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특급’ 박찬호(27)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한 것이 벌써 7년 전. 1994년 4월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 경기에서 구원투수로 처음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으며 한국 야구사에 새 지평을 열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그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스타급 투수로 성장했다.
박찬호가 메이저 진출이라는 오랜 숙원의 물꼬를 튼 후 한국선수들의 미국무대 진출 현상이 1997년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총 20여명에 육박하는 한국선수들이 ‘제2의 박찬호’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한국선수들의 메이저리그 도전러시였다. 하지만 ‘코리안 ML 인베이전(Invasion)’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상당수는 몇 년 뒤 조용히 귀국 보따리를 쌌다.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미국에 진출한다고 스포츠 신문에 대서특필된 후 감감무소식인 경우도 있었다. 잠깐이라도 메이저리그 물을 먹어본 한인선수는 4명. 하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의 조진호와 이상훈은 잠깐씩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을 뿐 곧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고 풀타임 선수는 아직 박찬호와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둘뿐이다.
그렇다면 한인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러시는 실패인가. 물론 아니다. 제2차 웨이브가 밀려오고 있다. 한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를 꿈꾸는 최희섭(시카고 컵스)과 투수왕국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좌완에이스 탐 글래빈의 후계자로 키우고 있는 봉중근, 그리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미래 송승준 트리오가 뉴 웨이브의 중심을 이루는 예비스타들. 그중 최희섭은 이미 메이저리그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구단이 일찌감치 가능성을 파악, 어린 나이에 스카웃한 뒤 장기적인 안목으로 마이너리그 최하 레벨부터 차근차근 수업을 받게 하고 있다는 점. 박찬호나 김병현에 비하면 메이저리그 진입에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지만 한번 올라오면 그들 못지 않게 장기간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선수들이다. 2000년대 새로운 ‘코리안 돌풍’을 노리는 내일의 유망주 삼총사를 집중 조명해 본다.
◎최희섭지난 1999년 3월 계약금 120만달러를 받고 컵스와 계약한 최희섭(22)은 조만간 첫 한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가 될 것이 확실한 특급 유망주다. 동양인으론 좀처럼 보기 힘든 6피트5인치, 235파운드의 우람한 체격, 하지만 100m를 12초대에 주파하는 뛰어난 스피드와 민첩성, 그리고 놀랍도록 유연한 신체조건은 그가 천부적으로 수퍼스타의 재질을 타고났음을 예감케 한다. 이미 컵스는 그를 지난해까지 13년간 1루 터주대감으로 활약했던 마크 그레이스의 후계자로 확실하게 점찍은 상태. 빠르면 올해 9월, 늦어도 내년 시즌 중반에는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것이 확실시된다.
좌타자인 최희섭의 강점은 물론 거구에서 뿜어 나오는 엄청난 파워와 파워히터로서 보기 드물게 날카롭고 콤팩트한 스윙이다. 홈런타자들은 대개 스윙의 아치가 커 삼진이 많은 것이 보통. 하지만 최희섭의 경우는 스윙아치가 크지 않고 짧게 끊어 치는 스타일이면서도 스윙에 상당한 파워가 실려 있다. 뛰어난 선구안과 함께 타구 방향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펜스를 넘길 수 있는 파워는 그의 최대 장점으로 스타로서 밝은 미래를 보장하고 있다.
또 한가지 최희섭의 대성을 점치게 하는 것은 그가 열정을 갖고 항상 기량
향상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파라는 점이다. 99년 초 미국에 온 뒤 ‘성공하기 전에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지금껏 오프시즌에도 미국에 머물며 훈련과 미국생활 적응에만 전념해 온 것에서 그의 집념 어린 각오를 읽을 수 있다.
올해 스프링 트레이닝 시범경기 개막전에서 대타로 나선 첫 타석에서 엄청난 장외 스리런홈런을 터뜨려 깊은 인상을 남긴 최희섭. 그는 현재 컵스의 트리플A팀인 아이오와 컵스에서 뛰고 있다. 트리플A 첫 11타석에서 무안타에 그치는 부진한 출발을 보였고 최근 손목부상으로 한동안 결장하는 등 다소 시련을 겪었으나 이는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슬러거를 꿈꾸는 최희섭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성장의 아픔일 뿐이다. 최희섭이 시카고 리글리필드에 데뷔하는 날 한국의 메이저리그 도전사에는 또 다른 굵은 획이 그어질 것이다.
◎송승준보스턴 레드삭스는 한인선수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으로 유명하다. 최희섭에 앞서 한인 타자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한 최경환을 비롯, 김재영, 김선우, 조진호 등과 잇달아 계약을 체결, 한인선수들의 메이저리그행 러시를 주도한 팀이 바로 레드삭스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으로 처음 미국에 진출한 이상훈을 스카웃해 간 팀도 레드삭스. 박찬호에 이어 한인 메이저리거 2호인 조진호와 4호인 이상훈(3호는 김병현)도 레드삭스에서 배출됐다.
하지만 양적인 풍성함에 비해 질적인 면에서 레드삭스의 ‘코리안 농사’는 사실상 실패의 연속이었다. 아직 가능성은 남아 있으나 한때 확실한 메이저리그 재목으로 평가받던 김선우와 조진호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해 메이저리그 전선에서 한발 밀려난 상황이고 한국과 일본의 프로야구 베테런 이상훈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같은 레드삭스 한인 선배들의 실패를 일거에 만회하고 코리안의 자존심을 되찾아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유망주가 바로 송승준(20)이다. 유망주로 언론에 계속 언급되는 최희섭과 달리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송승준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하고 확실하게 메이저리그를 향한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최희섭보다 약 한달 빠른 지난 99년 2월 계약금 80만달러에 레드삭스와 계약한 송승준은 우완 정통파 투수로 최고시속 93마일 내외의 강속구를 던지며 특히 제구력이 뛰어나다. 지난 2년간 루키리그와 로우 싱글A 리그를 압도한 송승준은 올해 사우스 애틀랜틱리그(싱글A)에서 속된 말로 타자들을 ‘데리고 놀고’ 있다.
올해 성적은 3승무패에 방어율 1.09. 10게임에서 총 58이닝을 던져 단 38안타와 포볼 12개만을 내줘 이닝당 1명 미만의 주자를 내보내고 있으며 61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워 이닝당 1개 이상의 삼진을 잡고 있다. 더구나 이제 막 10대를 벗어났음에도 불구, 그의 정신적 성숙함은 레드삭스 관계자를 감탄시킬 정도.
레드삭스의 극동지역 스카웃 책임자인 레이 포인테빈트는 송승준에 대해 "구단 최고의 유망주"라고 극찬한다. 아직 어린 나이로 인해 최소한 2003년 시즌에야 메이저리그 진입을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많은 마이너리그 전문기관들은 벌써부터 그를 최소한 메이저리그팀의 제2, 3 선발급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봉중근지난 97년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왕국 브레이브스는 120만달러라는 거액의 사이닝 보너스를 투자, 당시 17세의 고교생이던 봉중근을 전격 스카웃했다.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은, 하지만 엄청난 가능성을 지닌 선수에 대한 장기적 안목의 투자였다. 그리고 이후 지난 4년간 브레이브스는 전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제2의 탐 글래빈’을 길러내기 위한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이제 20세가 된 봉중근은 서서히 스카웃들의 레이더 스크린에 잡히기 시작하고 있다. 좌완투수로 시속 90마일을 상회하는 빠른 볼을 던지며 빼어난 제구력을 겸비, 주목할 선수로 언급되고 있는 것. 외형상 그의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못하다.
싱글A 캐롤라이나리그에서 뛰고 있는 봉중근은 시즌 개막전에서 6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아내며 승리를 따낸 데 이어 다음 등판에서 7이닝 동안 삼진 8개를 잡으며 무실점으로 역투하는 등 신들린 스타트를 끊었으나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지난달 28일 현재 4승5패, 방어율 5.23으로 다소 주춤한 상태. 하지만 브레이브스는 겉에 보이는 성적보다 투구내용에 더 중점을 두고 그를 지켜보고 있으며 봉중근의 발전속도에 크게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중근의 장래가 밝다는 것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수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그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인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웬만한 스타급 선수나 확실한 유망주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 보라스는 지난해 초반 본보와 인터뷰 과정에서 의례적으로 봉중근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그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으나 선수를 보는 안목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보라스가 먼저 에이전트 계약을 희망했다면 최소한 가능성은 보장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송승준과 마찬가지로 그는 아직 메이저리그 진입까지는 최소한 2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투수왕국 브레이브스가 공들이여 키우고 있는 만큼 장래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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