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서쪽지역 부촌에 사는 한 독자가 신문사로 편지를 보내왔다. 동네 애완동물 미용실에 갔다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동물보호단체 팸플릿을 보고 흥분해서 보낸 편지였다.
“한국사람이라는 사실이 이때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었습니다.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한국인만은 아닌데 왜 이리 집중적인 매도를 당해야 하는지요? …”
차례를 기다리다 무료해서 “관광안내 책자려니” 하며 무심히 팸플릿을 집어들었는데, 표지를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쌓여있던 팸플릿을 몽땅 집으로 들고와 쓰레기통에 버리고 몇부를 신문사로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보호단체가 도네이션 많이 하는 부촌들을 타겟으로 대대적으로 뿌린 것 같다”는 추측을 하며 그 독자가 동봉한 팸플릿은 보신탕 문화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도 끔찍했다. 우선 표지 사진 - 한 남자가 개의 목에 묶은 굵은 밧줄을 잡아끌고 개는 안끌려가려고 버텨 밧줄의 팽팽한 긴장이 섬뜩한 천연색 사진이다. 사진 윗부분에는 흰글자로‘MAN’S BEST FRIEND’, 아랫부분에는 핏빛으로‘BETRAYED’라고 크게 쓰여있고, 뒷모습으로 잡힌 남자와 개 주위로 한글간판들이 보이는 사진에는‘South Korean market’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팸플릿을 펼치면, 안끌려가려고 버티던 그 개의 운명을 보여주는 듯한 화보가 ‘The fate … of the innocent’라는 제목과 함께 이어진다. 쇠창살 우리 속에 빽빽이 갇힌 누렁이들, 체념한 듯 가련한 표정이 클로즈업된 창살 속의 개, 그리고 도살돼 줄줄이 엮여있는 개들, 시장 좌판대에 쌓인 개고기 더미 …
“내려다보니 (도살해서)사지를 입에다 쑤셔박은 개 머리였다. 사지는 껍질이 벗겨있었다. 둘러보니 사방에 개들이 우리 속에 갇혀있고 냄새는 지독했다. 무더운 8월의 그 시장은 내가 상상하던 지옥 바로 그것이었다”고 대구의 개 시장을 가본 한 미국인 교사의 증언이 화보 옆에 인용돼 있다. 페이지를 넘기면 한국에서 매년 200만마리의 개가 도살되고, 그 개들의 30%는 훔친 개들이며 … 이어지고, 맨 마지막에는 개 도살반대 편지를 한국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내라며 ‘경기도 과천시 제2 정부청사 …’주소와 장관이름이 명기돼있다.
동물권익에 대한 관심이 유난스런 이 시대에 한민족으로, 특히 미국의 한인으로 살면서 해결보기 어려운 과제가 ‘보신탕’이다. ‘고유 음식문화’를 내세우며 보신탕 옹호론을 펴자니 외부의 눈길이 따갑고, ‘동물학대’라며 반대입장을 택하자니 그것도 마음 편치는 않다. 애완견은 애완견대로 아끼면서, 보신탕은 보신탕대로 즐기는 사람들을 한국사람이라면 대개 몇명씩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개 고기 당당히 먹자’는 골수 옹호론자들도 몇해전 브리지트 바르도 동물보호단체 웹사이트에 개도살 사진이 실리자 ‘한국 이미지 실추’라며 흥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민족이 개를 먹은 역사는 길다. 선사시대부터 소, 돼지, 양, 닭등과 함께 개를 육축으로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보신탕을 먹든 안먹든 우리는 개에 대해‘육용’과 ‘애완용’, 두 시각의 공존이 가능하다. 반면 서양사람들에게 개는 ‘애완용’이란 한가지 시각밖에 없으니 ‘보신탕’을‘야만적’‘비인도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사시미가 처음 미국에 소개되었을 때 미국인들의 반발은 대단했다고 한다. 눈을 껌벅이며 살아있는 생선을 도마에 놓고 편을 뜨는 것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잔인한 광경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지금 미국인들은 일본 것이라면 끔뻑 죽는다. 사시미는 물론, 투실투실한 살을 출렁이는 징그러운 수모도 이국적 ‘고유문화’라며 받아들인다. 해답은 ‘가라데 킷’류의 영화라고 본다. 일본은 60년대부터 영화, 예술을 총동원해 문화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 결실로 얻은 것이 미국인들의 열린 의식이다.
개고기도 소나 돼지와 마찬가지로 ‘육용’이라는 인식만 있다면 ‘보신탕’이 동물학대일수는 없다. 문제는 ‘개도 육용’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애완용’시각이 세계적으로 너무 팽배해 있다. 한국도 일본처럼 강력한 문화이미지를 만들어 그 추세로 보신탕도 사시미 같은 지위를 얻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애완용’대세에 순응할 것인지 이제는 방향을 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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