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처럼 화씨 10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는 캐나다의 인디안 영토, 누나부트(Nunabut)에 다녀옴이 어떠할까? 대륙의 북 끝, 얼음벌판에 얼음집(Igloo)을 짓고 사는 에스키모인들을 만나본다면 흐리고 지친 정신이 번쩍 들지 않겠는가?
빙산이 녹아내린 지가 수천년이 지났는데도 바로 엊그제 쓸어내린 양 온 세상이 황량하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돌과 바위 뿐이다. 그래도 지금은 여름이라고 돌이끼가 자라 산들이, 겨울의 흰 눈빛 대신 검게 보인다. 희끗한 구름이 항상 산허리를 휘감고 있고 냉한 바람만 불어칠 뿐 꽃, 나무는 커녕 새소리 하나 안 들린다. 이런 땅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에스키모인들이다.
캐나다에는 4만명 정도이고 캐나다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북극에 접한 방대한 땅에 드문드문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지난 수천년 동안 고래, 물개, 순록, Char(일종의 샐몬) 등을 사냥하여 살아왔다. 즉 짐승의 고기는 식량이고 그 가죽은 의복이 되는 그런 삶이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 ‘에스키모=생고기를 먹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스스로를 ‘Inuit-이누이트’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에게 18세기, 기독교 선교자들, 광산업자들, 고래사냥자들을 선두로 서구의 식민지풍이 불어닥쳤으니 그 혼돈이 얼마나 심각했겠는가.
그래도 캐나다 인디안들은 거의 멸종 도태당한 미국의 인디안들과는 달리, 내가 다녀온 누나부트만 해도 오랜 법정투쟁에 성공, 1984년에는 정부의 승인과 보상이 결정나서 자치정부도 세웠고 국회의원도 선출해 낸다. 그러므로 이곳 수도 이괄위트(Iqailuit)에 세운 새 의사당은 아주 특이롭게도 동물의 뼈, 가죽, 돌 등으로 정성스레 장식했고 그네들의 자긍심이 깊이 스며 있었다.
하지만 서구인들의 대량 사냥으로 한 번 사라진 고래나 물개가 아직도 되돌아 오지 않은데다가, 1995년에는 동물애호가들의 수다로 85%의 수출국인 미국이 일체의 모피 수입을 금지하자 유일한 자립의 생계수단을 잃어버렸다.
장년층 인디안들은 갑자기 무직자가 되자 알콜중독자로 퇴락하고 장래가 없는 청소년들은 범죄자가 되는가 하면 자살까지 해 버렸다. 자살률이 예년보다 10배나 높아졌다니 이들이 겪는 갈등과 고통을 가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무용지물이 되어지는 자기네의 문화, 역사 위에 덮쳐오는 서방문화의 압력은 이들을 불행, 절망, 포기에 이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누이트’ 언어는 이제 잊혀져 가서 어린이들은 부모들이 못 알아듣는 ‘영어’를 쓰고 있었다.
나는 문득 피부 색깔이 검고 쭈글거리고 힘없이 미소짓는 이들의 동양적 얼굴에서 형제같은 친밀감과 동시에 그들과 같은 ‘비애’를 느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아, 가엾은 우리 한국. 아직껏 둘로 갈라진 채 하필이면 이 지구상 가장 강한 나라들 사이에 끼어 힘겨웁게 살아가는 나라. 나는 그 한국에서 온 미국이민. 아무리 열심히 ‘영어 흉내’를 내봐도 항상 찜찜한 우리들의 마음...
도대체 언어를 바꾼다는 것이 개인과 민족에게 얼마 만큼을 의미하는가?
그러다가 나는 홀연히 두 눈이 번쩍 뜨이는 기막힌 것들을 보게 되었다. 다름 아닌, 뼈와 돌을 쪼아 만든 조각품들이다.
50년 전 처음으로 인디안 미술을 서방에 소개, 발전시킨 Mr. J. Houston이 처음 느꼈다던 감동이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평범하기만한 인디안들에게 숨겨진 천부의 소질이 있었던가? 이런 돌이나 뼈같은 원초적 소재로(다른 소재는 있지도 않지만) 빚어내는 해학적인 형태나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깊은 감동이었고, ‘나’와 같은 소수민족에게는 하나의 예시라고 생각되었다.
거기에 사라져가는 스스로의 모습, 즉 역사와 전설이 재현되고 있었고, 그들의 저력, 끈기, 살아남기 위한 투쟁, 창조력이 투사되고 있었다.
벌써 이 지방 인디안들에게 조각, 스텐실, 프린트업은 중대한 생계수단이자 희망이었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 자체의 갤러리들을 운영, 조합 형식으로 생산, 판매를 관할한다. 이미 오타와 국립박물관에는 장엄한 ‘인디안 홀’이 당당히 자리잡고 서방예술 마저 다양하고 풍요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조합의 눈을 피해 애 업은 여인네나 술취한 남정네가 내 눈앞에 내민 북극곰, 돌무데기들을 사들고 보니 돌아오는 내 짐이 무겁다.
집에 가면 First Nation People 인디안들의 귀중품을 의미심장하게 다시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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