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 백재욱 <리맥스 100 부동산 대표>
우연일까, 위급신고 전화번호 911과 같은 9월11일의 참사는?
새벽에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는 다급함과 불길함이 있다. "엄마, 엄마, 나한테 전화 좀 걸어줘요" 딸아이의 울음섞인 목소리는 거기서 끊어져 버렸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전화를 거는데 계속 "All circuits are busy"라는 안내말만 들린다.
이번 1년 동안을 파리의 솔본느대학에서 보내기로 하고 떠난 지 이제 3주 남짓.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가까스로 통화를 할 때까지 천년은 걸린 듯 하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어 세상 모른 채 자고 있던 내게, 아이는 뉴욕과 워싱턴의 소식을 전하며 해외에 나가있는 미국인들이 테러범들의 2차 목표가 되면 어쩌냐고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학교에서도 길에 나갔을 때 가능하면 영어를 쓰지 말고 다른 외국어를 할 수 있으면 그 나라말을 하라고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CNN 채널을 볼 수 있는 친구네 집으로 여나믄명이 지금 몰려가고 있는데 전부들 미국에서 함께 간 학생들이라서 영어 불어를 계속 섞어 쓰고 있단다. 만약에 긴급소개령이 떨어져 귀국해야되면 그 상황도 무섭고, 그 비행기가 안전하게 미국 땅을 밟을 때까지의 불안감이며 혹시라도 전쟁상태가 되면 남의 나라에서 완전히 국제고아가 되는 건 아닐까, 딸애의 상상은 온통 나쁜 쪽으로만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 과연 부모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인가. 나는 미국의 강력함과, 3차대전까지 가지 않으려는 세계의 평화의지등을 설명해주다가 갑자기 부질없는 생각이 들어, 파리에 있는 몇몇 친구 전화번호를 주고 성경구절을 읽어주었다. 아이와 내가 얼마나 질긴 끈으로 묶여 있으며, 그보다 더 큰 손길 아래 딸애가 오늘까지 가호를 받아왔는지를 얘기하며 기도하자는 것으로 통화를 마쳤다. "사랑한다, 봄내야" "잘 지내, 엄마도"
TV는 하루종일 참사 소식을 보도하고, 눈길은 화면에 실로 꿰매어 놓기라도 한 듯 떨어지지가 않는다. 집을 팔려고 내놓은 손님은 집이 안 팔리면 어쩌나 전화를 하고, 집을 사려고 했던 바이어들은 에스크로를 깨야하는건 아니냐고 문의를 한다. 그런 중에도 내일 집 볼 약속, 주말 집구경 예약은 계속 들어온다.
뉴욕의 어떤 손님은 애 친구들중에 공부 잘 했던 일류대학 졸업생들이 거의 무역센터에서 일하고 있다가 참변을 당했다며, 공부 못 한다고 구박했던게 미안하고 자식이란 그저 살아만 있어주면 효도라고 안도의 숨을 쉬는 통화도 있었다. 워싱턴 DC의 한 친구는 출장간 남편을 사소한 일로 언짢게 떠나보냈던 것을 후회했다.
피납된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통화했던 모든 이들의 전화는 "good bye, I love you"로 끝났다. TV에 나온 한 프로야구선수는 시합이 취소돼 어떤 계획이 있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야구가 내 인생에 중요하지만 가족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며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마이크 앞을 떠난다.
그렇다. 부동산경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것은 정말 대답을 할 수 없다. 내 소관으로 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 많으니까.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노력해서 나아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뒤로 미루지는 말자고 결심한다.
누구와 화해할 일은 없는지, 용서를 청할 사람은 없는지, 사랑한다고 마음은 있었으면서 정작 더 많은 시간은 다른 곳에 흘리고 다니느라 돌보지 않았던 것은 없었는지.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한 감사는 잊어버리고 하찮고 지엽적인 일에 불평하고 원망했던 건 없는지.
가장 마지막 순간이 됐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얼마나 짧고 단순한 것인가. 헌혈을 자원하는 행렬이 다섯시간씩 기다리고 서 있다고 뉴스는 전한다. 남편이 일하고 있는 참사현장을 찾아온 한 소방대원의 아내가 남편을 굳게, 굳게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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