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케네디, 닉슨, 부시…’ 이 이름들이 지닌 공통점은 무엇일까. 전후 역대 미대통령. 맞는 답이다. 또 있다. 2차대전 참전 용사들이다. 이들은 또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돼 불리기도 했다. ‘WASP 전사’다. 이제 ‘WASP 전사’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냉전시대 냄새가 나서다. 거기다가 ‘백인에, 앵글로색슨에, 종교적으로는 개신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들의 머리글자로 된 이 단어는 자칫 백인우월주의의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년 전쯤부터인가. 한 흐름이 형성돼 왔다. ‘WASP 전사’ 숭배 분위기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라는 영화가 그 시작 같다. 곧 이어 유명 앵커맨 톰 브로커가 ‘가장 위대한 세대’(The Greatest Generation)라는 책을 펴냈다. 이 영화의 주제가 된 세대나, ‘가장 위대한 세대’의 주제가 된 세대는 모두 같은 세대다. 다름 아닌 바로 ‘WASP 전사들’로 대표되는 세대다. 이후 ‘WASP 전사’들에 대한 헌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2차대전 참전 용사를 기리는 거대한 기념비 건립안이 초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얼마전 개봉된 영화 ‘진주만’(Pearl Harbor)이 벌써부터 여러 부문에서 기록을 깨고 있다. 이 현상들은 바로 그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세대’는 어느 세대일까. 가장 어려운 도전을 극복해낸 세대,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연 세대라는 정의가 맞을 것 같다. 조셉 엘리스 같은 역사학자는 건국시기의 세대를 그 세대로 꼽는다. 사상 최초의 민주 공화정 미합중국이 탄생한 시기이고 또 그 때 갖추어진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두 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민주정치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조지 워싱턴 등으로 대표되는 건국 아버지 세대를 ‘가장 위대한 세대’로 추켜세운다.
’대공황-2차대전-미국 중심의 새 국제질서 확립’ 등으로 이어지는 시대, 다시 말해 1930년대와 40년대 그리고 50년대로 이어지는 시대의 주역을 맡았던 세대도 분명히 그에 못지 않은 ‘위대한 세대’다. 이들은 대공황과 세계대전이라는 시련을 이겨내고 결국은 ‘미국의 세기’를 열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정치의 세기’다. 진정한 의미의 20세기는 1917년에 시작돼 1991년에 끝나는 것으로 대다수 학자들은 본다. 이 75년의 기간은 줄곧 한 스토리로 이어지다가 대단원의 막이 내려져서다. ‘자유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이 바로 그 일관된 스토리다. 때문에 20세기를 ‘정치의 세기’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한 세기에 걸친 두 차례의 대전쟁, 파시스트 전체주의와의 전쟁(2차 세계대전)과 공산 전체주의와의 전쟁(전후 소련과의 냉전)이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나면서 사실상의 20세기는 막을 내린 것이다.
그 승리는 미국의 승리였다. 그리고 그 승리의 전위 역할을 맡은 게 프랭클린 루즈벨트, 해리 트루먼, 또 전후에는 아이젠하워에서 레이건 등으로 이어지는 ‘WASP 전사’들이다. 이 ‘WAS.P 전사’들의 프라이드는 그 자신이 2차대전 상이용사이기도 한 밥 도울 상원의원이 얼마전 의회에서 한 연설에 잘 응축돼 있다. "우리 세대는 세계를 구했다."
톰 브로커의 ‘가장 위대한 세대’는 바로 이들에 대한 헌사다. 귀족의 책무(noblesse oblige)에 충실했던 미국의 지도층,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실명을 하는 부상을 입고도 굴하지 않고 기업인으로 성공한 베테런 등 이들 전 세대의 피와 눈물과 또 불굴의 용기와 헌신이 깊은 감동으로 전해지면서 ‘가장 위대한 세대’는 계속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 헌사는 할리웃 영화로, 거대한 2차대전 참전용사 기념비 제작으로, 또 새삼스러운 애국심 고취 캠페인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사회가 ‘WASP 전사’들에게 보내는 헌사에는 일종의 미국적 쇼비니즘이 묻어 있기도 하다. 미국 지상주의의 과시다. 그러나 그 갈채에는 ‘위대한 미국’을 있게 한 전 세대의 용기와 헌신에 대한 후배 세대의 존경과 깊은 감사가 배어있다.
미국 역사를 공부하자고 ‘위대한 세대론’을 이처럼 늘어놓은 건 아니다. 한마디로 부러움 같은 게 새삼 느껴져서다. 그리고 ‘6.6’ ‘6.10’ ‘6.15’ ‘6.25’ 등-어딘지 고통, 체념, 피, 눈물, 죽음… 이런 상념들을 떠올리게 하는 ‘숫자로 표시된 날들’이 특히 더 많은 게 6월이어서 그런지 더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된다. "한국에는 과연 ‘위대한 세대’로 불릴 세대가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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