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과연 몇 퍼센트 독립국인가’- 웬 뚱단지 같은 소리냐고. 다국적 기업의 시대요, 인터넷 시대에 완전 자급자족이 가능한 ‘순도 백퍼센트의 독립국가’ 운운한다는 게 애당초 무리가 아니냐는 질책이 따를 수도 있어서다. 그런 의미로 말하는게 아니다. 6.15 남북정상회담이 열린지 1년. 그때와 오늘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서 하는 말이다.
남북정상이 만나던 그 순간 한국인들은 감격했다. 평화에의, 통일에의 기대가 한껏 높아져서다. 그리고 나서 1년의 세월. 그런데 희망은 점차 실망으로 바뀌었다. 뭐 된 일이 없어서다. 외양상 빠른 속도로 진전돼가는 것 같던 남북관계에 급제동이 걸린 건 지난 3월 김대중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때다. 부시 미대통령이 DJ의 햇볕정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서다. 남북관계는 오히려 뒷걸음을 쳤다. 그리고 온다던 김정일의 소식도 감감해 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지 엄혹한 사실만 새삼 부각됐다. 7,000만이 감격한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 한반도 평화정착의 열쇠는 결국 미국이 쥐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같이 1년 사이 희망에서 실망으로 변한 배경을 부시행정부 탄생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미국식으로 표현해 ‘예스’(yes)인 동시에 ‘노’(no)라는 대답이 적합 할 것 같다. 단선적 해석만은 곤란하다는 생각에서다. 강성기류의 공화당 행정부가 탄생했으니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변하고 있는 미국의 해외정책 흐름을 DJ 정부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탓이라는 해석이다.
"냉전이 끝난지 10년 오늘의 국제 정치는 힘의 균형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기 1년전 ‘포린 어페어’지에 게재된 어빙 크리스톨의 글이다. 그는 미국의 신보수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앞으로 미국의 해외정책은 유엔이나 다국적연합 형태로 국제분쟁에 개입하는 다자주의(multilateralism)에서 단독주의(unilateralism)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포했다.
부시 행정부 해외정책팀은 바로 단독주의를 지향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이다. 다자주의 지향의 클린턴 해외정책은 따라서 새 행정부 출범과 함께 일단 모두 백지로 돌리게 된 것이다. 단독주의에 입각한 부시 행정부의 해외정책 노선을 보수파 논객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부시 독트린’으로 명명하고 그 논리를 더 한층 발전시켰다. 이들의 논리는 이런 식이다. 양극체제나 다극체제에 비해 ‘높은 도덕성으로 뒷받침이 돼 있는 미국 단독의 패권주의 체제’에서 세계평화는 더 잘 지켜진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미소 양극체제가 무너진 마당에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은 러시아와 같은 핵강대국이 아니라 북한 같은 불량국가의 미사일 테러로 이에 대비하는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이야 말로 시급하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21세기의 우주공간’을 ‘20세기의 바다’와 비교, 바다를 장악한 세력이 수퍼 파워로 도약한 것 처럼 미국은 우주군 창설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그들의 안중에는 사실에 있어 북한 같은 ‘불량국가’는 대화의 대상이 아니다. 그동안 당근은 충분히 주었으므로 이제는 채찍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논리로 새로 전략을 구상하는 마당에 DJ는 부시를 설득하러 갔다가 혹만 붙이고 돌아온 셈이 됐다. 이들의 강대국 논리가 옳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DJ의 부시 행정부 접근 방법과 타이밍에 문제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지적이다. 상대는 질적인 변화에 따른 수읽기를 하고 있는 마당에 단선적 변화만 보는 수읽기로 설득하려다가 역효과만 낸 것이다.
그 후의 상황은 다 아는 바다. 햇볕정책은 좌초상황을 맞게됐고 국민정부는 안팍의 정치적 악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제 와서 새삼 제기되는 의문은 미 해외 정책변화의 흐름에 DJ정부는 과연 그렇게 어두웠을까 하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일종의 오만이, 또 과욕이 수읽기에 착오를 불러오지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스라엘, 대만 같은 나라들의 해외정책은 숙명적으로 정해져 있다. 국가로서의 존속에만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열강도 국제정치의 파워와 지정학적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크라우트해머의 지적이다. 오직 미국만이 이 제약에서 벗어난다는 주장이다. 오만한 강대국 논리다. 그러나 현실 정치의 근간은 파워다.
’노벨 평화상수상과 관련해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상찬 때문에 한국이 처한 분단의 현실과 지정학적 제약을 깜빡했다. 거기다가 정권 재창출이라는 정권욕 때문에 오버페이스를 하게 됐다. 그 결과 결국 자충의 수순을 밟게 됐다’ 6.15선언 1주년과 관련해 떠오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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