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칼럼-세상사는 이야기
▶ 백재욱 <리맥스 100 부동산 대표>
엄마가 서울 다니러 가셨다. 뉴욕 살다가 돌아간 오빠네 식구들도 보고, 친구들도 만나보고 오신다고. 한국 가실 때마다 이번에 가면 끝이지 언제 또 가겠냐고 은근히 겁(?)을 주는 엄마에게, 앞으로도 열댓번은 더 가실꺼라고 말대꾸를 하면서도 번번이 그 말에 마음이 쓰인다. 만나이로 따져도 이제 75세, 한국나이로는 일흔일곱이 되셨으니.
’내 집이 따로 있으면서, 왔다갔다 내왕하는건 돼도’ 라면서 극구 자식들과 함께 살 생각은 없는 엄마. 아이들이 아직 어린 내동생 집에 애들 보러 하루 이틀 오셨다가는, 꽃에 물도 줘야 하고 창문도 열었다 닫았다 환기를 해야 된다고 부득부득 당신 집으로 서둘러 가신다. 동생집까지는 고작 대여섯 골목, 엄마집까지는 차로 한 10분의 거리에 살면서도 나는 엄마 볼 새가 없다. 엄마는 동생집에 갈꺼라고, 도착하셨다고, 좀 있으면 도로 집에 가실꺼라고, 짬나면 잠깐 들르라고, 내게 전화 메시지를 남기지만, 어쩌다 한 30분쯤 들러도 엄마에겐 왔소갔소 인사만 할 뿐 어린 조카들과 뒹굴다 오는게 고작이다.
자상하고 곰살맞은 동생은 남편 내조도 잘하고 애들도 잘 기르고 제 공부까지 해가면서 엄마를 크게 작게 보살펴 드리는데 비해, 일한다는 핑계 하나로 내가 하는 것이라곤 하루에 두 번 엄마한테 전화하는 것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안녕히 주무셨냐고, 회사에서 돌아와 지금 들어왔다고. 그나마도 시간이 들쭉날쭉해서 아무때나 나 편한 시간에 전화를 하지만, 주무시다가 깰 때든, 꽃 가꾸고 흙 만지다가 뛰어 들어와서든, 재미난 비디오를 보다가 끊기든간에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나 반가움에 넘친다.
그래서 엄마는 소셜시큐리티오피스도 혼자 가시고, 산타모니카 꽃시장도 혼자 알아 버스타고 다니시고, 병원이든 은행이든 마켓이든 대개는 당신 혼자 힘으로 다 알아하신다. 한번은 엄마 집에서 한 골목 떨어진 집을 파느라 두달 가량을 뻔질나게 다녔는데 그새 한번도 엄마한테 들르지를 못했다. 그 일 끝나자마자 또 5분내로 다음 약속장소를 향해 부랴사랴 가야하니 차세우고 들어갔다 나왔다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무슨 슬픈 소설 쓰는게 취미인지, 엄마 집 앞길을 지나갈 때마다 ‘언젠가 엄마가 저 집안에 안 계시는 날이 오면 내가 이 길을 가슴 아파서 어떻게 지나갈꼬’ 하면서 운전대를 잡은 손 끝이 아려오곤 했다.
엄마가 한국가시던 날, 예약에 차질이 생겨 한참을 공항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예배시간을 놓친 탓에 다른 교회에 가서 늦은 예배를 보고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잤다. 몇신지도 모르고 깨어나자마자 비척비척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손에 잡은 전화기 속에선 계속 빈 신호만 갈 뿐 받는 사람이 없다. 곰곰히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내가 엄마 집에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의 당혹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 엄마가 오늘 아침에 떠나셨지. 내일 아침도, 내일 저녁에도 엄마는 여기 안 계시지. 엄마가 오실 때까지 난 이제 아침에 일어나도, 저녁때 빈 집에 돌아와도 전화할 데가 없지. 너무 이른 시간은 아닌가, 상대방이 바쁜 시간은 아닌지, 너무 늦은 시간은 아닐까, 그런 복잡한 생각 하나도 없이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내게 엄마말고 누가 있을까. ‘주무시고 계셨어요?’라고 물으면 열에 열번이라도 ‘아냐, 일어나야할 시간이야’라고 반가와해줄 사람. ‘뭐 하다가 뛰어왔어. 왜 숨차요?’하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안 그래도 좀 쉬려던 참이다’해줄 사람.
나는 오늘 낮, 몰래 엄마 집에 갔다. 몇 년 전에 엄마가 주신 열쇠를 처음으로 꺼내들고. 화분에 물주기를 부탁받은 옆집 아주머니 눈에 뜨이지 않게 살금살금 문을 땄다. 엄마의 조그만 몸이 눕던 침대에 고단하고 외로운 내 몸을 눕히고 나는 가만히 손을 뻗어 엄마의 전화기를 찾아쥐었다.
엄마, 월말에 온다구 그랬지? 이번 어머니날엔 선물 안 살꺼야, 돈봉투 하나 쑥 내밀고 ‘나 가야돼’ 하지 않을꺼야. 엄마가 제일 컨디션 좋은 날을 맞춰서 핸드폰도 끄고 비퍼도 끄고 회사전화 보이스메일 체컵도 하루종일 안하고 엄마하고만 놀을꺼야. 같이 손잡고 시장보러 가든지, 강된장 끓여서 함께 밥 비벼 먹든지, 병원에 약 타러가면 내가 데려다 줄게. 사우나 가자고 해도 같이 갈게. ‘아줌마’든 ‘왕건’이든 무슨 비디오라도 함께 볼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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