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로 놓고 고민하는 라틴계 청소년 축구 스타들
알만도 멜렌데스가 엘살바도르에서 자라던 5살 꼬마 시절, 그는 머리 속에 축구 생각만 가득 찬 삼촌에게 맡겨졌다. 오스카 삼촌은 아침마다 알만도를 학교가 아니라 공원으로 몰래 데려가 축구연습을 시키곤 했다.
덕분에 알만도는 읽고 쓰기를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발등으로 축구공을 다루고 튀어오르는 공을 자기 뜻대로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그의 재능은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수십만 축구광들이 잔디를 먼지와 모래 파편으로 짓밟아 뭉개는 시립공원에서 계속 빛을 발했다.
현재 17세인 알만도 멜렌데스는 남가주는 물론 전 세계 경기장에서 뛴 축구 천재. 미국내 이민자 동네에서 유럽과 남미 스카웃 전문가의 관심을 끈 소수의 뛰어난 선수중 한명이다.
알만도 같은 라틴계 십대들은 축구공을 가지고 농구로 출세하려는 흑인들의 “후프 드림스(Hoop Dreams)”를 꿈꾼다. 축구는 좋은 형편으로 태어나지 못한 이 아이들에게 부와 영예를 약속하는 대상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이 꿈의 매력은 너무나 강해 많은 젊은이들은 멕시코 시티나 과달라하라의 대형 팀에서 뛰려고 멕시코로 돌아가기도 한다. 고등학교나 갈만한 나이에 유럽에서 선수로 뛰러 가족을 떠나는 아이도 있다. 아프리카의 대초원과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모인 어린 선수들도 이들과 함께 동일한 국제시장에 나와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이 시장에서 중개인은 젊은 스타들을 부자 팀에 ‘판매’함으로써 엄청난 돈을 모을 수 있다.
일부 젊은이들은 미국 청소년 축구의 ‘성배’격인 대학 장학금에도 기꺼이 등을 돌린다. 어찌보면 두 문화가 경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쪽은 스포츠를 대학과 아메리칸 드림에의 동화과정으로 보지만 다른 쪽은 축구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모든 청소년 선수들은 이민자 아버지, 친척, 코치등 남미 고향 마을에서의 소중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 양성됐고 격려받으며 꿈의 싹을 틔웠다. 이 어른들은 대부분 축구를 라틴계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축구를 자신들이 정말로 가장 잘하는 일로 교회에 가거나 애국가의 가사를 배우는 것처럼 성스러운 의식이라고 믿는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청소년 팀 ‘미래의 스타(Futuras Estrellas)’ 코치인 콜롬비아 태생 훌리오 벨라스케스는 “우리 축구에는 서정미가 있다. 기술도 있고 머리도 있다. 우리는 보기에도 즐겁게 뛰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알만도의 코치인 벨라스케스는 콜롬비아에서 국제 수퍼스타가 된 소수의 선수들을 양성,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그는 캘리포니아주 놀웍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 “힘든 도전과 낯선 땅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미국에 왔다.
이곳에서 벨라스케스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축구세계를 발견했다. 최근 급격히 인기가 올라가긴 했지만 축구를 취미로 여기는 미국에서 축구는 느긋이 진행된다. 대개의 팀들은 주 2회정도 한두시간씩 연습을 한다. 반면 LA의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축구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김다. 벨라스케스도 일주일에 6일 밤을, 동네 공원의 조명 아래 알만도와 다른 미래의 스타들에게 프로 스타일의 훈련을 시킨다.
아직 실적은 없지만 벨라스케스의 목표는 국제시장에 내보낼 선수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는 현지 구단과 계약을 희망하며 알만도를 아르헨티나와 유럽에 보냈고 곧 다른 선수를 과달라하라로 보낼 예정이다. 선수 한명을 프로 팀과 계약시키면 어느 정도의 돈을 받느냐는 질문에 그는 “거절당할 만큼의 금액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공짜로 선수를 보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수수료는 몇천달러에서 수십만달러까지 매우 다양하다. 축구를 기술이자 전문직으로 여기는 벨라스케스는 “미국인들은 트로피를 받고 목에 메달을 걸면 만족하지만 재능이 있다면 그 이상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재능이 뛰어난 젊은이들이 뛰는 경기에는 실력있는 선수와 돈 많은 프로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중개인과 스카웃 전문가들이 모여든다. 지난 여름, 샌디에고의 미국 올림픽위원회 소유 경기장에서 열린 올 스타게임에는 국내 최고 십대 선수들이 출전, 사이드라인은 중개인과 스카웃 전문인들로 붐볐다.
북가주에 근거를 두고 있는 노르웨이측 중개인 얀 시플로는 오렌지 카운티 출신의 뛰어난 미드필더 마이클 무노스의 부모에게 접근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프로팀에서 적격시험을 보자는 시플로의 제안을 몇 달을 두고 숙고한 무노스는 결국 장학금을 받고 UC버클리로 향했다.
알만도도 이 두 스포츠 문화사이에서 갈등해왔다. 전액 운동 장학금을 약속하는 대학 신입생 모집자들의 편지가 무수히 날아들자 어머니는 남의 집을 청소하고 아버지는 트럭을 운전하는 그는 마치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대학진학은 프로 선수가 되고 싶은 알만도의 야망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다. 아는 사람들은 축구는 발레와 같아서 어려서부터 직업으로 삼아야만 대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프로코치들은 대학 축구를 대성할 선수들의 발전을 저지하는 “취미활동”이라고 비꼰다.
고민 끝에 알만도도 결정을 내렸다. LA의 로욜라 매리마운트 대학에서 제의한 축구장학금을 받기로 한 것. 학교가 아니라 축구장에서 잔뼈가 굵은 소년은 이제 경영학을 공부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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