저성장으로 치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무역 적자와 경기 침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달러가치는 하락하고 미국으로 몰려든 세계의 자본은 장기적으로 결국 빠져나갈 것이다. 금리 인하의 결과로 미국은 인플레를 걱정해야 하며 인플레와 경기 침체가 함께 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저성장이 지속되는 기간은 과거 10년간의 호황에 상대적으로 향후 10년 가량일 것으로 본다.
곧 이 기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3%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큰 동아시아의 경제는 미국의 침체에 따라 동반 침체를 당분간 겪을 것이지만 동아시아는 미국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될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들은 21세기 초반에 진행될 세계적 부의 재분배, 곧 부의 평등화의 일부분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