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자 뉴욕타임스에 올 퓰리처 수상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퓰리처 상은 미국 언론인들이 가장 영예롭게 여기는 언론의 오스카상이며, 문학과 음악 부문에서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그런데 이번 수상자 명단을 읽어 내려가다가 내 눈길을 잡아 끈 이름이 있었다. 음악 부문 수상자인 작곡가 존 코릴리아노다.
존 코릴리아노는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는 드물게 대중의 인기까지 얻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다. 대중에게 사랑받은 그의 최근 작품으로는 연전에 상영된 영화 ‘레드 바이얼린’의 음악이 있다. 영화 속에서 바이얼린 연주가 내 가슴을 뒤흔들었던 감동이 아직도 선연하다.
이번에 수상한 심포니 제2번은 사실은 지난 97년 제 39회 그래미 상을 받았던 ‘스트링 퀄텟’을 스트링 오케스트라 곡으로 다시 만든 작품이다. 클리브랜드 퀄텟을 위해서 93년에 작곡했던 이 곡의 테마는 ‘이별(Farewell)’이다. 당시 클리브랜드 퀄텟은 25년이나 계속해온 퀄텟을 해체하기로 했었다고 한다. 그들의 은퇴 연주용으로 그 곡을 썼다는 것이다.
이같은 곡에 대한 뒷이야기는 언젠가 그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직접 들었다. 그의 작품들은 이렇게 연주자들과의 끈끈한 우정에서 비롯되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곡을 쓸 때마다 그의 메세지가 늘 변한다는 말로 표현했지만, 그의 곡에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대전제 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교향곡 1번은 에이즈로 죽은 사람들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풀룻협주곡은 제임스 골웨이라는 거장의 명장성을 펼쳐보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클라리넷 협주곡은 아버지가 일했던 뉴욕필을 위해, 그리고 아버지와의 개인적 관계를 많이 생각한 곡이에요. 카덴자는 수석 크라리넷 주자였던 스탠리 드러커 아저씨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곡이지요. 드러커 아저씨는 제게 크라리넷 렛슨을 한번 주신 일도 있어요. 2악장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저의 엘러지였고, 3악장은 제가 자라는 동안 귀에 익은 뉴욕필 주자들에 대한 회상과 애정이지요.”라고 정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내게 말해주었다. 그의 이런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매료당한 나는 만나자마자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진정한 이유는 ‘음악이란 공부하고 가서 듣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부담없이 즐기는 것’이라는 그의 철학에 나도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는 ‘1920년대부터 60년대까지의 현대음악은 청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음악가를 위해서 쓰여졌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유럽 역시 미국의 1950년대처럼 작곡이 음악가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복잡할수록 좋고, 시스템이 많을수록 좋고, 청중이 싫어할수록 좋은 음악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인가? 그는 청중이 쉽게 공감하는 이면에 깊은 의미가 있고, 음미하면 할수록 더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토벤이 그의 우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옛날 독일 낭만주의 시대엔 음악이 슬픔, 고통, 분노, 절망 등만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음악에 기쁨과 행복도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인간의 모든 감성을 다 표현해야 합니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동부 출신으로서 최초의 뉴욕필 악장을 20년동안 지낸 아버지와 유태인으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음악적 환경 속에서 자란 음악인이다. 그런 그도 작품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스스로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고통이고 두려움이며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데, 그런 불안감은 육체를 압박해 몸의 여기저기가 고장이 나므로 주위 사람들의 격려가 요망된다는 것이다.
정열적이며 사색적이고 예민한 감성을 지닌, 삶의 모든 것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모든 것을 음악 안에서 모든 호기심과 지식과 애정을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해학적이기까지 한 유모어로 표출해내는 그에게선 나이를 초월한 싱싱한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깊은 감동을 느꼈다. 우리가 예술가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그의 천재적인 영감의 세계를 통해서 우리들도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아름다운 창조의 세계로 가꾸어갈 수 있는 비료를, 샘에서 물을 퍼내듯 퍼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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