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학자가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다가 들통이 났다. 월남전 참전 경력도 없는데 참전자라고 속이고 전쟁의 참상을 진보적 시각에서 강의하다가 발각된 것이다. 유명 언론인이 사실을 날조해 칼럼을 써온 사실이 폭로됐다. 베테런 기자가 ‘사실에 입각한 기사가 아닌 소설’을 쓰다가 들켜 해고됐다.
한국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저명 학자는 퓰리처상을 받은 역사가 조셉 엘리스다. 유명 언론인은 보스턴 글로브지의 칼럼니스트인 패트리셔 스미스다. 가공의 인물을 실제 인물인 양 날조해 쓴 칼럼으로 그녀는 한 때 퓰리처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조지 워싱턴은 아버지가 아끼던 벚나무를 도끼로 찍었다. 귀가해 벚나무가 훼손된 것을 본 아버지는 몹씨 화가 나 누구 짓이냐고 물었다. 거짓말 하기가 싫은 워싱턴은 자신이 했노라고 정직하게 말했다…" 메이슨 록 윔스(1759∼1825)가 쓴 워싱턴 전기에 나오는 유명한 에피소드다. 이 일화는 그러나 완전 창작이다. 워싱턴의 정직성을 부각시키려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윔스는 픽션으로 꾸며 넣었고 오랜 세월동안 사실인 양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왜 거짓말을 하는가’-. 미국 사회의 최신 화두다. 이 같은 화두가 던져지게 된 근본의 원인은 중증의 거짓말 중독증세를 보이고 있는 정치계에서 우선 찾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선거는 돈이 말해주는 선거가 된지 오래다. 정치적 수사라는 것은 사실에 있어 거짓말에 불과한 궤변이기 일쑤다. 클린턴시대 이후 부쩍 심해진 증세다. 그 거짓말 중독 증세가 이제는 정치계를 벗어나 언론, 학계 등에도 번지자 자성의 분위기에서 ‘거짓말을 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인드’에 대해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거짓말을 몇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충동적 거짓말, 무의식적 거짓말 그리고 면밀히 계획된 고의성 거짓말이다. 거짓말의 동기도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 가장 원초적인 거짓말은 처벌이 무서워서 하는 거짓말이다. 또 어떤 목적을 합법적으로는 이룰 수 없을 때에도 거짓말을 한다. 많은 경우 탐욕 역시 거짓말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리화나를 피기만 했을뿐) 결코 빨아들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 여자와 성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클린턴이 남긴 유명한 어록이다. 이 거짓말의 동기는 ‘뻔한 편’이다. 개인 신상에 관한 일이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좋을 게 없어서 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충동적이고, 처벌이 두려워 나온 거짓말이다. 앨 고어의 거짓말은 이와 비교하면 무의식적 거짓말에 속한다. 그냥 가만이 있었으면 될 일을 고어는 무의식적인 거짓말을 섞어 과장해 말하다가 백악관행 티켓을 놓쳤다.
가장 중증의 증세는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을 진실로 확신하게 되는 경우다. 이 유형의 거짓말을 프랭크 팔리 같은 심리학자는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기억은 서류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식인 정적 시스템으로 되어 있지 않다. 다이내믹한 시스템으로 돼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 기억에도 변화가 생기고 그 결과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을 진실로 믿게 되는 수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의 관심은 그러나 거짓말의 동기보다는 만연된 거짓말 중독증세가 가져올 결과에 더 쏠려있다. 거짓말, 특히 사회 지도층에 거짓말이 만연할 경우 그 피해는 너무나 엄청나서다. 쉽게 이야기해 힘께나 쓰는 사람들이 늘상 거짓말을 하는 경우 그 사회는 거짓말 둔감증에 빠져들고 결과적으로 생기는 피해는 극도로 파괴적 일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가는 이렇게 단언을 하고 있다. "공인이나, 공적 기관이 거짓말을 할 때 국가 사회는 피폐케된다. 일종의 도덕적 영적 진공상태를 가져와 누구든지 거짓말에 사기를 쳐도 좋다는 분위기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신문의 싸움이 ‘막보기 식’이 되어가고 있다. ‘놈’자 정도의 욕설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온갖 저질의 쌍소리가 난무해서다. 이와 함께 전선은 날로 확대되면서 싸움의 양상도 한층 복잡해지고 있는 형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누가 더 교묘히 거짓말을 잘하는가의 싸움으로 비쳐져서다. 그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할 일 같다. 문제는 엄청나게 쏟아져 쌓인 거짓 말에, 막 소리들이다. 앞으로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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